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박정희' 이름, 국정화 여론조작에 굳이 왜 썼을까

'이완용, 박정희, 뻘짓, 미친짓…'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에 대한 의견수렴 마지막 날인 2015년 11월2일 교육부에 트럭으로 접수된 4만여 장의 국정화 찬성의견서 제출자로 기재된 이름입니다.

오래전 사망한 인물이나 비속어를 적어넣은 의견서는 누구라도 정상적으로 작성됐다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차떼기 찬성의견서'는 어떻게 작성됐고 누가, 왜 이런 단어와 표현을 썼을까? 일괄 출력물 형태의 찬성의견서 작성과 제출을 주도한 인물은 대학교수인 양 모 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관계자는 "위원회에 접수된 익명 제보에 따르면 양 교수 주도로 대규모 의견서 조작이 이뤄졌다고 한다"며 "차떼기로 접수된 의견서는 손으로 쓰지 않았고 모두 타이핑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여의도 인쇄소에서 일괄 출력하기 전에 다른 곳에서 미리 타이핑 작업을 한 뒤 파일을 USB에 담아와 인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오영훈 의원(더불어민주당)도 인쇄소 관계자 증언을 근거로 "양 교수가 데이터를 가져와 출력했다. 인쇄비용도 양 교수가 신용카드로 몇 차례에 걸쳐 직접 계산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양 교수가 상당한 규모의 인력을 동원해 모처에서 사전에 찬성의견서 출력을 위한 타이핑 작업을 한 것으로 진상조사위는 보고 있습니다.

찬성의견서 내용을 보면 타이핑 작업을 한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갖고 있었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의견서 제출자 인적사항을 허위로 기재한다고 해도 의심을 살 정도로 황당한 내용을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시각에서입니다.

제출자에는 대표적 친일파이자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완용, 장기 군사독재를 한 박정희 전 대통령 등 오래전 사망한 인물과 국정화를 추진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 이름이 포함됐습니다.

'뻘짓', '미친짓', '개xx', '지x'도 찬성의견서 작성자로 등장합니다.

이완용의 주소는 '대한제국 경성부 조선총독부'로, 전화번호는 경술국치일(1910년 8월29일)을 따서 '010-1910-0829'로 돼 있습니다.

'박정희'의 전화번호는 '010-1979-1026'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일(1979년 10월26일)과 같습니다.

찬성의견서 작성에 투입된 인력 중에 나름대로 일정 수준의 역사 지식과 의식을 가진 이들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마지못해 찬성의견서 작성에 동원됐지만, 작성 과정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흔적이나 증거를 남기려고 했다는 얘기입니다.

'차떼기'로 접수된 찬성의견서 4만여 장은 크게 4가지 유형으로 이뤄졌고, 세부적으로는 36종류로 파악됐습니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일괄 출력물 형태 찬성의견서 53박스 중 26박스를 확인한 결과, 4가지 패턴 36종의 의견서가 계속 반복됐다"며 "나머지 박스는 열어볼 필요도 없다고 판단해 교육부에 수사의뢰를 요청했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진상조사위는 반대의견서의 허위 여부도 확인하자는 자유한국당 주장과 관련해 "이번 수사의뢰는 국정화 찬반이 아니라 조작을 통해 정책결정 과정에 조직적으로 개입하려는 것에 관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의견수렴 마지막 날 3차례에 걸쳐 의견서가 무더기로 접수됐습니다.

'올바른 역사교과서 국민운동본부' 스티커가 붙은 문제의 '차떼기 의견서'가 접수되기 전인 오전 11시 당시 새누리당 등 찬성쪽 의견서가, 오후 2시쯤에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등 반대쪽이 의견서를 냈습니다.

조사위는 "차떼기 의견서 외에 2차례 단체 접수된 의견서는 대부분 직접 손으로 쓴 것"이라며 "설령 개인 몇 명이 허위로 작성한 게 있다고 해도 조직적인 조작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교육부는 진상조사위 요청에 따라 지난 12일 양 교수와 올바른 역사교과서 국민운동본부, 찬성의견서 심야 계수를 지시한 당시 교육부 학교정책실장 김 모(퇴직)씨 등을 대검에 수사 의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