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 한국 기록 보유자, 김국영(26.광주시청)은 요즘 시간과 싸우는 재미가 쏠쏠한 모양입니다. 일본 삿포로에서 남부육상경기대회를 뛴 지 불과 하루. 김국영은 어제(10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도 1분이라도 빨리 돌아가 훈련을 시작하고 싶어 몸이 바짝 달아있었습니다."어서 빨리 트레이닝을 시작하고 싶어요."
● D-25, 세계선수권은 한일전 : 도전자가 아닌 경쟁자
김국영의 기록(10초 07)은 이번 시즌 아시아에서 4번째로 빠른 기록인데 1위 기류 요시히데(일본)와는 0.03초 차 입니다. 이미 기준 기록(10초12)을 통과한 김국영이 지난 주말 일본 지역 대회에 출전한 이유는 자존심 때문입니다.
"그동안 한국 육상은 일본에 많이 뒤처져있었어요. 이번 시즌만 봐도 10초 0대 뛴 선수가 일본에는 6명이나 있죠. 하지만 이제는 한국 육상의 자존심을 내세워도 될 때라고 생각해요. 꼭 일본 선수들을 이기고 오겠습니다."
김국영의 전의(戰意)는 더 뜨거워졌습니다. "제대로 약이 올랐죠. 세계선수권을 더 열심히 준비해야죠." 일본 선수들과 달리 국내에 경쟁자가 없어 외로운 독주를 수년째 이어온 김국영은 "제가 빨라지면 대한민국이 빨라지는 거잖아요. 꼭 이기겠습니다"며 의욕을 불태웠습니다.
이번 세계선수권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31.자메이카)와 함께 뛸 마지막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는 볼트의 이번 시즌 최고 기록은 10초 03입니다.
"같이 뛰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제가 적어도 준결승에 진출해야 함께 뛸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저는 예선부터 전력을 다해야할 것 같아요."
● 9초, 아시아 정상까지 한 걸음
김국영의 목표는 9초 대 진입입니다. 아프리카 출신 귀화 선수를 제외하고 아시아 선수 가운데 9초 대 기록을 보유한 선수는 중국의 쑤빙톈(9초99)이 유일합니다. 일본에서도 아직 9초 대 기록은 누구도 전광판에 찍어보지 못했습니다. 김국영은 "이토 고지 선수가 10초 00을 기록한 지 20년이 되도록 일본에서도 9초 대 선수는 나오지 않았어요. 쑤빙톈 선수도 9초 끝자락인 99죠.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겠지요"라더니 갑자기 표정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지금은 자신감을 갖고 몰아붙여야 될 때라고 생각해요."
과학적인 근거도 있습니다. 보폭을 5cm 정도 늘려 걸음 수를 한 걸음 줄이면 된다는 계산입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힘이 그대로인데 보폭이 늘면 속도가 줄기 마련입니다. 키가 175cm로 단신 핸디캡을 안고 있는 김국영이 지난해 리우올림픽까지 잔발 주법을 쓴 이유입니다.
● 3년, 김국영에게 주어진 시간
이렇게 치열하게 시간과 또 자신과 싸움을 이어가는 김국영 선수에게 마음먹고 짓궂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Q. 9초 대 진입을 하더라도 아시아 최고 수준이지 9초 58의 세계기록과는 너무 큰 차이가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죠. 수많은 미국과 자메이카 선수들이 9초 대 기록을 세우고 있지만 그건 그 선수들의 기량이고요. 저는 제 목표가 있는 거죠. 9초 대 진입이 제 목표이기 때문에 그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그 기록이 국내 3등, 4등에 해당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저에게 순위는 중요하지 않아요. 오로지 9초 대 만 바라보고 뛰고 있습니다."
"틀린 말이 절대 아니죠. 하지만 무모하다는 얘기를 듣고 거기서 포기해버리면 제 자신이 한없이 작아질 것 같아요. 다들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지만 지금 9초 대 기록이 거의 눈앞에 다가왔잖아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일본처럼 국내 대회가 많은 것도 아니고, 굳이 육상 100m를 고집하지 않고 다른 운동을 했어도 됐을 텐데요?
"100m는 찰나의 종목이에요. 총성이 울리기 전 이미 최상의 몸상태를 갖춰야 하고, 스타트, 숨 하나, 발걸음 하나, 피니시 동작까지 모든 것이 흐트러지지 않고 완벽해야만 최고 기록이 나와요.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아요. 수없이 반복한 훈련이 찰나의 실수에 물거품이 되기도 하죠."
"또 저만 잘 뛴다고 되는 게 아니라 바람도 도와줘야 해요. 이게 매력이에요. 이 모든 게 정말 완벽하게 이뤄졌을 때, 그렇게 전광판에 찍힌 제 최고 기록을 봤을 때 얼마나 짜릿한지 몰라요. 그 맛에 하는 거죠. 지금까지 딱 5번(김국영이 한국 기록을 새로 쓴 횟수) 느껴본 기분이죠. 최대한 여러번 더 느껴보고 싶어요."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보폭을 늘리려는 시도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김국영은 비슷한 몸무게의 일반인보다 2배 가까운 힘을 걸음에 실으면서 뛰고 있습니다. 몸에 큰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올해 26살인 김국영은 자신이 전력을 다해 뛸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3년이라고 생각해요. 나중에 '그때 좀 더 노력할 걸'하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정말 온힘을 다해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