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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저희를 실습용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병사들의 고백

[취재파일] "저희를 실습용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병사들의 고백
군대에 다녀온 남성들이라면 의무실이나 군 병원 한 번쯤은 다녀왔을 겁니다. 감기에 걸렸는데 두통약을 줬다더라, 의무병이 주사를 잘못 놔 혈관이 부풀었다더라, 같은 괴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얘기들입니다. 이런 반신반의한 소문의 근본 원인이 있을 겁니다. 바로 군 의료 시스템에 대한 불신입니다. ( ▶ "병사들을 실습용마냥"…석연찮은 '군의관 내시경 시술' - 9.22 8뉴스)이 향하는 펜 끝도 정확히 이 부분입니다. 3분간의 방송 뉴스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 지금부터 하나하나 풀어보겠습니다.
군의관 관련 병사 진술서
● 구토에도, 황달 증상에도 밥 먹듯 '위·대장 내시경' 시술한 군의관

올해 2월 초 국군 의무사령부가 당시 모 국군병원에 복무 중인 군의관 A 씨를 감찰했습니다. A 씨에게는 여러 비위 의혹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하나는 ‘과잉 진료’였습니다. 자신이 진료한 병사 중 상당수에게 내시경을 권유해 시술했다는 겁니다. 언뜻 보면 ‘들여다 볼 일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닌가’, ‘비용이 많이 드는 시술, 공짜로 해주는 게 오히려 잘한 일 아닌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술을 받았던 병사들의 진술과 해당 군 병원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의구심이 일었습니다.
군의관 관련 병사 진술서
해당 군 병원 복수의 제보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A 씨는 구토 증세로 찾아온 병사들에게도, 황달기가 있는 병사들에게도 모두 내시경을 권유해 시술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위·대장 내시경 동시 시술입니다. 다른 군의관들이 아무리 살펴봐도 내시경을 할 이유가 없었던 병사들이었습니다.

A 씨는 해당 군 병원에 전입오기 전까지 특히 대장 내시경 시술은 경험이 전무했습니다. 그래서 선임 군의관들에게 배우며 시술했습니다. 이에 대해 제보자 B 씨는 “CT 검사에서 특별한 이상 소견이 보이지 않아 굳이 위·대장 내시경을 할 필요가 없었다”며 “자기가 내시경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군대에서 그쪽으로 많이 해보려고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제보자 C 씨도 취재진에게 “A 씨가 무리하게 내시경 시술을 한 면이 있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A 씨가 병사들을 진료한 뒤 약을 처방하는 대신 위·대장 내시경을 권유해 시술했던 사례를 얘기해줬습니다. 당시 C 씨가 A 씨에게 “병사들에게 왜 약을 주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니 “약을 먹이면 증상이 좋아져서 병사들이 내시경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하더랍니다.

또 다른 제보자 D 씨의 진술은 조금 더 구체적입니다. 지난해 4분기 A 씨의 대장 내시경 시술 건수가 다른 군의관과 비교해 배 이상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사들의 입원 당시 간호 기록과 진료 차트를 살펴봤는데, 특별히 내시경을 시술할 만한 이유가 기록돼 있지 않았다고 확인해줬습니다.
군의관 관련 병사 진술서
● 내시경 받은 병사, "우리는 마루타가 아니었을까요?"

삼인성호(三人成虎). 사람 3명이 말을 맞추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는 속담입니다. 혹시 해당 군 병원 관계자들이 A 씨 한 명을 음해하기 위해 취재진에게 거짓을 말한 건 아닐까요. 이제는 A 씨에게 진료를 받았던 병사들을 만날 차례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실체적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당사자입니다. A 씨에게서 내시경 시술을 받은 병사들의 말을 가감 없이 옮겨 적어보겠습니다.

-A 씨에게 진료를 받을 때 구토 증상이 있어 입원을 하라 했고, 설명과 동의 없이 CT 촬영과 위·대장내시경을 시술했습니다. 입원 중에도 아무 설명과 의료 진행에 대한 언급 없이 A 씨가 하라는 대로 했고 저의 의사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선임병 또한 같이 입원해서 저와 같은 의료를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마루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최근 만기 전역한 소모 씨의 진술)

-복부 CT를 검사했는데 정상으로 나왔고, A 씨가 제 눈이 노란 이유를 확실하게 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위·대장 내시경 검사를 하자고 하셔서 제 증상 확인을 위해 꼭 해야 하는 줄 알고 했습니다. 당시 내과 사람들끼리 같이 입원을 했는데 A 씨에게 치료를 본 사람들은 거의 다 내시경 검사를 했습니다. 전 A 씨가 필요하지 않은 검사를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실습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역 백 모 일병)


이 두 명의 병사뿐만이 아닐 겁니다. 이들이 진술했듯 같이 내과에 입원한 선후임병들도 비슷한 일을 겪은 것으로 보입니다. A 씨의 ‘과잉 진료’ 의혹에 신빙성이 더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 국내 소화기내과 권위자들에게 물어보니…

구토와 황달 증세에 위내시경은 그렇다 쳐도 대장 내시경을 꼭 해야 했을까요? 취재 과정 내내 품었던 의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해당 군 병원 관계자들은 일단,  A 씨가 대장 내시경을 시술한 병사 대부분은 CT 검사 등에서 특별한 소견이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병사의 몸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대장 내시경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의사 고유의 진료 영역일 수 있어 함부로 예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내 소화기내과 권위자 2명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김나영 서울대 소화기내과 교수는 "구토나 황달 증세로 환자가 찾아왔다면 위 내시경을 할 수 있고, 대장 내시경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사전 검사에서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었다면 대장 내시경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된다"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의사들도 임상연구를 통해 내시경 시술 환경을 배워야 하지만 그렇다고 취약군(장애인, 후배 의사 등)에게 하면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태일 연대 소화기내과 교수도 “차트를 직접 보지 않아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뚜렷한 증상 없이 단순히 황달기가 있다 해서 대장 내시경을 한 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 역시 윤리적 문제를 꼬집었습니다. 병사들의 진술대로 그들의 적극적인 동의 없이 의사의 의지가 세게 반영된 내시경 시술이었다면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A 씨의 입장은 어땠을까요. 그리고 A 씨를 감찰한 국군 의무사령부는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요. 이어지는 후속편에서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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