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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살충제보다 더 무서운 '닭 진드기'…"사람도 공격해 감염 우려"

[취재파일] 살충제보다 더 무서운 '닭 진드기'…"사람도 공격해 감염 우려"
● '닭 진드기' 심각성 이미 알고도 방치한 정부

살충제 달걀 사태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가 살충제 달걀을 매일 2개 반 정도 평생 먹어도 안전하다는 위해성 평가 결과를 내놓았지만, 식당과 가정에서 달걀 소비는 되레 줄고 있습니다.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는 겁니다. 살충제 자체도 문제지만, 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이유가 있습니다. 농가들이 달걀에 살충제를 사용한다는 것을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이미 1년 전, 아니 이보다 훨씬 전에 알고 있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정부 기관들은 이런 불편한 진실이 수면위로 드러나는 것을 꺼려했고, 대처 방법도 미숙했습니다. 몸에 해로운 살충제는 지금부터라도 아예 사용을 금지시키거나 최소한으로 사용하면 되지만, 조금 더 불편한 진실, ‘닭 진드기’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대책을 세우는 곳이 없습니다.

● '닭 진드기' 사태 발단은 동물복지농장 도입한 유럽

사실 달걀 살충제 파동의 주범은 ‘닭 진드기’입니다. 진드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보다 동물복지 농장을 앞서 도입하고, 친환경 인증 기준도 훨씬 까다로운 유럽에서 먼저 진드기로 인한 살충제 파동이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벨기에 일부 농장이 금지된 살충제인 피프로닐을 진드기 방제에 썼고, 이 농장에서 생산된 달걀이 네덜란드와 독일 등지에 유통되면서 유럽 전역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우리의 달걀 파동과 차이점은 유럽은 벨기에의 한 살충제 공급업체가 살충 효과를 높이려고 쓰지 말아야 할 성분을 섞어 네덜란드 방역 업체에 유통한 부도덕성이 문제의 발단인 반면 우리나라는 친환경 인증 농가들을 중심으로 금지된 살충제 사용이 만연해있었다는 점입니다.

● '닭 진드기' 생존능력 탁월…"아무것도 먹지 않고 9개월 버텨"
참진드기에 비해 작은 편인 닭진드기
‘닭 진드기’는 크기가 1mm 내외로 진드기 가운데서도 작은 편에 속합니다. 닭과 새 등에 주로 기생하는데, 거미처럼 다리가 8개, 몸은 머리가슴과 배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닭의 피를 빨아먹고 성장하는데 알에서 약충, 성충 단계까지 7~10일 정도 걸립니다.

이 진드기의 생명력은 매우 강합니다. 섭씨 56도, 영하 20도에서 살아남고, 흡혈하지 않고서도 섭씨 5도에서 9개월 동안 생존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둡고 습한 좁은 공간을 좋아하는 야행성으로 낮에는 숨어있다 밤에 활동합니다. 눈이 퇴화했기 때문에 닭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나 열을 감지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고온다습한 환경을 좋아하는데 최근 몇 년간 여름에 무더위가 이어진 것도 진드기 번식을 왕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진드기의 생존 능력이 이렇게 강하다보니 퇴치가 쉽지 않습니다. 신경을 마비시키는 화학 살충제에 비교적 잘 죽지만, 진드기들도 살충제를 이겨내는 힘, 즉 내성을 기르기 때문에 점점 퇴치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2007년 발표된 국내 연구논문을 보면 닭 진드기가 피프로닐 성분에 이미 내성이 생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0년 전에도 피프로닐을 살충제로 써왔을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농장에서 점점 더 독한 살충제를 고농도로 써왔고, 진드기는 이에 대항하는 내성을 길러왔다는 것은 가금 수의사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특정 살충제에 내성이 생기면 다른 살충제를 번갈아가면서 쓰는 악순환이 반복되다보니 살충제 샤워를 한 닭의 몸속으로 살충제 성분이 들어가 살충제 달걀이 만들어졌던 겁니다.

● '진드기'에 괴롭힘 당하는 산란닭…"질병에 걸려 폐사 속출"

살충제를 무기로 선택한 인간은 진드기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불행히도 현재로선 전망이 밝지 않습니다. 인간이 잠드는 밤에 주로 활동하고, 살충제에 대항하는 힘을 길러 온도와 습도 등 환경만 맞으면 진드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살충제를 뿌려대도 잠시 그 때 뿐, 살아남은 진드기는 다시 닭을 공격해 괴롭힙니다. 닭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산란계 농장의 닭들도 밤 9시 넘으면 잠을 잡니다. 하지만 몸속을 파고드는 진드기 때문에 가렵고 따가워서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진드기 개체수가 많으면 빈혈까지 걸리고, 영양실조로 껍데기가 무른 불량 달걀을 낳습니다. 산란율도 최대 20% 정도 떨어뜨립니다. 더 큰 문제는 진드기가 살모넬라균 등을 옮겨 닭에 티푸스 같은 질병을 유발합니다. 이는 닭들이 집단 폐사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합니다. 최근 유럽에서는 닭 진드기가 사람을 공격하는 사례까지 잇따라 보고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치명적인 질병을 옮긴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안전하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 '닭 진드기' 방제 정부 연구 기관 없어…농장들만 외로운 싸움

싸워도 이기기 힘든 진드기와의 전쟁을 우리는 온전히 농가들이 담당해왔습니다. 살충제 달걀 파동의 책임을 농가들에게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닭 진드기의 생태와 특성에 대한 연구, 친환경 퇴치제 개발 노력은 국내에서는 거의 없었던 게 현실입니다.

중증혈소판감소증후군 같은 사람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옮기는 참진드기나 쯔쯔가무시증을 유발하는 털진드기는 현재 질병관리본부에서 개체수와 발병 환자수를 감시하고 있지만, 닭 진드기는 아직 모니터링 대상이 아닙니다. 가축 질병을 연구해야하는 농식품부 산하 검역검사본부나 농약을 허가해주는 농촌진흥청, 그 산하의 국립축산과학원 역시 연구 성과가 없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관련 정부 기관들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농가들만이 진드기 방제에 매달렸던 겁니다.

● "동물복지 농장 확대가 능사?"…사육장 청결, 위생 개선이 먼저
닭 DDT검출
윤종웅 한국가금수의사회 회장은 “국내 산란계 농장 120곳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해보니 진드기 감염률이 94%로, 농장 10곳 중 9곳은 감염된 상태이다.”라고 조사결과를 내놨습니다. 이는 유럽 평균 감염률 83%보다도 10%p가량 높은 수치입니다. 동물복지형 사육방식(사육 케이지 공간을 넓히거나 방목형으로 풀어 키우는 방식)을 의무화한 유럽도 진드기 감염률이 80%대에 달하는데, 정부 대책대로 동물복지형 농장 비중을 30%로 늘리는 것이 대책이 될 수 있을까요? 전문 수의사들은 정부가 현장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입을 모읍니다.

동물복지형 농장의 확대가 우리 축산이 나아가야할 방향이지만 적어도 진드기 퇴치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닭장 규모를 넓힌 유럽 국가의 경우에도 사육장의 청결, 위생 상태가 안 좋으면 닭 진드기가 우글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닭 진드기와의 싸움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먼저 사육장의 청소, 위생 상태부터 개선해야 합니다. 인천 강화에서 산란닭을 밀집사육하고 있는 방글농장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 농장은 5년 전부터 이틀에 한번 꼴로 닭장 구석구석을 강한 바람으로 청소해 먼지나 진드기를 없애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독약을 탄 물로 바닥을 깨끗이 청소한 결과 진드기 박멸에 성공했습니다. 이번 살충제 검사에서도 안전했습니다. 방글농장의 이태종 농장주는 “밀집사육 환경이 진드기의 서식을 좋게 만들지만, 역으로 잘만 관리하면 퇴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취재진도 닭장 안으로 들어가 본 결과 계분 냄새가 전혀 안 날 정도로 청결했습니다. 살충제를 안 쓴다는 소식이 퍼진 뒤로부터 이 농장 달걀을 구매하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 "농장주는 생산에만 전념…진드기 방제는 전문 업체에 맡겨야"

하지만, 이렇게 밀집사육장을 깔끔히 청소 관리하는 농장은 많지 않습니다. 농장들이 대부분 인력난을 겪고 있어 외국인 노동자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농장주들도 하고 싶어도 사육장의 청결상태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겁니다. 농장주들의 태도, 인식도 문제이긴 하지만 열악한 소규모 농장까지 진드기 방제를 하라고 까지 하는 건 무리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유럽의 경우 농장은 달걀의 생산에만 전념하고 방역이나 방제는 전문 업체들이 맡고 있습니다. AI바이러스나 해충과의 싸움에서 농장주들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한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도 이런 전문 방제 업체들이 한두 곳 생겨나고 있지만 비용 문제로 이를 도입한 농장은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화학 살충제를 대체할 천연물 퇴치제 개발을 지원하고 각종 방제 방법을 연구하는 것은 관련 정부 기관의 몫입니다. 지금껏 사태가 이 정도까지 악화되는 걸 방치한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중장기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합니다. 진드기와의 전쟁은 농가만이 나서서는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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