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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pick] 유골 확인된 '세월호' 고창석 교사…"친형 같은 스승"

김도균 기자 getset@sbs.co.kr

작성 2017.09.17 10:41 조회 재생수25,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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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뉴스pick] 유골 확인된 세월호 고창석 교사…"친형 같은 스승"
지난달 19일 세월호 침몰해역 2차 수중 수색에서 발견된 유골은 단원고 고창석 교사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지난달 19일 수중 수색 구역에서 수거한 토사 분리 과정에서 수습한 뼈 2점이 고창석 교사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고 교사는 2014년 3월 단원고 체육 교사로 발령받은 지 한 달여 만에 변을 당했습니다.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고 교사는 대학생 때 인명구조 아르바이트를 했을 정도로 수영을 잘했습니다.

긴박한 상황이 발생할 때면 항상 몸이 먼저 앞섰다고 합니다. 세월호 사고 후 조문 온 한 제자는 가족에게 "선생님께서 2005년 중학교에 근무할 당시 학생휴게실에 불이 나자 소화기를 들고 가장 먼저 뛰어와 진화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고 교사는 비행을 저지른 학생에 대해 꾸중을 하거나 매를 들지 않았습니다. 되레 이런 제자들을 집이나 식당으로 불러 저녁 먹이고,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여 바른 길로 인도하는 친형 같은 존재였다고 합니다.

세월호 유족이자 고 교사의 제자였던 오천이 형 권오현 씨는 "학교에서 젊은 편에 속했던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친형 같은 스승이었다"며 "술·담배 등 나쁜 짓을 하는 학생들에게 오히려 따뜻한 저녁을 대접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끝까지 들어주는 분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고 교사는 세월호 참사의 순간에도 자신보다 제자들이 먼저였습니다. 학생들을 인솔하던 교사들의 숙소는 비교적 탈출이 쉬운 5층 로비 옆이었지만, 4층 객실 곳곳을 다니며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던 모습이 목격됐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순간에도 학생들의 탈출을 돕느라 본인은 정작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 교사는 가정에도 충실한 자상한 아버지였습니다. 특히 그는 '아내 바보'였던 것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사고 당시 아내는 단원고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옆 학교 단원중 교사였습니다. 그는 아내가 행여 아침밥을 먹지 않고 출근하면, 담장 너머로 간식거리를 챙겨줬고, 아내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는 미리 꽃을 준비하는 세심한 남편이었습니다.

고 교사는 두 아들에게도 지극 정성이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퇴근 후 피곤할 법도 하지만 아이들과 시간 보내는 일을 잊지 않았고, 틈틈이 캠핑 여행도 다녔습니다.

그의 아내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언제나 자상한 남편이었고 아이들에겐 최고의 아버지였다"며 "지난 스승의 날은 유족들에게 너무 가슴 아픈 날이었다"고 남편을 추억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후 아내는 사고 당일 아침 남편이 보낸 "애들을 돌보느라 고생했다. 미안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추억을 바다에 묻고 3년 넘게 버텼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뉴스 픽'입니다.

(사진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