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제보하기

[취재파일] 그의 집은 어디였을까…한 40대 입양인의 귀향

유덕기 기자 dkyu@sbs.co.kr

작성 2017.07.18 10:10 수정 2017.07.18 18:44 조회 재생수28,191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그의 집은 어디였을까…한 40대 입양인의 귀향
● 김상필 혹은 필립 클레이

7월 13일 오후 6시, 인천공항 지하 푸드코트 구석의 작은 방에서 추도식이 있었습니다. 추도식의 주인공은 김상필(43)씨. 미국 이름은 필립 클레이.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27년 넘게 살았던 입양인입니다. 상필 씨는 지난 5월 21일, 경기도 일산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습니다. 미국에서 추방돼 지난 2011년 7월(추정) 한국으로 돌아온 지 6년이 조금 지난 뒤 벌어진 일입니다.

2평도 채 안 되는 방에 간신히 놓인 10인용 식탁 위에는 상필 씨의 영정과 화장된 상필씨의 유골이 담긴 유골함이 자리했습니다. 추도식을 주도한 이들은 상필씨처럼 어린시절 해외로 입양된 입양인들이었습니다.

 ● 세 번 버려진 아이

상필 씨는 1974년 12월 30일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5살에 버려져 서울 은평구의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1983년 10월 27일, 상필 씨는 미국행 비행기에 태워졌습니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미국인 부부에게 양자로 보내진 겁니다. 상필 씨가 9살 되던 해의 일입니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1983년 한 해에만 상필 씨 말고도 7,261명의 아이들이 얼굴 한번 보지 못한 가족과 만나기 위해 해외로 보내졌습니다.

신세계에 도착한 상필 씨는 행복했을까. 상필씨는 양부모로부터 파양됩니다. 파양과 동시에 위탁 가정에 맡겨집니다. 위탁시스템 상 간혹 검증되지 않은 가정들도 있어 첫 번째 부모로부터 파양당한, 영어도 제대로 못했을 상필씨가 어떤 보살핌을 받았을지 알 수 없습니다. 1984년 7월 상필 씨는 다시 입양됩니다. 이로써 ‘클레이(clay) 부부가 상필 씨의 마지막 부모가 됩니다.

미국으로 보내진 지 9개월 만에 이 모든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한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부모에게 버림 받은 10살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짐작할 수 없습니다. 상필씨는 한국의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5월 25일, 상필 씨의 장례식이 막 끝난 뒤 통화한 중앙입양원의 한 관계자는 “상필 씨에 대한 기록과 보고서를 보고 추정 해보면 과거에 어떤 행복했던 경험이 별로 안 보인다.”는 말을 반복해서 되뇌었습니다.

● 고향으로 내보내지다

상필 씨는 조현병을 앓았습니다. 기질적인 요인이 강했을지, 한국과 미국에서 ‘버림받은 기억’이 큰 이유가 됐을지 알 수 없습니다. 공식적인 기록에 남아있는 첫 시기는 28세인 2002년, 조현증 진단과 함께 약물치료를 받았다는 겁니다. 상필 씨는 18세까지인 의무교육까지 마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미국에서 20대 내내 보호시설, 정신병원, 교도소를 전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양부모는 그런 상필 씨를 방치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NBC뉴스는 미국 이민세관집행국을 인용해 상필 씨가 '20년 가까이 범죄경력이 누적됐고, 강도와 여러차례의 절도, 마약과 관련된 범죄 등의 심각한 한 범죄에 대한 판결 기록이 남아있다'고 보도했습니다.
 
2011년 7월, 상필 씨가 한국으로 내보내집니다. 범죄 관련 재판 과정에서 강제 추방된 겁니다. 시민권 없음이 문제가 된 겁니다. 입양된 뒤 시민권을 신청해야 했지만, 최초 입양 당시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파양과 위탁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시민권이 제대로 처리가 안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상필 씨의 양부모는 상필 씨의 시민권 문제를 입양 직후에는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초 파양과 재입양 과정에서 시민권 취득 문제가 잊혀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입양인들에 따르면 양부모들이 미국 시민권 신청을 따로 해야 하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입양 당시 제대로 된 설명이나 사후 관리를 받지 못한 겁니다. '범죄자', '추방인'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상필 씨는 자신을 내보낸 나라인 한국으로 내보내집니다.

상필 씨는 그를 보호하거나 담당한 관련 기관 담당자들에게, 또 입양인들에게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고,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상필 씨와 같이 시민권 없이 미국에 머물고 있는 한국 출신 입양인의 수는 2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 버려진 어른이 된 버려진 아이

상필 씨는 한국에서 노숙인이 됐습니다. 버려졌던 아이가 버려진 어른이 됐습니다. 상필 씨는 이후 1년 가까이를 구호시설, 선교기관, 정신병원, 사회복지법인 홀트(상필 씨를 입양 보낸 기관)를 전전했습니다. 그러다 추방 2년만인 2013년 7월, 한국 정부가 상필 씨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2013년 10월부터 상필 씨는 긴급 구호대상이 됩니다. 당시 정부의 위탁 시설에서 머물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설 내 입소자 - 상필 씨와 같은 처지의 美추방 입양인들 - 과 분쟁이 잦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현재 정부가 파악해 지원하고 있는 시민권 없이 추방된 美입양인의 수는 5명입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이들 한국 출신 입양인들을 한국 추방하면서 이를 고지할 의무가 없습니다. 더 많은 이가 존재할 수 있는 겁니다. 해외입양인연대 등 입양인들은 상필 씨와 같은 美추방 입양인이 10명은 더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본인이 원하지 않아 정부에 연락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상필 씨는 시설 입퇴소와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합니다. 정신질환을 앓던 상필 씨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 한국은 어떤 곳이었을까. 중앙입양원에서는 한국말을 가르치기 위해 1:1 교사 프로그램 등도 운영합니다. 그러나 상필 씨는 한국말 교육에 대한 의지 역시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말을 배워 사용할 이유, 삶의 목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라고 추측했습니다. 2014년 11월 상필 씨는 같은 처지인 美추방 입양인과 폭행 사건에 휘말려 감옥에 가게 됩니다. 상대의 머리가 크게 다치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상필 씨는 2년 간 복역을 마친 뒤 지난해 12월 원주교도소에서 석방됩니다. 


●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석방 된 뒤 상필 씨는 법무부 산하 보호복지공단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몇 달을 채우지 못하고 나옵니다. 이후 홀트가 제공하는 원룸에서 지냅니다. 머무는 장소가 변했습니다. 시간도 흘렀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없다’말하곤 했던, 한국말을 못하고, 추방자이고, 전과가 있는 상필 씨가 할 수 있는 건 여전히 없었습니다. 상필 씨는 처방 받은 정신질환 치료 약물은 거의 복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 상필 씨의 방에는 시너 (혹은 휘발유)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혹자는 상필 씨가 이를 들이킨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상필 씨는 출소 이후 2017년의 5달과 스무하루를 살아냈습니다. 그러다 상필 씨는 어두운 밤, 자신의 방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아파트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 아파트 가장 높은 층 복도에서 몸을 던집니다.

● 그의 집은 어디일까
두나라가 버린 입양아, 필립 클레이, 김상필5월 24일, 경기도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김상필 씨의 장례식이 치러졌습니다. 홀트는 클레이 씨 부부에게 상 필 씨의 죽음을 알렸습니다. 양부모는 개신교식 장례를 원했습니다. 입양인들과 미혼모들, 중앙입양원 관계자들, 홀트 관계자들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하고 반 쯤 시간이 흐른 지난 목요일, 상필 씨의 유골은 밤 10시 뉴욕행 비행기에 태워져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해외입양인연대의 자문위원 역을 맡고 있는 존 컴프턴 씨가 상필 씨의 유골함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존 역시 입양인입니다. 상필 씨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말했던 것이 마음에 남아 상필 씨 부모의 연락처를 알아내 연락을 주고 받은 결과였습니다. 존은 양부모가 상필 씨 유골을 흔쾌히 받겠다고 답했다고, 그래서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상필 씨는 친부모를 찾고 싶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내 부모는 부자였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망상이 심해져 이 말까지 사실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를 찾고 싶다는 말을 한 건 사실입니다. 작은 추모식이 진행되는 도중 휠체어를 탄 말리 홀트가 찾아왔습니다. 사회복지법인 홀트의 이사장입니다. 입양인들과 홀트는 서로가 안 보이는 듯 행동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떠난 아이는, 하얀 가루가 돼 인천 공항을 통해 다시 떠났습니다. 김상필 혹은 필립 클레이의 집은 어디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