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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상상도 못했다"는 靑…순진? 혹은 무능?

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작성 2017.09.12 13:54 수정 2017.09.12 13:58 조회 재생수7,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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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상상도 못했다"는 靑…순진? 혹은 무능?
11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됐습니다. 지난 1988년 헌법재판소가 출범한 이후 첫 사례입니다. 임명동의안 부결을 놓고 여야는 물론 청와대까지 가세해 책임 공방이 뜨겁습니다. 국회 협상 창구인 청와대 정무수석 입에서까지 “오늘만큼은 (국회로 가는) 마포대교 건너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감정적으로 격해진 모습입니다.

● 靑 “반대를 위한 반대…가장 나쁜 선례”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된 뒤 1시간 반이 지나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춘추관 브리핑 룸을 찾았습니다. 윤 수석의 첫마디는 “상상도 못했습니다”였습니다.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으니 야권에 대한 유감 표명이야 당연히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브리핑 첫 마디가 이런 내용일 줄은 저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협상을 해온 여당이 있고 이를 조율해온 청와대 정무라인이 있는데 ‘상상’도 못했다… 이건 청와대가 자칫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는 자기 고백처럼 들릴 수도 있는 탓이었습니다. 

윤 수석은 “오늘 국회에서 벌어진 일은 무책임의 극치, 반대를 위한 반대로 기록될 것이다.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국민의 기대를 철저히 배반한 것이다. 특히 헌정질서를 정치적이고 정략적으로 악용한 가장 나쁜 선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새 정부 들어서 청와대가 야당을 향해 이렇게까지 원색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굳이 부가적인 설명이 없어도 청와대가 이번 사태에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기에 충분했습니다. 윤 수석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유로 “김 후보자에게는 부결에 이를 만한 흠결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납득할만한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청와대가 헌법기관장의 국회 임명동의를 진행하면서 야권의 선의에만 기대를 걸었다는 것인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김이수 후보자의 자질이나 이에 대한 야권의 판단에 대한 잘잘못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만 국정을 운영하는 청와대가 국회 임명동의를 받아야 하는 인사 문제를 너무 안이하게 접근한 것처럼 보였던 건 사실입니다.

● 靑 “이번 사태 책임…국민이 가장 잘 아실 것”

윤 수석은 브리핑 마무리 발언으로 “이로써 헌재소장 공백사태가 계속될 것”이라면서 “이번 사태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에게 있는지 국민께서 가장 잘 아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굳이 해석을 달아드리지 않아도 ‘헌재소장 공백 사태의 책임이 전적으로 야권에 있다’는 말이라는 것을 쉽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 입장에서 이런 실망감에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한 걸까요? 대통령과 국회는 모두 국민이 직접 선출한 권력입니다. 한쪽이 어느 한쪽을 비난하는 건 쉽지만 그걸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특히 대통령-청와대는 국정 운영을 책임진 쪽입니다.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담당한 기관인 국회를 설득하고 함께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 건 청와대의 몫입니다. 
김이수 국회● 이 총리 “文 정부,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가 협치”

너무 뻔한 비판처럼 들리시나요? 네, 청와대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정략적인 야권의 태도가 문제의 본질 아니냐’라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다만 생각해봅니다. 야권, 즉 야당들은 여당에게 정권을 내어준 정치적 경쟁자입니다. 원칙적으로 야당은 국익을 위해 국정에 협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쟁관계에서 그렇지 못한 경우가 휠씬 더 많다는 건 과거 사례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정부라도 인사 문제 표결에서 야권의 선의만을 기대했다면 그건 순진을 넘어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을 겁니다.

그럼 늘 여권과 야권은 서로 싸워야만 하는 걸까요? 서로에게 득이 되는 사안이라면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필요한 게 '협치'입니다. 협치는 정권을 가진 쪽이 그렇지 못한 쪽, 즉 야권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협치의 주도권과 책임 모두 청와대와 여당, 즉 여권에 있다는 뜻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여야정 협의체를 제안하며 협치를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현 정부가 협치에 얼마나 성과를 거뒀는지는 1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한 이낙연 국무총리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총리는 '정세균 국회의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협치에 낙제점을 줬다'는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이 말에 "저도 협치가 아쉽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습니다. 이어 '낙제점, 0점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표현은 어떻든 문재인 정부의 가장 아쉬운 점 가운데 하나가 협치"라고 거듭 밝혔습니다.

그간 청와대와 여당은 국회에서 주요 안건을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기면 같은 정치적 뿌리를 가진 국민의당에만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으레 뭐든 반대하는 걸로 치부하고 상대적으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걸로 보였습니다. 물밑으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자들이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한마디로 힘들게 정치색 다른 자유한국당 설득하느라 힘 빼기보다 쉽게 쉽게 가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번에도 여권의 ‘러브 콜’ 대상은 국민의당이었습니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이 반대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국민의당에 공을 들이고 기다렸지만 국민의당이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당론 찬성으로 채택하지 않고 자유투표에 맡기면서 뜻밖의 결과를 맞았습니다. 국민의당에서는 오히려 여당인 민주당 내에서 이탈표가 있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 ‘내 탓 네 덕’ 협치의 조건

새 정부 첫 정기국회가 막 시작됐습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됐지만 새 정부 입장에서는 그 외에도 국회의 협조를 얻어야 할 사안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일자리 법안, 복지 법안, 증세 법안, 예산안 등등 첩첩산중입니다. 

특히나 국회 선진화법 이후로 법안 처리는 더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설사 국민의당과 찰떡 궁합이 되더라도 원활한 법안 처리를 위해서는 그 정도 의석수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자유한국당과 절대 타협할 수 없다면 적어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정의당까지는 협조를 얻어내야 가능합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협치의 책임은 정권을 가진 쪽에 있습니다. 국정 운영의 책임이 그 쪽에 있는 까닭입니다. 야당에게 왜 협조하지 않느냐고 비난하는 건 당장은 시원할지 몰라도 별 보탬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협조할 수 있게 설득하고 타협하고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청와대와 여당이 할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에게 있는지, 국민께서 가장 잘 아실 것”이라는 청와대 반응은 아쉬움이 큽니다. 주요 국정 과제가 국회에서 제동이 걸릴 때마다 으레 ‘국민 심판’을 강조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현 정부의 국정지지도가 높은 만큼 국민 대다수가 야권의 이번 표결을 괘씸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일해야 할 야권과 자꾸 각을 세우는 건 일을 풀어가야 하는 정부 여당에게 외려 부담만 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