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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단독] "모두가 함께 잘 살자"던 생협…직원에겐 해고와 감시

● "함께 잘살자"던 생활협동조합

한 생활협동조합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업체의 모토로 내걸었지만 이면에는 소모품처럼 쓰고 버려진 매장 직원들이 있었습니다.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은 마트와 달리 소비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해 물건을 사야 합니다. 생협은 주로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를 팝니다. 소비자에게 믿고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생산자에게 공정한 비용을 지불해 상생의 구조를 만들자는 게 생협인데 한국에서는 '한살림'이나 '아이쿱'이 대표적입니다.

제보를 받아 취재를 시작한 이 A 생협은 후발주자였지만, 싼 조합비로 유기농산물을 팔며 최근 1, 2년 사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현재는 전국에 70여 개 지점이 있습니다. 
해당 생협 지점 외경
● 부당해고와 근로기준법 위반

대형마트 계산원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는 문제는 지속적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친환경'과 '상생'을 내걸고 대형마트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생활협동조합에서 마저 계산원의 대우는 좋지 않았습니다. A 생협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분들은 보통 40~50대의 여성입니다. 각 지점에서 농산물을 진열하고 계산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근무환경을 들여다보니 문제가 적지 않았습니다.

A 씨는 지난달 해고를 당했습니다. 관리자가 어느 날 갑자기 인간적인 모욕을 주면서 오늘까지만 일하라고 했다는 겁니다.

[A 씨/A 생협 서울 성동구 지점 근무]
"(관리자가) '여태까지 뭘 했느냐' 그렇게 얘기하고서는 그만두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 무서워서 그대로 저는…. 그 사람만 보면 무서운 거야. 완전히 노예 취급한다는 그런 느낌 있잖아요."


A 씨는 일방적으로 구두 해고통보를 당했지만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 항의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B 씨/A 생협 서울 성동구 지점 근무]
"직원들을 소모품 정도밖에 안 보는구나. 언제든지 구하고 내칠 수 있는 그런 소모품. 돈 1천 원 더 주고 직원들을 복종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근로기준법 27조에는 해고를 하려면 서면으로 해고 사유와 시기를 명시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또한 17조에 따라 모든 근무자들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생협에서는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생협에 따르면 A 씨 뿐 아니라 해당 지점의 다른 계산원, 직영점을 제외한 다른 지점 계산원들 또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생협 지점 직원
근로계약서가 없다보니 휴게시간도 명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 생협에는 6시간과 9시간 일하는 직원들이 있었는데 두 경우 모두 규정된 휴식시간은 없었습니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도 지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A 씨/A 생협 서울 성동구 지점 근무]
"직원들끼리 눈치 보면서 한 사람씩 나가서 얼른 나가서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씩 10분, 20분씩 먹고 후다닥 들어와서 딴 사람 얼른 갔다 오라고 그런 식으로 했었어요."


휴게시간 또한 근로기준법상 4시간 노동의 경우 30분, 8시간의 경우 1시간을 가지도록 되어있습니다. A 생협에서는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고 1시간의 점심시간이나 정해진 휴식시간이 없었습니다.  

업체 대표는 이에 대해 직원들이 원해서 한 조치라며, 별도의 정해진 휴게시간 없이 일하고 일찍 퇴근하는 걸 모두가 선호한다고 해명했습니다. 배현의 민주노총 노동법률센터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에 나와 있는 것들은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최소기준이다. 휴게시간 또한 마음대로 미룰 수 있는 게 아니라 노동시간 도중에 의무적으로 30분, 1시간씩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 'CCTV로 직원 감시하기도"

이뿐 아니라 관리자들이 직원을 CCTV로 감시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A 씨/A 생협 서울 성동구 지점 근무]
"항상 관리자들 새로 오는 사람마다 하는 얘기가 CCTV로 다 지켜보고 있다고. 직원들은 '이게 무슨 공산당이야' 그랬죠. 직원들끼리 있을 때도 'CCTV 본다 본다' 하면서 흩어지고 이런식인 거죠."

[B 씨/A 생협 서울 성동구 지점 근무]
"관리자가 매장에 없는데 CCTV로 보면서 카운터 쪽에 모여있지 말라, 자세를 고쳐라 이런식으로 지시를 하는거에요."

[C 씨/A 생협 서울 송파구 지점 근무]
"하루는 한 직원이 힘들어서 잠깐 카운터에 걸터앉았어요. 관리자가 CCTV 화면을 캡쳐해서 그걸 직원들 카카오톡 단체방에 올렸더라고요. 이렇게 (자세를) 하면 안 된다고."


업체 대표는 "요즘 세상에 그런 곳이 어디 있느냐"며 "CCTV는 도난 방지용으로 매장에 설치했을 뿐 감시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관리자가 직원 카카오톡 단체방에 보낸 메시지
● 용역업체의 일이라던 업체 대표의 말 바꾸기

업체 대표는 해당 지점의 근무환경과 해고 등에 대해 질문하자 용역업체가 직원을 관리하기 때문에 본사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A 생협의 경우 3개의 지점만 직영점으로 본사 직원들이 운영하고, 나머지 60여 개 대리점은 용역직을 고용해 운영됩니다. 업체 대표에 따르면 본사 직원의 수는 70여 명 수준인데 용역 직원들은 전국적으로 수백 명에 달합니다. 

배현의 노무사는 "간접고용의 방식으로 본사의 책임을 용역업체에 떠넘기는 방식이 마트 업계에서 일반적인 관행처럼 되어있다"며 "본사가 불법적으로 업무도 지시하고 여러 가지 통제도 하지만 용역업체에 떠넘기면서 실질적인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취재결과 해당 지점의 용역직원의 근무일지 등이 A 생협의 서울사무소로 전달되고, 용역직원의 채용과 월급 관리 또한 이곳에서 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업체 대표와 본사 직원들이 그룹형 SNS인 '밴드'를 통해 각 지점의 용역직원들에게 지시를 하고 보고받는 사실 또한 드러나자 업체 대표는 말을 바꿨습니다.

해고가 일어난 사실은 용역업체라 관여하지 않는다던 대표는 해당 지점이 사실은 자신의 개인 매장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용역 직원에게 관리감독은 전혀 하지 않으며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라 했던 대표는 그룹형 SNS로 지시하는 정도의 관리 감독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해명했습니다. 고용노동부 동부고용노동지청은 A 생협을 상대로 부당해고 및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해 조사 중입니다.

취재가 시작되자 업체 대표는 "놓치고 가는 부분이 있었던 것을 반성하고 책임지는" 의미로 A 생협의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전국 70여 개 지점 중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한 모든 용역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고 전해왔습니다.

● 취재 후기 : '송곳' 같은 내부고발자

업체 대표는 취재 과정에서 제보자로 추정되는 직원 D 씨의 말을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직원 D 씨에 관련해서는 질문하지 않았는데도 D 씨는 근무태도가 좋지 않고, 직원들 사이에서도 적응을 하지 못해 없는 내용을 과장해서 퍼뜨린다고 주장했습니다.

문제가 된 생협 성동구 지점에 찾아가 보니 몇몇 직원들은 대표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D 씨가 괜한 분란을 만들고 있다며 회사를 적극 옹호하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해당 지점에는 D 씨를 헐뜯는 직원도 있는 반면, 몰래 D 씨를 뒤에서 응원하며 상황을 알려주는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최규석 웹툰 <송곳><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출처 : 네이버 만화)" id="i201085559"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0823/201085559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은 대형마트 비정규직 계산원들의 노동환경을 다룹니다. 이 만화에는 너무 원칙적이어서 직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송곳'처럼 튀어나오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회사는 소모품처럼 마트 직원을 다루지만 비정규직인 이들이 맞서기에는 힘이 부칩니다. 직원들은 주인공을 둘러싸고 회사를 옹호하는 쪽과 힘을 모아 회사에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쪽으로 나뉩니다. 해당 생협을 취재하면서 웹툰 <송곳>을 떠올렸습니다.

 직원 A 씨는 자신이 해고되지 않았다면 노동부에 신고를 하거나 언론사에 제보를 할 수 없었을 거라고 고백했습니다.

[A 씨/A 생협 서울 성동구 지점 근무]
"저 같은 경우는 나이가 많아요. 제 나이에 어디서 받아줄 수 있는 데가 흔한 것도 아니어서 모욕을 계속 참고 일을 했지만 속으론 '이건 너무 치욕스럽다' 늘 생각했었어요."
"(직원들이) 다들 말은 안 하죠. 괜히 말하다가 누가 위에다 찌르기라고 하면 무슨 욕을 얻어먹을지 어떻게 알고. 말은 서로가 안 하지만 속으로는 아마 다 그렇게 느꼈을 것 같아요. 은연중에 그런 걸 내비치기도 하고요. 그 사람들도 저처럼 느끼고 있을 것 같아요."


동종업계 다른 업체보다 좋은 근무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본사 대표는 내부고발자 D 씨만 없었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처럼 말했습니다. 하지만 D 씨 외에도 힘들고 모욕적인 일을 겪었던 직원 A, B, C, E 씨도 제보를 해왔습니다. 정당한 노동환경을 제공하지 않는 한 '송곳' 같은 내부고발자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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