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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문재인 정부가 검찰에 보낸 '엉뚱한 메시지'

[취재파일] 문재인 정부가 검찰에 보낸 '엉뚱한 메시지'
지난 6월 8일, 법무부는 갑작스럽게 검사장급 간부에 대한 인사 조치를 발표했다. '정윤회 문건 사건'과 우병우 前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를 책임졌던 검사들이 좌천됐다. 당시 법무부는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과거 중요사건에 대한 부적정 처리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던 검사들을(2017년 6월 8일 법무부 보도자료 中)" 한직으로 발령했다고 공개적으로 설명했다.

수사에 정말 문제가 있었는지 조사도 하기 전에 사건을 부적정하게 처리했다고 결론짓고 인사 조치한 것은 잘못이라는 항변이 나왔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이때부터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과거 중요사건에 대한 부적정 처리 등의 문제가 제기된" 검사들을 좌천한다는 방침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 개혁의 원칙으로 인식됐다.

● 말뿐이었던 인사 원칙

두 달이 지났다. 검찰의 실무를 책임지는 중간간부급 인사가 발표됐다. 지난 6월 좌천 인사를 단행하며 발표한 인사 원칙,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 회복'과 '과거 중요사건 부적정 처리 검사 좌천'이 또 한번 관철될 것이라 누구나 기대했다. 더구나 이번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협의해서 단행한 인사 아닌가? 정부의 인사 원칙이 흔들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부가 천명한 개혁 인사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물론 이번에도 "엄정한 신상필벌 적용 - 업무 처리 등과 관련하여 검찰에 대한 신뢰 저하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되는 중간 간부들에 대하여는, 그러한 사정을 인사에 반영하였음('2017년 하반기 검사 정기 인사' 법무부 보도자료 中)"이라는 인사 원칙이 소개됐다. 말뿐이었다. 객관적으로 잘못이 인정된, 심지어 정치적 논란의 소재가 될 수 조차 없었던 사건을 처리한 검사들이 버젓이 영전하거나 부활의 기회를 잡았다. 

● '약촌오거리 사건' 검사들의 영전
약촌오거리
대표적 사례가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 수사에 관여한 검사들의 영전이다. 인사 발표 2일 전 문무일 검찰총장은 검찰의 과거 잘못에 대해 총장으로서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당시 부적정하게 처리한 사례로 문무일 총장이 언급한 3가지 사건 중 하나가 약촌오거리 사건이다. 사건 발생 직후 검찰이 기소해 감옥에 갔던 최 모 씨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을 뿐 아니라, 검찰이 진범으로 추정되는 다른 피의자를 새로 구속기소까지 한 사건이다.

새로운 피의자를 검찰이 기소한 것 자체가 앞선 수사의 잘못을 검찰이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럼에도 사건 발생 3년 뒤 경찰이 진범으로 추정되는 김 모 씨에게 자백을 받은 뒤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검사는 이번 인사에서 법무부의 과장으로 영전했다. 그로부터 또 3년 뒤 김 씨를 조사하고도 기소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한 다른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의 부부장으로 승진했다. (** 억울하게 감옥에 갔던 최 모 씨에 대한 재심 무죄 판결이 확정되자, 검찰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김씨를 구속기소했다.) 법무부와 검찰은 두 검사가  "업무 처리 등과 관련하여 검찰에 대한 신뢰 저하에 책임 있다"고 판단하지 않은 것일까?

● '간첩 증거조작' 관련 검사들의 부활
간첩 누명 무죄 선고
'서울시 공무원 간첩 혐의 증거조작 사건'에 관여한 검사들의 부활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번 인사에서 당시 2013년 국가정보원이 간첩 혐의 증거를 조작한 사건의 공소유지에 관여했던 검사 2명은 각각 수원지검과 서부지검의 부장검사로 발령받았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관련 검사들의 영전 인사에 비해 화려함은 덜하지만 조작된 증거에 대한 검증 의무를 소홀히 해 정직 1개월의 징계까지 받았던 검사들에게 사실상 부활의 기회를 준 것이라고 평가된다. 법무부와 검찰이  "과거 중요사건에 대한 부적정 처리 등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검사들은 사건을 부적정하게 처리했다는 의혹만으로도 콕 집어 좌천되고, 어떤 검사들은 사건을 부적정하게 처리한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돼도 요직으로 진출하거나 부활의 기회를 받았다. 이번 인사를 지켜본 한 검사는 "어여삐 여기는 사람은 부적절한 사건 처리에 관여해도 눈 감아 주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부적절한 사건 처리를 구실로 날려버리는 것 아니겠냐"고 냉소적으로 평가했다. 인사권자의 의도가 정말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법무부가 내세운 "국민의 신뢰 회복"이나 "엄정한 신상필벌"의 원칙이 무색해진 것은 사실이다.

● 엉뚱한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은 이번 인사의 메시지가 엉뚱하게 해석되는 사태다. 어떤 검사는 사건을 부적정하게 처리해도 영전하고, 어떤 검사는 부적정하게 처리한 사실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좌천된 것을 보고 검사들이 갖게 될 생각은 무엇일까? 앞으로 사건을 더 엄정하게 처리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대신, 사건을 부적정하게 처리해도 영전할 수 있는 '비결'을 알아내는 것에 골몰하지 않을까? 그 비결이 인사권을 가진 청와대나 법무부와 가까워지는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면 문재인 정부가 의도한 검찰 개혁과는 정확히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정치권력 앞에서 약해지는 검찰의 모습 말이다.

인사는 조직에 메시지를 전파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그리고 인사권자의 메시지는 보도자료에 적힌 문구가 아니라 실제 인사의 결과를 통해 조직에 전달된다. 첫 번째 검찰 중간 간부 인사에서 문재인 정부는 '검찰 개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내일(17일)부터 새로운 근무지로 출근할 검찰의 중간 간부들이 엉뚱한 메시지를 접수하지 않았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지금 검찰이 맞이한 위기는 인사권자와 충분히 가깝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가깝고 친밀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란 당연한 교훈을 그들이 스스로 되새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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