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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두환 회고록' 판매 금지…어기면 '건당 5백만 원 벌금'

박세용 기자 psy05@sbs.co.kr

작성 2017.08.10 15:37 수정 2017.08.10 18:15 조회 재생수20,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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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전두환 회고록 판매 금지…어기면 건당 5백만 원 벌금
전두환 회고록, 문제가 된 건 회고록 1권입니다. 2, 3권은 괜찮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부분은 1권에만 있기 때문이죠. 법원이 33곳의 표현을 삭제하지 않으면 회고록을 출판하거나 판매, 배포하지 말라, 이렇게 결정한 것이 8월 4일입니다. 5.18 기념재단 변호인에 따르면, 전두환 씨 측은 그날 법원 결정문을 받았고, 가처분 결정의 효력이 생겼습니다. 판결과 달리 가처분 결정은 채무자가 결정문을 받는 순간부터 효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일부 서점에서는 회고록 1권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서점은 가처분 사건의 채무자가 아니기 때문에 판매 행위 자체는 문제없습니다. 채무자인 전두환 씨와 출판사를 운영하는 아들 전재국 씨가 책이 서점에서 판매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이를 어길 경우엔 5.18 기념재단 등에 1회 당 5백만 원을 지급하라는 게 법원 결정입니다. 서점에서 회고록 1권이 판매되고 있다는 걸 발견할 경우 5.18 재단에 알려줘도 됩니다. 그럼 입증 자료를 만들어서 법원에 제출하고, 인정되면 전두환 씨는 1건 당 5백만 원씩 간접강제금을 내야 합니다.

● 계엄군은 결코 시민에게 총을 겨누지 않았다?

“1980년 5월 광주에서도 계엄군은 죽음 앞에 내몰리기 직전까지 결코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지 않았다.”

회고록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죽음 앞에 내몰리기 직전까지’라는 단서를 달아서, 계엄군이 시민의 공격을 받다가 정당방위 차원에서 사격한 일은 있었다는 취지로 들립니다. 하지만 ‘죽음 앞에 내몰리기 직전’이라는 표현이 추상적인 만큼, 저 문장은 언뜻 사격 행위 자체를 부인하는 것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광주에서 계엄군과 시민 사이에 총격이 벌어진 것은 역사적인 사실인데 말입니다. 전두환 씨 변호인도 물론 계엄군이 사격을 했다는 것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전 씨 변호인은 저 문장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계엄군도 다 우리 국민인데, 아무 총기가 없는 그냥 시민을 향해서 총을 쏜 건 아니다. 그걸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계엄군이 총기를 쓴 건 시위대의 차량 돌진이나 총기 공격이나 이런 불가피한 상황에서 교전이 일어난 것이지, 비무장 시민을 향해 적을 공격하듯 총기를 쓴 게 아니다” 이번 가처분 사건에서도 법원에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비무장 시민에게 총을 쏜 적은 없다?

비무장 상태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거나 숨진 사상자들, 기록에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수많은 기록 가운데 하나만 소개해 드립니다. 당시 11여단의 군인이었던 사람의 검찰 신문조서가 있습니다. 1995년 4월 21일, 그는 검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질문: 계엄군 사이의 오인사격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후에 11여단 병력이 효덕국민학교와 주변마을을 향해 총을 난사하여 학교에서 놀던 국민학교 4학년생 OOO군이 사망하고 그 외에 낮잠을 자던 주민 OOO, 못자리를 돌보던 OOO, 블록공사를 하던 OOO 등이 총상으로 인한 부상을 당하였다는데 사실인가요.

답: 오인사격이 있은 후 마찬가지로 저희가 길 양편으로 사격을 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있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두환 씨 측은 이 사건은 학살이 아니라, 무장 시위대와 교전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였다고 주장합니다. 계엄군이 주변 야산 무장시위대의 공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도로 주변의 어린이 등이 숨졌다는 겁니다. 비무장 상태의 무고한 사람을 조준해서 쏜 것은 아니라는 취지인데, 이 주장은 90년대 전두환 씨에 대한 재판에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전두환 회고록, 판금, 삭제, 왜곡● 조준사격 하지 않았다?

90년대 진행된 전두환 씨 재판 과정에서 계엄군이 당시 시민을 ‘조준’해서 사격했는지 여부는 쟁점이 아니었습니다. 법원은 조준 사격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전두환 씨 측은 지금도 “조준사격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원이 ‘조준 사격’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을 뿐인데, 마치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번 회고록 가처분 사건에서도 전두환 씨 측은 같은 주장을 폈습니다. 전두환 씨의 공보비서관을 지낸 민정기 씨도 영화 ‘택시운전사’에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조준 사격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하자, “그건 완전히 허위 날조”라고 했습니다. 계엄군이 총을 쏘긴 했는데, 자위 차원에서 한 거라는 얘기입니다. 

● ‘조준 사격’ 증언과 기록이

1980년 5월 21일 낮, 전남도청 앞에서 발포를 목격한 당시 경찰의 얘기를 들어보시죠. 최근 취재진과 통화한 내용입니다.

“5월 21일 낮 12시 언저리에 전남도청 분수대하고 도청 정문 사이에 있었다. 갑자기 애국가가 나와서 당시에는 저녁 6시 국기 하강식 때나 애국가가 나왔는데, 순간적으로 애국가가 나오면서 집단발포가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당시 시 진압경찰이었다. 도청 정문 지키는… 5월 20일 저희가 부대에 들어갔다가 다음날 점심추진 부대로 출동하면서 점심을 싣고 경찰청에 들어갔다가 시위대에 둘러싸여서 군에 복귀를 못했다. 당시 나는 전혀 시위진압 장비도 없고, 손에 무전기 하나만 달랑 들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시위현장을 돌아다녔다. 당시 도청 분수대 중심 공수부대가 둘러싸여 있었고, 도청 분수대하고 세무사 사이에 장갑차가 하나 왔는데, 거기서 뭘 봤냐면, 장갑차가 단발사격을 했다. 당시 기관총 한 발 쏘면 시민 한 명이 푹 쓰러지고… 그러면 시위대는 흩어졌다 다시 시체를 가지러 그 자리로 모여들었다. 그럼 또 단발 사격하면 또 한 명의 시민이 쓰러지고. 그렇게 3발 단발 사격을 목격하고 도청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조준사격이 아니라 경고 사격(하늘로 쏘는)을 했다. 그러면 시위대는 흩어졌고, 공수부대 아이들한테 연발을 쏘기 위해 탄창을 끼우게 했다. 처음에는 실탄 지급이 안 된 듯했다. 장갑차에서 실탄박스 내리면서 재장전, 그때 중대장으로 보이는 (계급장하고 이름을 보려고 노력했지만 안 보였다), 근데 그런 명령을 하는 사람은 중대장 정도이지 않을까 예상한다. 그 곳에서 야 이 개XX들아 조준사격 안 해! 외치는 걸 들었다. 당시 도청 바로 앞에서 도망가다 목격했다."


- 곽형렬 씨 증언 (당시 전남경찰국 제2기동대)

● 국방부 조사 결과에도 ‘조준사격’ 진술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조사결과보고서를 냈습니다. 당시 진상규명위는 4명의 조사관으로 조사팀을 구성해서, 당시 계엄군과 관련된 장병들과 광범위하게 면담을 했습니다. 1980.5.21 전남도청 앞 발포 문제는 진상규명위가 선정한 조사 대상 가운데 하나였고, 여기서 조준사격에 대한 진술들이 나옵니다. 조사결과보고서에서 발췌한 내용들입니다. 

“(5.21 도청 앞 발포 상황 관련해)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분수대 앞에 공수부대원들의 집중사격이 이루어졌다. 시위대가 뒤로 피신하기 시작하였고, 공수부대원들은 도청 광장을 장악했다. 금남로에 산발적으로 시위대가 나오면 공수부대원들이 조준사격을 했다. 심지어는 부상자 등을 부축하기 위해 나오던 시위대에게도 사격을 가했다.”

“시위 군중에 대한 계엄군의 공격양상을 살펴보면, 몇몇은 위협사격을 했으나 몇몇은 조준 사격했다. 전남도청 앞 발포가 있은 뒤 공수부대원 일부에게 실탄이 지급됐다. 그중 일부는 주변 건물 옥상에서 저격병의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11공수여단 62대대 5지역대장 박○○ 소령도 검찰진술에서 도청 앞 사격이 있은 뒤 주변 건물에 저격병을 배치하였다고 진술했다.” (서울지검, OOO 진술서, 5·18 수사기록 21권, 29662~29663쪽)

“우리 위원회의 조사에서 11여단 62대대 소속 한○○ 일병은 광주관광호텔 옥상에 4명이 1조가 되어 올라갔으며 사수의 지시에 따라 조준경이 달린 총으로 주동자나 총기를 휴대한 시위대를 조준 사격했다고 고백했다.

“당시 각 여단별로 M16 조준경이 지급됐다. 3공수여단은 100정, 7공수여단 102정, 11공수여단 81정이 있었다(특전사령부, 특전부대사, 1980, 343-63쪽). 또 특전사령부의 전투상보 내용 중 장비 손실 항목에서 M16 5정(7공수여단 2정, 11공수여단 3정)이 손실됐고, 또 11공수여단 장비 중 M16 조준경이 9정이 손실된 것으로 기술됐다(특전사령부, 광주지역 소요사태 진압작전(총괄), 1980, 45쪽).” 


전두환 씨 측에, 진상규명위의 조사 결과와 영화 ‘택시운전사’의 계엄군 사격 장면을 한번 비교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완전한 허위 날조'인지, 아니면 현실이 더 잔인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