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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김국영이 9초대 기록에 집착하는 이유는?

[취재파일] 김국영이 9초대 기록에 집착하는 이유는?

"어서 빨리 트레이닝을 시작하고 싶어요."

100m 한국 기록 보유자, 김국영(26.광주시청)은 요즘 시간과 싸우는 재미가 쏠쏠한 모양입니다. 일본 삿포로에서 남부육상경기대회를 뛴 지 불과 하루. 김국영은 어제(10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도 1분이라도 빨리 돌아가 훈련을 시작하고 싶어 몸이 바짝 달아있었습니다.   

● D-25, 세계선수권은 한일전 : 도전자가 아닌 경쟁자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김국영
지난달 27일 코리아오픈 국제대회에서 100m를 10초 07만에 뛰며 한국 기록을 새로 쓴 김국영의 시계는 이제 8월 4일 런던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대회에 맞춰져 있습니다. 남은 시간은 25일(11일 기준). 이번 대회는 김국영에게 특별합니다. 김국영 선수는 "그동안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 도전자로서 나섰다면 이번에는 경쟁자로서 뛰겠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김국영의 기록(10초 07)은 이번 시즌 아시아에서 4번째로 빠른 기록인데 1위 기류 요시히데(일본)와는 0.03초 차 입니다. 이미 기준 기록(10초12)을 통과한 김국영이 지난 주말 일본 지역 대회에 출전한 이유는 자존심 때문입니다.

"그동안 한국 육상은 일본에 많이 뒤처져있었어요. 이번 시즌만 봐도 10초 0대 뛴 선수가 일본에는 6명이나 있죠. 하지만 이제는 한국 육상의 자존심을 내세워도 될 때라고 생각해요. 꼭 일본 선수들을 이기고 오겠습니다."
일본은 지난해 리우 올림픽에서 400m 계주 은메달을 차지하며 단거리 강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대회 전 김국영이 간절히 바랐던 한일 스프린터 자존심 대결은 아쉽게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맞대결을 기대한 이즈카 쇼타(시즌 베스트 : 10초 08)가 대회 하루 전 출전을 포기한데다, 김국영이 예선에서 가장 좋은 기록(10초 41)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대회 조직위가 일본 지역대회라는 이유로 일본 선수들에게만 결승 진출을 허용해 한일전은 싱겁게 끝났습니다. 

김국영의 전의(戰意)는 더 뜨거워졌습니다. "제대로 약이 올랐죠. 세계선수권을 더 열심히 준비해야죠." 일본 선수들과 달리 국내에 경쟁자가 없어 외로운 독주를 수년째 이어온 김국영은 "제가 빨라지면 대한민국이 빨라지는 거잖아요. 꼭 이기겠습니다"며 의욕을 불태웠습니다.    

이번 세계선수권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31.자메이카)와 함께 뛸 마지막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는 볼트의 이번 시즌 최고 기록은 10초 03입니다. 

"같이 뛰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제가 적어도 준결승에 진출해야 함께 뛸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저는 예선부터 전력을 다해야할 것 같아요."

● 9초, 아시아 정상까지 한 걸음

김국영의 목표는 9초 대 진입입니다. 아프리카 출신 귀화 선수를 제외하고 아시아 선수 가운데 9초 대 기록을 보유한 선수는 중국의 쑤빙톈(9초99)이 유일합니다. 일본에서도 아직 9초 대 기록은 누구도 전광판에 찍어보지 못했습니다. 김국영은 "이토 고지 선수가 10초 00을 기록한 지 20년이 되도록 일본에서도 9초 대 선수는 나오지 않았어요. 쑤빙톈 선수도 9초 끝자락인 99죠.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겠지요"라더니 갑자기 표정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지금은 자신감을 갖고 몰아붙여야 될 때라고 생각해요."

과학적인 근거도 있습니다. 보폭을 5cm 정도 늘려 걸음 수를 한 걸음 줄이면 된다는 계산입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힘이 그대로인데 보폭이 늘면 속도가 줄기 마련입니다. 키가 175cm로 단신 핸디캡을 안고 있는 김국영이 지난해 리우올림픽까지 잔발 주법을 쓴 이유입니다.
키가 작다보니 보폭은 좁고 걸음수는 경쟁자보다 많다
김국영은 175cm로 단거리 선수로는 작은 키다
김국영은 지난겨울 혹독한 훈련으로 근육량을 늘렸습니다. 걸음수를 줄이면서도 속도는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 50걸음에 100m를 완주하던 김국영은 49걸음에 한국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지난해 리우 올림픽에서 50걸음에 100m를 완주한 김국영은 올해 걸음수를 하나 줄였다
보통 사람들이 100m를 전력으로 뛸 때 한 발에 싣는 힘이 250kg정도인데 김국영은 이 힘을 450kg까지 늘렸습니다. 이 힘을 더 늘려야 보폭을 늘리면서도 속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김국영이 자신의 주법을 설명하고 있다
아시아 정상까지 딱 한 걸음이 남은 셈입니다.

● 3년, 김국영에게 주어진 시간

이렇게 치열하게 시간과 또 자신과 싸움을 이어가는 김국영 선수에게 마음먹고 짓궂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Q. 9초 대 진입을 하더라도 아시아 최고 수준이지 9초 58의 세계기록과는 너무 큰 차이가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죠. 수많은 미국과 자메이카 선수들이 9초 대 기록을 세우고 있지만 그건 그 선수들의 기량이고요. 저는 제 목표가 있는 거죠. 9초 대 진입이 제 목표이기 때문에 그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그 기록이 국내 3등, 4등에 해당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저에게 순위는 중요하지 않아요. 오로지 9초 대 만 바라보고 뛰고 있습니다."
바뀐 주법에 적응하기 위해 지난 겨울 혹독한 근력 운동을 버텼다
Q. 유전적 이유 때문에 아시아인은 한계가 있다는 학설도 있는데 무모한 도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틀린 말이 절대 아니죠. 하지만 무모하다는 얘기를 듣고 거기서 포기해버리면 제 자신이 한없이 작아질 것 같아요. 다들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지만 지금 9초 대 기록이 거의 눈앞에 다가왔잖아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일본처럼 국내 대회가 많은 것도 아니고, 굳이 육상 100m를 고집하지 않고 다른 운동을 했어도 됐을 텐데요?

"100m는 찰나의 종목이에요. 총성이 울리기 전 이미 최상의 몸상태를 갖춰야 하고, 스타트, 숨 하나, 발걸음 하나, 피니시 동작까지 모든 것이 흐트러지지 않고 완벽해야만 최고 기록이 나와요.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아요. 수없이 반복한 훈련이 찰나의 실수에 물거품이 되기도 하죠." 

"또 저만 잘 뛴다고 되는 게 아니라 바람도 도와줘야 해요. 이게 매력이에요. 이 모든 게 정말 완벽하게 이뤄졌을 때, 그렇게 전광판에 찍힌 제 최고 기록을 봤을 때 얼마나 짜릿한지 몰라요. 그 맛에 하는 거죠. 지금까지 딱 5번(김국영이 한국 기록을 새로 쓴 횟수) 느껴본 기분이죠. 최대한 여러번 더 느껴보고 싶어요."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보폭을 늘리려는 시도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김국영은 비슷한 몸무게의 일반인보다 2배 가까운 힘을 걸음에 실으면서 뛰고 있습니다. 몸에 큰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올해 26살인 김국영은 자신이 전력을 다해 뛸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3년이라고 생각해요. 나중에 '그때 좀 더 노력할 걸'하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정말 온힘을 다해보려고요."
김국영이 코리아오픈 100m에서 10초 07, 한국 기록을 세우고 포효하고 있다
대한민국 스포츠 선수로서 세계 정상에 선 선수는 자랑스럽게도 꽤 많습니다. 피겨 선수 김연아(밴쿠버 금메달/세계신기록)와 역도 선수 장미란(베이징 금메달/세계신기록)은 올림픽 무대에서 정상에 선 수준을 넘어서 세계를 압도하기까지 했죠. 그 감동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김국영 선수를 인터뷰하면서 확신이 들었습니다. 김국영 선수가 3년 안에 9초 대 기록을 세운다면 세계 순위를 떠나 그 감동의 크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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