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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의 사소하게] 박수 칠 때 떠나라? 이승엽의 길과 이치로의 길

이주형 기자 joolee@sbs.co.kr

작성 2017.07.16 16:41 수정 2017.07.17 15:00 조회 재생수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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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가 지난 당신이 프로페셔널로서 장강의 뒷물결(後浪)에게 밀릴지도 모르는 형편이라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관리자의 길을 모색할 것인가, 끝까지 한번 실력으로 겨뤄볼 것인가.

20년 가까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야구 선수 두 명이 있다. 한국의 이승엽과 일본의 이치로. 98년인가, 나는 '왼손잡이'를 주제로 취재하다 당시 신인 이었던 이승엽을 인터뷰하면서 그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훗날 그가 요미우리 4번 타자 시절, 나는 도쿄돔에서 외야 상단의 나가시마 시게오 광고판을 직접 때리는 이승엽의 대형 홈런을 '직관'하기도 했다. 이치로는 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 본격적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그의 언행을 모은 책 따위를 사보며 지켜봐 왔다.

2006년 5월 27일 도쿄돔에서 1루 수비를 하는 이승엽 ⓒstorydna각각 73년생(이치로), 76년생(이승엽)으로 세 살 터울인 두 사람 다 고졸로서 프로무대에 뛰어들었는데 머지않아 이승엽은 홈런왕으로서, 이치로는 안타왕으로서 각각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강타자로 우뚝섰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프로선수로서 황혼기에 접어든 두 사람의 처지는 자못 다르다. 이승엽은 타율 2할 8푼 3리와 팀내 최다인 16개의 홈런을 치고 있는 반면, 이치로는 고작 2할 2푼의 타율과 2개의 홈런 만을 기록 중이다. (물론 이치로는 -적어도 실전에서는- 홈런 타자가 아니다) 이승엽은 2017 시즌에 81경기에 출전해 286 타수를 기록했고, 75경기에 나선 이치로는 109타수에 그쳤다. (타수 차이는 큰데 출장 경기 차이가 적은 것으로 보아 이치로가 대부분 선발이 아닌 대타로 경기를 뛰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이 중요하게 엇갈리는 지점은 따로 있다. 이승엽은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겠다고 선언한데 반해 이치로는 51세까지 (51은 그의 백 넘버다) 뛰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운동선수들은 흔히 체력이 달려서, 또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은퇴한다는 말을 곧잘 한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국민 정신과 의사'인 이시형 박사는 밀리언셀러 '배짱으로 삽시다'(1982)에서 그런 얘기들은 후배에게 한 번이라도 지게 되면 창피하다고 느끼고, 인생 실패자라도 된 양 느끼는 마음자세에서 나온 변명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지는 것은 지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나 역시 끝까지 정정당당하게 겨뤄서 깨끗하게 실력으로 지는 것, 그래서 '장강의 뒷물결(後浪)이 앞물결(前浪)을 밀어내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용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치로는 오늘도 은퇴는커녕 조용히 기록 사냥 중이다. 43세였던 지난해 메이저리그 역대 30번째로 3000 안타를 쳤고, 지난 7일에는 3054안타로 메이저리그 외국인 최다 안타 기록도 갈아치웠다. 물론 근근이 기록을 '채워가며' 경기에 나서고 있는 느낌도 없지 않다. (그의 소속팀도 전력상 보탬 보다는 전력외 보탬-이를테면 마케팅적 차원에서-으로 이치로를 안고 가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이승엽은 어제(15일) 자신의 마지막 올스타전을 최선을 다해 뛰어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만 459호 홈런을 쳤고 지금도 홈런 방망이는 식지 않았으니(현재 리그 10위) 한 시즌만 더 뛰면 통산 500 홈런의 금자탑도 목전이 건만, 박수칠 때 떠나려 하고 있다. 평소 그다운 깔끔하고 젠틀한 퇴장이다. 

한국에서 이승엽이 마지막 올스타전에 출전한 어제(7월 15일), 태평양 건너에서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 경기에서 5회 대타로 출전해 볼을 오른쪽 다리에 맞고 출루했다. 위험한 부위도, 큰 부상도 아니었다. 교체된 이치로가 덕아웃에 들어오자 동료들이 다들 와서 괜찮냐고 한마디씩 건넸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었다.

※ 이승엽-이치로 백넘버 소사(小史)

일본에서 51번을 치던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로 옮겨서도 51번을 쳤다. 하지만 실력이 떨어져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 뒤에는 51번이 양키스의 영구 결번(버니 윌리엄스)이었던 탓으로 31번을 달았고, 마이애미로 재이적 해서야 51번으로 복귀했다. (참고로 51번은 켄 그리피 주니어, 버니 윌리엄스, 랜디 존슨, 트레버 호프만 등의 대선수가 단 바 있다) 이승엽은 삼성 시절 36번을 치다가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는 33번과 25번,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3번을 달다, 삼성으로 복귀해 다시 36번을 되찾았다. 이승엽은 36번은 프로 데뷔 때 원하던 번호는 아니었다고 했지만, 이제 36번은 이승엽의 상징이고 이 번호는 곧 삼성에서 영구결번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