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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너무 쉬운 빚 거래…약탈적 사회와 공모자들

정혜경 기자 choice@sbs.co.kr

작성 2017.06.12 16:54 수정 2017.06.12 16:59 조회 재생수2,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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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저축은행에서 3억 원이 넘는 돈을 대출받은 A씨. 도저히 빚을 갚지 못하게 되자 개인회생을 신청했습니다. 법원은 A씨의 개인회생절차를 개시하고 자산 거래와 처분을 일절 금지하고 동결시켰습니다. 법원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회생이 인가되면 A씨의 재산은 채권자들에게 분할 상환되고, A씨는 일정 기간 동안 벌어들이는 소득으로 채무의 일부를 갚아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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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모르는 대부업체'…난데없는 빚 독촉 알고 보니

그러던 어느 날, A씨는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본인을 ‘추심 전문가’로 소개한 누군가는 OO저축은행으로부터 A씨의 빚을 샀으니 이제부터 자신이 채권자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대부업자였습니다. 대부업체로부터 빚을 진 적이 없는 A씨는 황당했습니다. 업자는 “이런 일만 전문적으로 해온 사람들이니 우리들은 끝까지 간다”고 A씨를 압박했습니다.

법원에서 묶어놓은 A씨의 재산을 풀어 담보로 잡힌 집을 빨리 경매할 수 있게 하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찰서에 형사 고소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업자는 A씨를 고소했고, A씨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경찰 조사까지 받았습니다. 경찰은 ‘고소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혐의 의견으로 A씨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2014년부터 시행된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약칭 채권추심법은 ‘불법 추심’의 여러 가지 경우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A씨 사례처럼 법원 개시 이후 개인회생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채권에 대한 변제를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행위 역시 불법 추심입니다.

경찰 조사까지 들먹이는 대부업자의 말에 A씨는 법무사에게 문제가 없다는 확답을 여러 차례 들었지만, 여전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채무자’라는 원죄가 A씨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 '돌려받기 어려운 빚 삽니다'… 너무 쉬운 빚 거래

부실채권, NPL(Non Performing Loan)이라고 합니다. 금융기관이 빌려줬지만 상환이 어려운 채권을 이르는 말입니다.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 그리고 흔히 ‘대부업체’로 알려진 기타 금융권 등 금융회사들은 돌려받기 어려운 빚을 다른 회사로 헐값에 팔아넘깁니다. 어차피 돌려  받지 못할 빚이기 때문에 최소한이나마 수익을 얻으려는 고육지책입니다.

빚을 넘겨받은 금융사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든 추심, 빚을 받아내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추심만 할 수 있다면 사들인 값의 많게는 몇 백 배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저금리 시대에 수익성이 높은 재테크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은행에서 제2금융권, 제2금융권에서 대부업체, 대부업체에서 또다른 대부업체로 오가는 부실채권 시장은 국내에서 수 십 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실에서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저축은행이 대부업체에 매각한 부실채권 규모는 해마다 늘어, 2013년 1383억, 2014년 2102억, 2015년엔 2124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NPL 시장이 성장하는 것은 최근 한국사회 ‘뇌관’으로 부각되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연체율은 4월 말 기준으로 전월보다 0.03% 포인트 상승한 0.54%로 집계됐습니다. 2월 말 잠시 주춤했던 연체율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겁니다. 연체채권 잔액은 7조 9천억 원으로, 전달보다 6천억 원 늘었습니다.

급한 불 끄려고 돈 빌린 사람들의 상환이 늦어지면서 빚이 그대로 ‘부실채권’이 돼버리는 겁니다. 이렇게 늘어난 부실채권이 통상 마지막으로 정착하는 유통 단계는 적은 자본금으로도 채권 추심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대부업체입니다.
부실채권 매각 흐름도그러니 애초에 돈을 빌린 곳은 은행이나 저축은행인데, 정작 ‘돈 달라’는 추심 전화는 뜬금없는 대부업체가 걸어오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보니 부실채권의 마지막 유통업체는 A씨에게 전화를 걸어온 대부업자의 말대로, 소위 “끝까지 가는 식으로” 추심할 개연성이 커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듯 빚 거래가 빈번해질수록 채무자들은 신용등급이 떨어질 뿐 아니라 불법 추심이나 강압 채권추심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 채권 거래, 추심 자격 강화해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이헌욱 변호사(법무법인 정명)는 “채권시장을 전체적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다시말해 채권 유통 시장을 양성화하고, 추심의 자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금융위기의 아픔을 겪었던 미국조차 우리나라의 ‘주택금융공사’와 같은 몇몇 공적 금융기관에서 전문적으로 채권을 매입하고 있습니다. 상환이 어려운 것으로 판명된 부실채권을 국가에서 건전성을 인정한 회사들이 매입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1년에 몇 번씩이나 채권자가 바뀌는 돌고 도는 ‘빚 거래’ 관행이 개선될 것이라는 조언도 덧붙였습니다.

매입뿐 아니라 추심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타인의 권리를 양수해서 행사하는 행위’는 변호사법에서도 금하고 있습니다. 부실채권 시장의 기본원리죠. 금융회사로부터 빚을 사들여 권리를 양수한 뒤 추심을 요구해 행사하는 행위인 건데, 이 변호사는 채권시장에 대해선 대법원이 변호사법의 예외를 허용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합니다.

단적으로 일본에서는 부실채권을 매입하고 추심할 수 있는 단체가 전국적으로 스무 곳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국내로 치면 대형채권추심회사 인가에 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노무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는 조건도 따라붙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몇 백 만 원 정도의 자본금만 갖추면 설립할 수 있는 대부업체도 매입채권추심업으로 등록하면 추심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게 됩니다. 라이센스 제도가 있긴 하지만 별다른 심사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유명무실합니다.

● 빚 권하는 약탈사회… 너의 이름은 '채무자'

이 변호사는 빚 거래와 추심 자격 강화에 앞서 보다 근본적으로 ‘채무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변합니다. 대부분의 금융거래는 개인 대 개인의 경우보다 대출 업무를 전문적으로 하는 금융사대 금융소비자 간 이뤄집니다. 신용이든 담보든 금융사의 ‘대출’ 역시 수익을 올리기 위한 영업의 일종인데, 우리나라는 ‘영업 실패’의 책임을 과도하게 개인 ‘채무자’에게만 지운다는 겁니다.

실제로 앞서도 언급했듯 금융당국에서 점진적으로 ‘채무자’를 위한 방어권을 정비하고 있지만 불법추심의 일종으로 구체적으로 거론된 행위에 대한 처벌 자체는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불법추심 자체로는 과태료나 벌금 수준으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폭력 행위가 발생하지 않으면 형사처벌도 어렵습니다.

가계부채가 GDP의 90%가 넘는 한국. 모두들 이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소비와 성장을 제약하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채무자 방어권’을 언급할 땐 인색합니다. 빚 갚기 어려운 사람들이 쉽게 빚을 지고, 그렇게 진 빚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팔려나가는 지금의 금융시장을 누군가는 ‘약탈사회’로 명명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도 빚을 갚지 못하는 이른바 ‘한계가구’는 200만으로 추산됩니다. 새 정부가 소매를 걷어 올리고 주력하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의 근본적인 열쇠는 바로 낭떠러지에 몰린 이들이 떳떳하게 자립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 참여연대 이헌욱 변호사와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 그리고 두 사람이 공동 저술한 단행본 <약탈적 금융사회(2012)>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