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학폭위의 자료를 검토하고 학교 측의 설명을 들은 지원단은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4명의 실질적인 폭력이 이루어졌음에도 ‘조치 없음’ 처분을 내린 것은 문제가 있음
-진술서 등을 검토한 결과 명백히 학교폭력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임
-피해자 탄원서 등이 제출되었다고 해서 무마될 수 없음
-새로 열리는 학폭위에서 합당한 조치가 이뤄져야함
이렇게 축소되고 순화된 묘사를 보고도, 지원단의 판단은 명확했습니다. “4명이 실질적인 폭력을 행사한 것이 명확하니, 합당한 조치를 하라” 지원단은 이 같은 권고사항을 A고와 교육청에 전달했습니다.
일주일 뒤, 다시 학폭위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교육청의 권고와는 전혀 다른 결론을 냈습니다.
유망주 B군 : 서면 사과 및 교내봉사
나머지 3명 : 조치 없음
학폭위 위원장인 교감선생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교육청의 권고와 달리 또 ‘솜방망이 조치’를 하신 이유가 뭐냐고. “지원단이 그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학폭위원들이 그 의견을 무조건 쫓아간다면 심의할 필요도 없죠.”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한마디로 교육청 지원단의 의견을 따를 의무가 없다는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현행 제도상, 학폭위의 결론에 대해 상급기관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은 없습니다. 즉 해당 학교 학폭위의 자율권이 존중됩니다. 교육청의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일 뿐 강제성이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결론이 나와도, 피해자의 재심 요청이 없으면 시정할 방법이 없습니다. 학교폭력 문제 전문가들은, ‘공립학교였다면 달랐을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교육청의 권고를 완전히 무시하는 행태는 사립학교였기에 가능했다는 겁니다.
즉 A고 야구부 폭력 사건은, 1명만 교내 봉사를 하고 나머지 가해자들은 면죄부를 받은 채 마무리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가해자들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다시는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겠다는 교훈? 그보다는 폭력을 은폐하고 넘어갈 수 있게 하는 이 사회의 느슨함에 대한 실감은 아니었을까요. ‘재수 없이 걸려서 고생했지만, 결과적으로 큰 탈 없이 넘어갔다’는 안도감은 아니었을까요. 확실한 건, 지금의 공적 시스템은 만연한 학원 스포츠계의 폭력을 근절할 힘이 없다는 겁니다. 피해자들과 내부 고발자들을 보호할 수도, 축소-은폐를 통해 이득을 얻는 사람들을 제어하지도 못한다는 겁니다. 우리들의 스포츠는 언제까지 이렇게 불행해야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