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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우리 애 좀 합격시켜줘"…新 음서제에 좌절하는 청년들

[리포트+] "우리 애 좀 합격시켜줘"…新 음서제에 좌절하는 청년들
한 외국계 기업 채용 부서에서 근무했던 A 씨는 채용 기간만 되면 청탁 전화와 이메일에 시달렸습니다. 다짜고짜로 채용을 부탁하는 인사 청탁이 쇄도했기 때문입니다. "○○○ 상무 친구인데 이력서 하나 보내놨으니 확인해"라며 전화를 걸거나 회사에 친척이 있으니 "서류부터 면접까지 한 번에 통과시켜 달라"는 메일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회사 내 다른 부서에서도 이름과 간단한 스펙을 언급하며 "지인이니 우선적으로 검토 바란다"는 연락이 쏟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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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채용 부서에서 근무했던 A 씨]
"채용 청탁 연락이 오기 시작하면 '취업시즌 왔구나' 생각이 들었죠…"
고려·조선 시대에는 고위 관리의 자제가 과거 시험을 치르지 않고 관리로 등용되는 '음서제도'가 있었습니다. 몇백 년이 지난 오늘날 과연 우리 사회는 얼마나 깨끗해졌을까요? 최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채용 청탁과 강원랜드 부정채용 의혹 등 고위층 자녀의 채용 비리 사건이 잇달아 불거졌습니다. '현대판 음서제' 이른바 '新(신) 음서제'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 "뒷배 없으면 취직 안 돼"…되풀이되는 '채용 청탁'과 '현대판 음서제'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의 채용 청탁·비리 의혹은 잊을 만하면 되풀이됐습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지난 2013년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의 청탁을 받고 신입사원을 채용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한국GM은 2012~2016년까지 채용된 346명 중 35.5%에 달하는 123명이 성적조작 등 부정한 방법으로 입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난 8월에는 삼성그룹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휴대전화에서 기업, 언론계, 법조계 고위층 인사들의 채용 청탁 문자가 발견돼 논란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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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채용 비리 사건
직접적인 청탁도 문제지만 기업이 이력서나 입사지원서에 부모의 직업이나 학력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라고 취업준비생들은 지적합니다. 한 취업준비생은 "부모나 친척이 지원하는 기업에 재직 중이면 가산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음서제와 다를 게 뭐 있냐"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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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 B 씨]
"최종면접에 들어갔는데 면접관이 옆 사람에게
'아버지가 □□부서 재직 중이네?'라고 묻더라고요. 그 말 듣는 순간 '난 떨어졌구나' 싶었고 실제로도 그 사람이 합격했어요. 취준생들 사이에서 빽도 실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에요."
■ 인사담당자 10명 가운데 4명 "청탁받았다"…공공연하게 이뤄지는 채용 비리

이런 현실은 설문조사결과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취업 포털사이트가 지난해 기업 인사담당자 3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취업 청탁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이 40.7%에 달했습니다. 이 가운데 48.8%는 실제로 채용에 도움을 줬다'고 답했습니다. '채용에 도움을 준 지원자가 최종 입사했다'는 답변도 96.7%로 나타났습니다. 인사담당자 10명 중 4명은 채용 청탁을 받은 적이 있고 이 중 절반에 가까운 청탁이 실행에 옮겨진 셈입니다.

기업의 임직원 자녀를 채용 과정에서 우대하는 '현대판 음서제'도 실제로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2,769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벌인 '단체협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사업장의 25.1%에 달하는 694개 사업장이 재직자 자녀 우선 채용 조항 등 불공정한 규정을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여기에는 현대·기아차, 르노삼성, 한국GM, 대우조선해양 등 사기업과 지방자치단체, 공기업도 포함됐습니다.
통계
■ 청탁 근절하려면?…제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먼저 나서야

채용 청탁과 현대판 음서제, 新(신) 음서제를 막기 위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 중이고 올 하반기부터는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가족이나 친지 등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채용 청탁을 신고할 가능성이 작아 사실상 적발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블라인드 채용 역시 민간기업에는 해당이 안 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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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일각에서는 공기업이나 민간기업 구분 없이 채용 청탁이 적발되면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는 '청탁 신고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채용 청탁을 한 사람은 물론 청탁을 받고 신고하지 않은 직원에게도 불이익을 줘야 채용 비리가 근절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한 전문가는 "정부 감사 과정에서 부정한 채용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며 "감사를 철저히 해야 할 뿐 아니라 채용 비리가 밝혀졌을 때 연루된 직원과 기관장, 공기업 자체에도 불이익을 주는 등 조직적으로 청탁을 근절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민간기업의 경우 채용 청탁 신고 의무를 강화하는 등 회사에서 먼저 내부 지침을 만들어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기획·구성: 정윤식, 장아람 / 디자인: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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