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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의시사전망대] 김훈 "나는 최명길 편도 김상헌 편도 아니고 날쇠 편"

대담 : 김훈 작가

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SBS 라디오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인용 보도 시, 아래와 같이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방송 : 김성준의 시사전망대 (FM 103.5 MHz 18:05 ~ 20:00)
■진행 : SBS 김성준 앵커
■방송일시 : 2017년 10월 16일 (월)
■대담 : 김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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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 강대국, 남북한 대립… 역사보다 현실이 더 어려워
- 정치권 영화평, 자기 입장만 이야기… 소통 어려워 보여
- 이병헌 김윤석, 서로를 자극해 연기력 끌어 올린 느낌
- 김상헌 vs 최명길?… “구태여 물어본다면 난 서날쇠 편”
- 영화 대사 ‘너무 멀리 가지 마라’… 아름답고 강력한 말
- 영화 속 ‘이시백’… 이순신같이 정치 감각 없는 순결한 군인
- 신작 ‘공터에서’… 미수에 그친 자전적 소설
 

▷ 김성준/진행자:

올가을 극장가에 묵직한 주제를 담은 영화들이 몇 편 올라있습니다마는 그 가운데 영화 ‘남한산성’이 눈길을 끕니다. 잘 아시는 대로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의 치욕이 고스란히 배여 있는 역사의 현장이죠. 특별히 이 영화에서 오늘날 한반도 주변의 복잡한 국제정세를 연상하는 관람객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 시간에는 이 영화의 원작 소설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 선생님을 인터뷰하겠습니다. 김훈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 김훈 작가:

네. 김훈입니다. 안녕하세요.

▷ 김성준/진행자:

네. 안녕하십니까. 제가 사실 원래 김 선생님 열혈 팬이어서 언젠가는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늘 기다려왔는데 이제로서 전화로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요즘도 자전거 많이 타시고 건강관리 잘 하시죠?

▶ 김훈 작가:

지난여름에 너무 더워서 자전거를 못 탔어요. 이제 날씨 좋아져서 시작해야죠.

▷ 김성준/진행자:

자전거 타기 아주 좋은 시즌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제 가족과 함께 영화를 봤거든요. 아내 그리고 대학생 딸. 이렇게 셋이서 봤는데 극장을 나오면서 셋 다 말이 별로 없었습니다. 소재나 주제 때문이기도 할 텐데 좋은 영화라고는 느꼈지만 좀 힘겹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거든요.

▶ 김훈 작가:

영화는 영화인데 영화가 의미하는, 시사하는 바는 참 괴로운 것이죠.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이 그때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지요. 그때는 우리가 명, 청 두 강대국 사이의 갈등이잖아요. 지금은 주변 4대 강대국, 남북한의 대립, 핵무기까지 겹치니까 그때보다 훨씬 더 어려운 지경에 처해있는 것이죠.

▷ 김성준/진행자:

그 말씀 하신 김에 이 영화가 나오니까 여야 정치권이 아주 열심히 활용을 많이 하던데요. 야당은 국가가 무능하면 백성이 피해를 본다면서 현 대통령을 겨냥하고, 여권은 외교적 지혜와 국민적 단결이 중요하다면서 과거 정권을 비난하고 있는데. 여야의 이런 싸움을 보면서 어떻게 느끼십니까?

▶ 김훈 작가:

현 정치가들이 자기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서 말을 하는 것이죠. 우리나라 정치가들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면 그만큼 그것이 자신의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참 어리석은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남에게 데미지를 가하면 그것이 자기의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영화를 봐도 그 영화가 가진 비극의 핵심적 본질을 보고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다 자기 입장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니까 점점 소통이 어렵겠구나 싶었어요.

▷ 김성준/진행자:

글쎄 말입니다. 비극의 핵심적 본질 중에 영화의 한 장면을 갖고 이야기를 하자면 이런 면이 있습니다. 성안에 갇혀서 농성하다가 설이 되니까 청나라 군대가 뻔히 보고 있는데 거기서 인조와 신하들이 명 황제를 향해 절하는 모습이 나오잖아요. 그 모습이 나갈 때 객석에서 탄식이 나오더라고요. 쉽게 말하면 저렇게 정치적인 유연성이 부족해서야 어떡하겠느냐는 건데.

▶ 김훈 작가:

비극적인 대목이죠. 저도 그 대목을 쓰면서 참 괴로웠습니다. 그것은 결국 관념적인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의 비극이죠. 지금도 그런 비극이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400년 전에는 명, 청, 대륙에서 두 강대국이 대립을 하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한국 지식인들은 그것을 세력 대 세력의 대결이라고 보지 않고 문명 대 야만의 대립이라고 본 것이에요. 명은 문명이고 청은 야만이니까 우리는 절대 청하고 대화를 못 한다. 문명 대 야만의 대립이라고 본 것이죠. 성리학이 갖고 있는 프레임인 것입니다.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죠. 이 비극의 근본적인 핵심이 바로 거기 있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우리가 군사력이 약했던 것도 있지만 세계를 보는 프레임 자체가 우직적이고 굳어져 버린 거예요. 그런데 그런 관념적 프레임이 사회 곳곳에서 지금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죠. 대화와 소통을 방해하는 것이죠.

▷ 김성준/진행자:

영화 이야기로 직접 한번 구체적으로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이병헌 씨와 김윤석 씨. 제가 보기엔 연기 참 잘 했는데. 최명길과 김상헌의 연기는 마음에 드셨습니까?

▶ 김훈 작가:

그 연기가 보니까 연기자들이 서로 대립적인 위치에 있잖아요. 서로를 자극해서 서로를 격발시키면서 연기력을 끌어올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 것이 참 잘 돼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김성준/진행자:

아주 마음에 드신 모양이네요.

▶ 김훈 작가:

네. 두 연기자가 아주 좋았습니다.

▷ 김성준/진행자:

제가 좀 무리한 질문 같기도 합니다만 저는 청취자 여러분 대신해서 질문할 책임이 있으니까 김 선생님은 집필하실 때부터 김상헌 편이었습니까? 최명길 편이었습니까?

▶ 김훈 작가:

서문에도 썼지만 저는 소설가로서는 아무의 편도 아니에요. 구태여 누구의 편이냐고 물어보면 서민 서날쇠의 편이었습니다. 대장장이. 그 사람은 애국자가 아니에요. 이념화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은 아닌데 아주 건강한 백성이죠. 건강하고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백성이죠. 그리고 가장 애국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고. 굉장히 자기가 생활인으로서 애국이 무엇인지 아는 거예요. 그런데 김상헌과 최명길의 애국심은 굉장히 이념화된 것이잖아요. 서날쇠는 생활인으로서의 애국의 길을 가는 것이죠. 정말 정치적으로 누구의 편이냐 하면 나는 누구의 편인지 알아요. 나는 투항하러 나가는 임금님을 따라서 나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을 거예요. 그렇지 않겠어요? 대부분이 그랬겠죠.

▷ 김성준/진행자:

서날쇠 이야기 잠시 뒤에 다시 하겠습니다만 소설의 첫 문장 보면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워낙 첫 문장에 공을 들이는 분으로 잘 알려져 있으니까 저도 그래서 첫 문장에 더욱 관심을 두고 읽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건 제 개인적인 느낌입니다만 이 문장을 읽고 나면 작가가 최명길보다는 김상헌의 논리에 좀 더 기울어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사실 조금 들었어요.

▶ 김훈 작가:

그것은 어느 쪽이라기보단 정치적인 언어의 교묘함을 보여주려고 쓴 것이죠. 그럴싸하게 보이잖아요. 우리가 서울을 버려야만 돌아올 수 있다는 게 그럴싸하게 들리는 것이죠. 그러면 전략적으로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서울을 방어할 군사적 능력이 없는 자들이 자기네들이 달아나는 것을 합리화하는 말이기도 한 거예요. 정치적 언어의 교묘한 담론, 그 양면성을 보여주기 위해 쓴 겁니다.

▷ 김성준/진행자: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좀 오해를 한 면이 있는 것 같네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부터 시작해서 워낙 첫 문장으로 유명하시니까 첫 문장을 여러 번 읽으면서 해석을 했었는데. 서날쇠 말씀하셨으니까 고수 씨의 서날쇠 연기도 괜찮았죠?

▶ 김훈 작가:

그렇죠. 서날쇠가 마지막에 나온 연기가 좋았어요. 맨 마지막 장면. 폐허가 된 성에 다시 봄이 오고, 백성들이 농사를 시작하고, 서날쇠는 다시 대장간을 정비해서 작업을 시작하고, 나루는 언 봄에 놀러나가는 그 대목이 아주 연기를 잘 하시더군요.

▷ 김성준/진행자:

‘너무 멀리 가지 마라.’ 멀리 가지 마라를 해석해 주시면 뭐라고 의미를 둘 수 있겠습니까?

▶ 김훈 작가:

아이가 연 날리러 갈 때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하잖아요. 어렸을 때 우리 엄마도 나한테 그랬어요. 밤에 놀러 나가면 멀리 가지 말고 빨리 집에 들어오라고. 이 말은 아주 사소하고 무력하고 일상적인 말이죠. 그러나 이것은 아름답고 강력하고 일상 속의 희망을 포함하고 있는 말인 것입니다. 멀리 가지 마라. 아이를 구하고 아이에게 희망을 심는 어른들의 말이죠. 제 소설에는 이 말이 없습니다. 감독이 집어넣은 말이에요. 그런데 참 아름답고 간단하고 단순한 말을 적재적소에 배치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 김성준/진행자:

듣고 보니까 참 그 의미가 더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서날쇠가 정말 본분에 충실한 백성의 모습을 보였다면 이시백 장군도 그런 면이 있지 않습니까?

▶ 김훈 작가:

이시백이 서날쇠와 비슷한 사람이라. 그는 그냥 군인입니다. 그야말로 정치적인 감각이 전혀 없는 군인이죠. 이순신 같은 군인입니다. 이순신은 정말로 제가 보기에 답답할 정도로 정치적 감각이 없어요. 아주 순결한 군인이죠. 정치적 감각이 없기 때문에 연전연승에도 불구하고 감옥에 끌려가서 그 고생을 하고 나오잖아요.

▷ 김성준/진행자:

감각에 따라 행동하기를 거부한 거죠.

▶ 김훈 작가:

그렇죠. 군인이기 때문에. 이순신은 동인도 아니고 서인도 아니고 어떤 당파색이 없는 사람이에요. 양쪽으로부터 다 경계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어느 편이냐 하는 의심을 받는 것이죠. 여기 나오는 날쇠도 그런 생활인인 것이죠. 이런 생활인한테 이시백도 그렇고. 그 사람은 아주 순수한 군인이고 다가오는 적들을 한 명씩 죽이는 보초에 불과한 사람이죠. 이런 사람이 많아야 강한 나라가 될 수 있겠죠.

▷ 김성준/진행자:

자. 소설에는 있는데 영화에는 빠진 게 여러 군데 있지만 말이죠. 저는 사실 이 부분이 아쉬운 것 같습니다. 소설에서 문장가라는 제목의 글에 왕이 일종의 항복문서를 쓰라고 하니까 관리들이 누구는 못하겠다고 하다가 반죽음이 되고, 누구는 고민하다 스트레스 받아서 죽잖아요. 한 사람은 엉뚱한 글을 써서 피하고. 영화로 이걸 잘 표현했으면 좋았겠다 싶었는데 아쉽지 않으세요?

▶ 김훈 작가:

그건 성안에서 일어났던 일이 아니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 삼전도비 세울 때 서울로 돌아간 다음에 실제로 일어난 일인데 제가 그걸 성안에서 일어난 일로 만들어서 넣은 것이거든요. 글 쓰는 자들의 비루함, 고통을 집어넣은 것이죠.

▷ 김성준/진행자:

마지막으로 최근 소설이 ‘공터에서’ 아닙니까? 이게 상당히 저희가 읽어보면 자전적 소설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데. 이렇게 자전적 소설을 쓰신 것은 앞으로 문학 활동할 때 일종의 분수령 삼아서 변화를 준비하고 계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됩니까?

▶ 김훈 작가:

‘공터에서’는 자전적 소설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인데. 자전을 다 쓰지 못한 거예요. 자전소설 미수에 그친 것인데. 그것은 제가 이 시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말해봐야겠다는 사인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김성준/진행자:

기대가 많이 되네요.

▶ 김훈 작가:

예. 고맙습니다.

▷ 김성준/진행자: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김훈 작가:

네. 안녕히 계십시오. 고맙습니다.

▷ 김성준/진행자:

지금까지 소설 ‘남한산성’의 김훈 작가와 함께 인터뷰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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