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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집배원 '과로' 인정하지만, 정부 책임은 아니다?

노동부 '집배근로자 근로 실태조사' 결과 살펴보니

박수진 기자 start@sbs.co.kr

작성 2017.06.14 10:09 수정 2017.06.14 10:57 조회 재생수1,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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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집배원 과로 인정하지만, 정부 책임은 아니다?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집배원'을 언급했습니다. 집배원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예로 들며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골자로 한 일자리 추경 통과를 국회에 호소한 겁니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절박한 현실을 언급할 땐 문 대통령 왼쪽 뒤편에 '집배원은 작년 이후 현재까지 8명 과로사'라는 내용이 적힌 PPT 화면이 노출됐습니다.

같은 날, 고용노동부는 지난해부터 잇따라 발생한 '집배원 과로사 추정 사망'과 관련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언론에는 실태조사 사실 자체를 알리지 않았던 터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신창현 의원실을 통해 실태조사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조사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집배원들이 장시간 근로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정부는 책임이 없다.'

● '집배원 근로 실태' 관련 정부 기관 첫 공식 조사

고용노동부의 '뒷북', 그리고 '솜방망이' 조치에 대한 비판은 잠시 미뤄두고, 우선 이 실태조사 결과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집배원들의 근로 실태를 정부 차원에서 조사해 공식적으로 결과를 내놓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많은 노동, 시민단체들이 집배원들의 '살인적 근무량' 실태를 지적해왔지만 정부의 공식 조사는 없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5일부터 19일까지 5일 동안 충남, 충북, 대전, 세종 등 충청권에 있는 우체국 4곳을 대상으로 집배원의 연장근로 실태 등을 조사했습니다. 근로감독관들이 각 우체국 현장에 방문해 집배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 월 초과근로 최대 103.9시간…하루 1천 통 넘는 물량 취급
우편 우체국 우편물 (사진=연합뉴스)집배원들은 이르면 새벽 5시, 보통은 아침 7시까지 출근해 이르면 저녁 6시, 늦으면 8시쯤 퇴근합니다. 평균 하루 근무 시간이 14~15시간이 된다는 이야깁니다. 최대 매달 2회씩 토요일에도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까지 '주말 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법정 근로시간을 제외하고, 초과 근로는 어느 정도 하고 있을까요? 지난 해 4월부터 올 해 3월까지 1년을 살펴봤더니,월 평균 53.5시간에서 66.4시간을 더 일하고 있었습니다. 추석 등 명절이 있는 기간엔 초과 근로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는데, 대전 유성구의 집배원들은 지난 해 9월 1인당 무려 103.9시간을 초과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충 계산해도, 매일 평균 3시간  넘게 더 일을 했다는 이야깁니다. 

여기에 더해, 집배원 한 명이 매일 취급하는 우편 물량은 무려 1032.3통. 하지만 연평균 연차휴가 사용일은 2.7~2.8일에 그쳤습니다. 즉, 우리나라 집배원들은 매일 1천 통이 넘는 물량을 배달하고,  매달 60시간 안팎으로 초과 근무를 하면서도, 1년에 연차 휴가를 3일도 쓰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근로기준법 적용 못 받는 대다수 집배원

근로기준법 제53조는 당사자 간에 합의가 있더라도 연장 근무 시간을 주 12시간 이하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평균 주 13시간이 넘는 집배원들의 현재 근로 형태는 일단 법 위반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집배원은 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공무원'인 집배원은 근로기준법보다 국가공무원 보수 및 복무규정을 우선 적용받습니다. '비공무원', 즉 계약직 집배원들은 근로기준법 59조의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특례업종'에 해당하는데, 특례업종은 사용자와 근로자대표가 합의할 경우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전국우정노동조합은 우정사업본부와 단체협악을 통해 12시간 초과 연장근로를 서면합의) 근로기준법이 최소한 집배 근로자의 노동권과 인권 보호엔 아무런 역할을 못 하고 있는 셈입니다.

고용노동부가 '집배원들이 장시간 근로를 하는 것은 맞지만 우정사업본부엔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배경에도 근로기준법이 있습니다. 현행법을 위반한 사실은 없다는 거죠.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 분야에서 특별한 법 위반 사실을 확인할 수 없어 실태조사로 마무리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해당 현행법에 부족한 점이 많으니 보완이나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고용노동부 "정부 기관 대상 특별근로감독은 불가" 왜?

고용노동부 실태조사의 문제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집배노조에 따르면, 집배원들이 잇따라 과로로 사망하자 지난 2월 노조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한 달쯤 후 고용노동부는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조사를 진행하라고 지침을 내립니다. 하지만 두 달 넘게 진척이 없다가 5월 9일 대선이 지나자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특별근로감독은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특별근로감독을 하기 위한 요건이 있는데,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한 특별근로감독은 그 요건에 맞지 않기 때문에 '특별근로감독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집배노조 측은 "그 요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엔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조사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집배노조 측의 건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충청 지역에서도 집배원 사망 사고가 발생했던 것은 맞지만 노조 측은 "집배 수하량이 가장 많은 곳은 경인청이다.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려면 가장 업무량이 많은 지역이 포함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종훈 집배노조 조직국장은 SBS와 전화통화에서 "장시간 노동의 실태가 밝혀지긴 했지만 특례업종이기 때문에 무한정 일해도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현실에 대한 대안은 내놓지 못한 조사"라며 "특히 논의 과정에서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은폐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건의도 여러 번 했는데 그와 관련한 내용은 실태조사에 아예 포함되지도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추경을 통해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있는 사회안전서비스 분야 공공부문 일자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말했듯 집배원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숫자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이 집배 근로자들이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점, 그리고 집배원들 안에서도 정규직, 특수고용직, 간접고용 비정규직, 직접고용 비정규직 등 복잡하게 나뉘어져 있는 고용 구조도 손 봐야 할 부분입니다.

최근에도 경기 가평우체국 소송 A 집배원이 사망했습니다. 전날 늦은 시간까지 비를 맞으며 일했고, 다음날에도 아침 6시까지 출근해 출장준비를 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뇌출혈로 사망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죽음이 더 이상은 반복되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