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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등 뒤에서 가격하고, 팬이 선수를 때리고…난장판이 된 킥복싱 경기

김형열 기자 henry13@sbs.co.kr

작성 2017.06.12 16:17 수정 2017.06.12 16:18 조회 재생수2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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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방비 상태의 상대를 등 뒤에서 가격해 KO 시키자, KO 당한 선수의 팬들이 링 위에 올라와 상대 선수에게 주먹을 휘두릅니다. 말로 들어서는 잘 이해가 안 되고, 보고도 믿기 힘든 이상한 난투극이 킥복싱 경기 도중 벌어졌습니다.
▲ 그로엔하트와 그리고리안 경기 유튜브 영상

이 난장판의 주인공들은 킥복싱 선수 네달란드의 무르텔 그로엔하트와 아르메니아의 하루트 그리고리안, 그리고 이름을 알지 못하는 두 명의 팬입니다. 그로엔하트와 그리고리안은 지난 10일(프랑스 현지 시간) 파리에서 열린 대회(글로리42, 글로리는 세계 최대의 킥복싱 단체입니다.) 웰터급 경기에서 맞붙었는데 경기 도중 그리고리안이 먼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했습니다.
그리고리안의 등 뒤에서 펀치를 날리는 그로엔하트그리고리안은 2라운드 종료 2분 40여 초를 남긴 상황에서 상대의 니킥을 피한 뒤 갑자기 가드를 내리고 자기 코너 쪽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지도, 주심이 경기를 중단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리고리안이 등을 돌리자, 그로엔하트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로엔하트는 그리고리안에게 다가가 등 뒤에서 강력한 오른손 훅을 날렸고, 예상 못 한 강타를 맞은 그리고리안은 그대로 링 위에 나뒹굴었습니다. 그로엔하트의 행동은 정당한 플레이는 아니지만, 계속 경기가 진행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었습니다.승리 세리머니 도중 팬의 습격을 받는 그로엔하트더 큰 문제는 직후에 벌어졌습니다. 그리고리안이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그로엔하트는 자기 쪽 코너로 가서 두 팔을 벌린 채 승리의 세리머니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순간 관중석에서 두 명의 건장한 (아마도 그리고리안의) 팬들이 링 위로 뛰어 올라와 전광석화처럼 그로엔하트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불의의 습격을 받은 그로엔하트는 주먹을 피하려고 뒤늦게 가드를 올렸고, 깜짝 놀란 대회 관계자들이 이들을 뜯어 말렸지만, 그로엔하트는 이미 안면에 수차례 기습 펀치를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그로엔하트는 "글러브를 끼지 않은 주먹에 턱을 맞았다. 턱 부분이 부러진 것 같이 아프다"며 부상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습니다.

이 경기는 그로엔하트의 KO승으로 공식 판정이 나왔고, 패자인 그리고리안 측에서도 이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리안의 트레이너인 닉키 헤머스는 "그리고리안이 경기 도중 상처를 입어 피가 나자 치료를 받기 위해 코너로 돌아가려 했었다"며 그리고리안이 등을 돌렸던 이유를 설명한 뒤 "하지만 경기 도중 등을 돌리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며, 뒤에서 주먹을 날린 그로엔하트의 행동이 옳은 건 아니지만, 규칙을 어긴 것이 아닌 만큼 항의할 생각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중계방송사 ESPN이 SNS에 올린 내용승패에 대해서 양측 모두 인정했고, 선수를 습격한 팬들은 조사를 받은 뒤 응분의 대가를 치를 예정입니다. 하지만, 뒤통수를 맞고 기절한 그리고리안이나, 팬들에게 기습당한 그로엔하트 모두 한동안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어수선한 승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위의 사진에 있는 ESPN의 SNS 멘트처럼 명확합니다. "링 위에서는 절대 상대에게 등을 보여서도, 경기가 끝났다고 방심해서도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