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내 주변서 활개치는 73인의 '손목치기꾼'

[취재파일] 내 주변서 활개치는 73인의 '손목치기꾼'
만 4년간 무려 22번이나 남의 차에 몸을 던진 사내가 있다. 어린아이를 구하거나, 강도를 잡기 위한 건 아니다. 40대 남성 A씨의 목적은 오직 보험금. 서행하는 차를 골라 손목이나 발을 갖다 대 고의 신체접촉 사고를 유발했다. 18번 보험금을 타냈다. 부수입은 2,500만 원에 달한다.

요즘 고의 신체접촉 보험사기의 대세는 ‘손목치기’다. 사이드미러에 슬쩍 손목을 갖다 댄다 해서 이름이 이렇다. ‘툭’ 갖다 댄 뒤 아프다고 하거나, 스마트폰이 깨졌다며 돈을 뜯는다. 알뜰하게도 액정을 미리 부숴놓은 걸 쓴다. 지난 8월엔 ‘손목치기’계의 ‘대도’라 불러도 좋을 40대 남성 박 아무개가 경찰에 구속됐다. 미리 액정을 깨 놓은 스마트폰을 도로에 떨어뜨릴 때 마다, 그의 계좌엔 10만 원 안팎의 합의금이 꽂혔다. 송금인의 이름은 2백 개가 넘었다.

박 씨나 A씨나 40대 남성 잡범이긴 매한가지이나, 스케일만 놓고 보면 A씨가 좀스럽다고 혀를 찰 수도 있다. 그러나 사정을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이젠 조석으로 구치소에서 부쩍 차가워진 가을바람에 익숙해졌을 박 씨와 달리, A는 단 한 번 경찰조사도 받은 적 없는 까닭이다. 그는 그저 자동차보험회사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을 뿐이다.
관련 사진
관련 사진
●  ‘프로 잡범’ 73인의 속사정

A의 존재는 어떻게 알려진 걸까. 그의 탓이라면 그의 탓이다. 그는 보험사의 사고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유발한 22건의 사고 가운데, 4건은 고의로 사고를 낸 거였다고 인정하고 말았다. 이렇게 보험금을 자주 뜯긴 보험사들은 전직 경찰 등을 영입하며 보험사기 조사팀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들의 압박에 스텝이 엉킨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보험사는 사기 의심자들의 명단을 만들어 관리한다. 금융감독원이 보험사로부터 이들 자료를 취합했더니, 2010년부터 올해까지 활동 중인 소액 보험 사기꾼들이 73명에 달했던 거다.
관련 사진
몸 쓰는 ‘프로 잡범’ 73인. 그들의 평균적 ‘범행 기량’은 이렇다. 사기 건수는 만 7년 간 평균 7건. 누적 6백만 원씩 보험금을 뜯었다. 건당 85만 원 수준. 최상위엔 23건에 2,200만 원을 타낸 자가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보험금 수령 건수를 합하면 512건, 보험사가 뜯긴 돈은 4억 4천만 원이다. 요즘 대세인 ‘손목치기’가 194건으로 38%를 차지했다. 이런 부정 수급이 보험료 인상 요인으로 작용해, 선량한 피해자를 양산했을 터다.

이면도로나 좁은 골목을 좋아하는 이들은, 운전자의 상황을 잘 안다. 운전석의 사각이란 사각은 모두 알고 있다. 당신이 왼쪽으로 꺾으며 서서히 후진할 때, 그들은 왼쪽 뒷좌석 문과 범퍼 사이에서 갑자기 나타난다. 몸은 지극히 아낀다. 많이 다치지 않는다. 나름 몸 쓰는 직업인 탓이다. 진단명은 염좌나 좌상을 최고로 친다. 소액의 보험금 청구는 비교적 심사가 소홀한 관행을 노린다.

이들 '프로 잡범'들은 대부분 ‘현직’이다. 73인의 '신체접촉 프로' 가운데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 인물은 고작 7명이다. 전체 90%가 교묘한 소액 보험사기로 오래도록 야금야금 보험금을 타내고 있다는 얘기다.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고, 현장에서 소액을 뜯으며 적발을 피하는 ‘최상급 잡범’까지 더하면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이다.
관련 사진
관련 사진
관련 사진
관련 사진
● 몰라도, 귀찮아도 정답은 “보험처리 합시다”

군자는 소인배를 이길 수 없다. 소인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탓이다. 하지만, 이 경우엔 군자처럼 '잡범'을 제압하는 단 하나의 정답이 있다.

바로 ‘보험처리’다. 그 보다 우선, 주변 CCTV나 다른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보자고 먼저 권하라. 이걸 구해서 스마트폰으로 찍기만 하면, 현행범 체포도 가능한 일이다. 이 단계에서도 상대가 당당하게 나온다면, “보험처리 합시다”라고 단호하게 천명하라. 보험회사는 그가 자기 회사에 시도했던 보험사기 의심 사고 목록을 갖고 있다. 그리고 상대가 보험사기꾼이라면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도 ‘귀찮은데 몇 만 원 주고 말자’ 싶은 마음이 들 수가 있다. 이럴 때도 정답은 같다. ‘보험처리’다. 만에 하나, 당신이 일으킨 사고가 보험사기가 아닌 진짜 신체접촉사고로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결론 나도, 보험금 할증을 택하는 편이 낫다. 

물론 운전자 각자가 접촉사고 등 보험금을 청구한 횟수가 다르기에, 고민 속 디테일을 따져볼 만하다. 아무리 소액의 보험금이 나갔다 해도, 사고 건수가 많아 보험 갱신에 피해를 볼까 우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마저도 정답은 같다. ‘보험처리’가 안전하다. 최악의 경우, 보험사가 지급한 보험금을 대신 추후 납부하면, 사기꾼을 배 불리는 일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기는 의심되는데 상대가 10만 원을 요구하는 상황이라면, 보험사에 이를 대신 내도록 한다. 나중에 보험사기로 판명되지 않는다 해도, 이 돈을 대신 납부하면 그만이란 얘기다. 덤도 있다. 보험사는 보험사기꾼에게 원한이 많다. 보험사를 활용하면, 상습 보험사기꾼에게 정의란 이런 거라고 가르쳐줄 만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관련 사진
관련 사진
관련 사진
만약 이런 일로 보험료가 할증됐다면, 경찰서에서 혹시 피해자라며 출석을 요구하진 않는지 관심을 갖고 기다릴 필요도 있다. 왜냐고? 당신이 이런 상황이라고 치고, 행복한 상상을 전개해 보자. 상대가 나중에 유사 범죄를 저질렀다 경찰에 입건된다. 당신이 저지른 걸로 정리된 사고가 사실은 상대의 범죄인 게 들통 난다. 그러다 형사 처벌이 결정돼 재판에 넘겨진다. 이 경우 1심 법원이 그에게 유죄를 선고만 하면, 당신은 이 판결문을 근거로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하면 된다.

“그 때 올린 보험료 돌려줘야겠습니다.”
관련 사진
관련 사진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