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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세월호 보고 시간 조작", '골든타임'에 보고한 걸 숨기려고…

박세용 기자 psy05@sbs.co.kr

작성 2017.10.13 12:01 수정 2017.10.13 12:10 조회 재생수9,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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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세월호 보고 시간 조작", 골든타임에 보고한 걸 숨기려고…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상황보고서를 조작했다고, 임종석 비서실장이 밝혔습니다. 오전 10시에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주장해왔는데, 사실은 30분 이른 오전 9시 반에 보고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국가안보실이 작성한 2개의 보고서를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4월 16일 당일엔 9시 반으로 기재된 보고 시각이 10월 23일 수정 보고서에는 10시로 바뀌어 있다는 게 청와대 설명입니다. 임 실장은 이렇게 보고 시각을 30분 늦게 조작한 것은 ‘첫 보고’ 시점과 대통령의 ‘첫 지시’ 사이의 시간 간격을 줄이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정부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공개한 ‘이것이 팩트입니다’를 보면, 30분의 의미가 이해가 됩니다. 관련 사진
● 30분 조작했다면…구조 ‘골든타임’ 때문

지난 2월,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때도 ‘10시’는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증인으로 나온 김규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안보실 소속)도 박 전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은 것은 오전 10시라고 말했습니다. 김 전 수석은 첫 보고를 받은 그 시각에는 세월호가 이미 상당히 기운 상태였기 때문에 대통령이 무슨 지시를 해도 사실상 큰 의미가 없는 시간대였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10시에는 이미 현장에서도 손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고, 대통령이 재빨리 움직이지 않아서 인명피해가 커진 건 아니다, 대통령은 책임이 없다, 이런 주장입니다.

김규현 전 수석은 “9시 21분에 세월호가 45도 기울었다. 배 각도가 구조에 중요하다. 세계해사기구 권고를 보면 배가 50도 기울 경우 탈출이 어렵고 밖으로부터 들어가면 더 어렵다고 되어 있다. 45도 기울었을 때 빨리 나와야지 아니면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9시 21분에 이미 탈출이 어려운 상태였는데, 10시에 보고 받은 대통령은 아무 잘못이 없지 않느냐는 항변입니다. 또 미국의 9.11 테러를 언급하면서는 “어느 경우에도 국가기관이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게 책임 있다고 한 건 들어본 적도 없고 문제된 적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청와대가 실제 첫 보고 시각이라고 밝힌 9시 30분은 어떤 순간이었을까요. 박근혜 정부의 김규현 전 수석은 그때가 구조의 ‘골든타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탄핵 심판에서 “10시 반에는 세월호가 완전히 전복됐고 9시 21~23분 정도가 45~50도 기운 상태였다. 그러니까 과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사고 발생 직후(8시35분경)부터 9시 30분까지, 그때가 골든타임”이라고 말했습니다. 30분을 조작했다면, 대통령은 현장에서 손 쓸 수 없는 순간이 아니라, 세월호 희생자를 구조해낼 수 있었던 시간에 관저에서 첫 보고를 받은 셈입니다. 관련 사진● 대통령 행적의 재구성

새로 나온 문건에 따라, 참사 당일 아침 대통령의 행적을 재구성하면 이렇습니다. 오전 8시 반, 윤전추 전 행정관이 관저에 도착합니다. 관저에 있던 대통령은 오전 9시 ‘집무실’이라고 주장하는 공간에 들어갑니다. SBS가 ‘사실은’ 코너를 통해 보도한 적 있습니다만, 그 공간은 공적인 집무실이라고 보기 힘든 사적 공간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 방은 대통령의 침실, 개인 식당,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일명 거울방과 붙어 있습니다. 그날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10시 15분 대통령과 통화할 때 “TV 보도를 참고하시라”고 말했다는데, 일명 ‘집무실’에는 TV가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방에서 뭘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9시 30분. 국가안보실이 대통령에게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첫 서면보고를 올립니다. 수신자는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 경호실장 등입니다. 이 보고서는 서면으로 전달됐는데, 당시 관저에서 대통령에게 이 서면보고를 직접 전해줄 사람은 윤전추 전 행정관이 유일했던 것 같습니다. 서면보고는 보통 '집무실‘이라고 부르는 곳 앞에 있는 탁자에 두고 대통령이 방 밖으로 나와서 갖고 들어갈 수 있도록 인터폰을 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9시 반, 방에서 나와 서면보고를 가져갔는지, 혼자 있던 방에서 보고서를 읽었는지 여부는 여전히 확실치 않습니다.

9시 반 첫 보고의 제목은 ‘진도 인근 여객선(세월호) 침수, 승선원 474명 구조작업 중(1보)’였습니다. 4백 명이 넘게 탄 배가 침수 중이라는 보고에 대통령은 즉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10시 15분, 그러니까 첫 보고 15분 뒤가 아니라 45분 뒤, 대통령은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지시합니다. 10시 반에는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 지시를 합니다. 9시 반 서면보고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10시 넘어 관저를 찾아 온 안봉근 전 비서관으로부터 얘기를 듣고 잇따라 전화를 걸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탄핵 심판 당시 안봉근 전 비서관은 10시 넘었을 때 전화 업무로 관저를 찾았다는 증언이 나온 바 있습니다. 하지만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고, 세월호의 왼쪽은 거의 침수된 상태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하는 결정에서 탄핵 사유 가운데 하나인 세월호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는 있지만,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사법적 판단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취지에서였습니다. 성실성 여부는 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호 구조 골든타임이었을 때 대통령에게 첫 보고가 올라갔고, 재판관들이 첫 보고 후 15분이 아니라 45분이 지나서야 국가안보실장에게 지시를 내렸다고 알게 됐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재판관들이 그걸 파면 사유로 삼지는 않더라도, 역사에 남는 결정문의 내용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성실의 개념'이 상대적이고 추상적이긴 하지만, 집무실이라 주장하는 방에서 뭘 했는지 입증하지도 않고, 첫 보고 45분 뒤에 지시를 내렸다? 재판관들의 마음을 흔들어놨을지 모릅니다. 

● 김기춘, 이미 7월부터 "첫 보고는 10시" 

한 가지 의문은 남습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6개월 뒤인 10월 23일에 보고서를 수정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국회 속기록에 남아 있는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의 말을 보면 이미 7월부터 ‘첫 보고는 10시’라고 말한 걸로 되어 있습니다. “대통령께 10시에 안보실에서 문서보고를 올리고…”(2014년 7월 7일 국회운영위원회), “국가안보실은 사고 상황을 추가로 확인하여 10시에 사고 개요 및 현장상황을 대통령께 보고 드렸습니다.”(2014년 7월 10일 세월호 국정조사특위)

그러니까 문서로 확인된 것이 10월 23일일 뿐, 청와대는 대통령이 골든타임에 보고 받은 뒤 45분 동안 뭘 했느냐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이미 그 전부터 첫 보고 시간을 10시로 늦춰 잡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고가 난 4월부터 7월 사이의 어느 순간, 청와대 문건에서 9시 30분이 10시로 바뀌기 시작한 시점이 있을지 모릅니다. 진실은 이전 정부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한 문건 속에 비공개로 잠겨 있습니다. 이번 문건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있겠지만, 그 복사본이 청와대에 아직 남아 있다가 공개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