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제보하기

[취재파일] 무기개발회의 상 엎은 장관…신선한 분노

김태훈 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7.08.19 10:24 수정 2017.08.19 17:34 조회 재생수44,664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무기개발회의 상 엎은 장관…신선한 분노
군에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줄여서 방추위라는 기구가 있습니다. 무기의 도입, 개발, 개량 사업을 결정하는 무기 관련 최고 의결 기구입니다. 위원장은 국방부 장관이 맡고 각 군의 책임자와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ADD) 고위직들이 참가합니다. 그 동안 방추위원들은 사전에 조율 된 안건에 대해 거수기 역할만 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난상토론 끝에 안건이 부결되거나 심의가 연기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18일) 열린 제 103회 방추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킬 체인의 핵심인 정찰위성 개발 사업을 착수하는 절차인 정찰위성 추진기본전략 수정안 및 체계개발기본계획안의 심의가 있었는데 위원장인 송영무 국방장관이 시쳇말로 상을 뒤엎은 것입니다. 국가정보원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자기 밥그릇 키울 욕심에 끼어든 탓이었지만 이유 불문하고 킬 체인의 핵심인 정찰위성 개발 사업이 3년 이상 지체 된 점이 장관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정찰위성을 제때 띄우지 못하면 처벌하겠다” “정찰위성 사업 끝나기 전에 정년 퇴직하는 사람은 사업단에서 나가라”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하라” 방추위에서 쏟아낸 송 장관의 발언들입니다. 회의 분위기는 옛날 군 용어를 빌리자면 ‘쪼인트’만 없었지 살벌했다는 후문입니다.

정찰위성 사업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선제 공격하는 킬 체인의 '눈'을 구축하는 일입니다. 제때 구축하기 위해서라면 위원들은 방추위의 상을 열 두 번 더 엎어도 박수 받습니다.
방위사업추진위● 사업 끝나기 전에 정년퇴직? 교체하라!

송 장관은 정찰위성 사업 담당자들의 정년부터 따졌다고 합니다. ADD의 정찰위성 개발 책임자가 “정년이 3년 반 정도 남았다”고 하니 송 장관은 노발대발하며 일갈했습니다. “당장 개발 책임자를 바꿔라” 정찰위성 사업은 적어도 5년은 필요합니다. 정찰위성 사업 중간에 퇴직할 사람이 정찰위성 개발을 맡는다면 책임감이 옅어질 수 있다고 보고 송 장관이 단칼에 인사 조치를 지시한 것입니다.

킬 체인의 정찰위성은 고성능 영상레이더(SAR) 위성과 전자광학(EO) 위성 등 2종류, 5기입니다. SAR 위성은 ADD가, EO 위성은 항공우주연구원이 주관해서 개발합니다. 항공우주연구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여서 방추위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항공우주연구원의 EO 위성 개발 목표 기한은 ADD의 SAR 위성 개발 목표 기한보다 깁니다. 어제 방추위에서 ADD 측이 “우리도 항공우주연구원처럼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했다가 송 장관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하루에 8시간 일했으면 오늘부터는 12시간, 아니 밤을 새워서 일하라” 송 장관의 이런 발언이 알려지면 항공우주연구원도 뜨끔할 수밖에 없습니다.

송 장관은 각 분야별로 평가해서 목표 달성을 못한 곳은 처벌하는 조항까지 넣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너무 가혹하고 법에 관련 근거도 없다는 ‘조용한’ 반발에 밀려 처벌 조항은 만들지 않기로 타협을 봤습니다.

결국 어제 방추위의 주요 안건이었던 정찰위성 추진기본전략 수정안 및 체계개발기본계획안은 심의가 다음 주로 1주일 연기됐습니다. 각자 맡은 바 임무에 무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틀을 다시 짜라는 송 장관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서 입니다.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정찰위성 사업은 어제 자로 3년 여 ‘지각’ 착수할 예정이었지만 7일 더 늦춰졌습니다. 단단히 해서 제대로 된 위성을 만들 수 있다면 7일이 아니라 70일 늦어져도 괜찮다는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방위사업추진위정찰위성 사업, 뿌리부터 살펴봐야

다음 주 방추위에서 정찰위성 추진기본전략 수정안 및 체계개발기본계획안이 심의 통과되면 바야흐로 정찰위성 사업이 착수됩니다. 당초 계획보다 3년 이상 지체됐습니다. 국가정보원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번갈아 정찰위성을 차지하려고 달려드는 통에 늦어진 것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청와대의 교통 정리로 발을 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정찰위성은 군과 국가정보원이 공동 운용하는 식으로 정리가 됐습니다.

지금부터 서둘러 정찰위성 5기를 계획대로 잘 만들면 킬 체인은 눈을 뜰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 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우선 정찰위성 5기는 킬 체인의 눈으로 턱없이 부족합니다. 정찰위성 5기로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북한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들을 시시각각 쫓을 수 없습니다. 국방장관은 방추위원들 혼만 낼 것이 아니라 이왕 칼을 뽑아 들었으니 정찰위성 사업의 뿌리부터 뜯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안되겠다 싶으면 싸게 파는 외국 정찰위성도 찾아보고, 타 부처가 운용하는 위성들을 빌려 쓸 궁리라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