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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건물주가 절벽에서 떠미는 느낌"…자영업자 '10년 영업' 보장 추진

이강 기자 leekang@sbs.co.kr

작성 2017.06.10 15:41 수정 2017.06.10 16:45 조회 재생수6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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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질문 드려도 될까요...? 7월 8일이 되면 어떤 기분이 드실까요...?”

“잠시만요...(눈물 흘리며)인터뷰 잠시 중단 부탁드려요”

두 아이의 아빠인 40대 가장 홍 모씨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홍씨는 지난 2011년 서울 광진구에 시설비와 권리금 등 초기 투자비 3억원을 투자해 미용실을 연 뒤 6년 동안 열심히 일해 온 자영업자입니다. 홍씨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기자가 방문한 홍씨의 미용실은 35평 정도 넓이에 직원 8명 정도 있는 규모가 적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기자와 같은 직장인이 부러움을 느낄만한, 작지만 탄탄한 사업장의 ‘사장님’이 홍씨의 첫 인상이었습니다. 손님도 상당히 많아 마침 홍씨는 열심히 한 여성 손님의 머리를 다듬고 있었습니다. 남 부러울 게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내 촬영을 마친 뒤 인터뷰를 위해 홍씨와 자리를 옮기자 마자, ‘홍씨의 지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미용실에서 밝은 모습으로 취재진을 맞이한 홍씨, 알고 보니 직원들이 동요할까 걱정돼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혀 알리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홍씨는 지난달 한 장의 통고문을 받았습니다. ‘임대차 계약을 맺은 홍씨와 재계약 의사가 없다. 현재 미용실을 원상회복하여 비워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건물주가 비워달라고 통지한 날짜는, 마침 기자가 방문한 뒤 정확히 한달 뒤인 7월 8일까지였습니다. 통고문을 가지고 온 법률대리인은 건물주를 대신해 문서만 전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홍씨의 하소연은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2011년 첫 임대차 계약을 맺은 홍씨는 그동안 보증금을 두배로 올려줬고, 최근엔 4백만원에 육박하는 임차료도 단 한 차례 밀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성실한 임차인인 홍씨였지만 지난해 건물주가 바뀌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건물주가 현재 미용실 자리에 자신의 가게를 내고 영업을 할 예정이니 재계약을 거부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최초 계약 후 5년이 이미 지나 상가임대차보호법상 계약 갱신 요구권도 없어 홍씨는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게다가 건물주는 홍 씨의 미용실에 대해 양도 양수를 할 수 없도록 조치해, 홍씨는 당초 자신이 냈던 1억 9천만원의 권리금도 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홍씨는 다음 달 9일이면 거리로 쫓겨날 처지에 몰려 있습니다.

요즘 홍씨는 하루 하루 시간이 흐르는 것이 너무나 두렵다고 말합니다.

“매장을 옮기는 것은 저보고 죽으라는 얘기밖에 안 되거든요. 진짜 절벽에서 절 미는거죠. 죽으라고...(밤에)잠이 안 옵니다. 요새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거든요 하루에 뭐 2~3시간 자나. 답답하죠.”관련 사진7월 8일에 어떤 기분이 들것 같냐는 기자의 잔인한 질문에 눈물을 터뜨린 홍씨, 잠시 어딘가에서 기분을 추스린 뒤 인터뷰를 이어갔습니다.

“그런 생각(가게를 비워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능하면 안 하려고 그래요. 너무너무 진짜 상상하기도 싫고. 힘들게 만들어놓은 거 하루 아침에 다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되니까, 어떻게 다시 시작을 해야 되나 막막하기도 하고요. 저 혼자면 상관 없는데 큰 애가 고등학생이고 둘째가 초등학생인데 아직 돈 들어갈 게 많잖아요. 그런데 (인생의)정지가 된다는 느낌이 들고 당장 저보단 제 가족들이 고생할 게 보이니까 그게 참 답답하죠. 제가 (일을) 안 하면서 이런 것도 아니고 진짜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결과가 와버리니까 억울하기도 하고요...”

홍씨와 같은 처지의 자영업자가 우리 사회에 과연 얼마나 많은걸까요?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그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지난해 국토교통부의 의뢰를 받아 한국감정원이 실시한 조사인데, ‘2016년 9월 말 기준 상업용 부동산 임대동향 조사’입니다. 이 자료는 사실 상업용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자료입니다만, 이 자료의 한쪽 구석에 홍씨와 같은 자영업자들 상황이 드러나 있습니다.
 
<최초 임대 계약 이후 영업기간(%)>
1년 미만 1~2년 2~3년 3~4년 4~5년 5~7년 7~10년 10년 이상
5.5 10.1 8.9 14.4 9.5 16.2 13.0 22.5 100.0

서울과 6대 광역시 5개 업종 표본 8,000곳을 살펴본 이 동향 조사에 따르면, 영업을 5년 이상 지속한 경우는 51.7%, 그러니까 조사 대상 임차계약자들 가운데 같은 점포에서 영업을 5년 이상 지속한 경우는 절반에 불과합니다. 법에 따라 보호받는 5년이 넘으면 임차계약 유지를 위한 일종의 ‘보호막’이 사라지면서 그 기간을 쉽게 넘기지 못함을 알 수 있습니다. 홍씨 같은 처지의 자영업자가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홍씨는 같은 처지의 자영업자들이 스스로를 자조하며 이렇게 표현했다고 전합니다.

“우리 같은 임차상인들은 5년짜리 비정규직이라고...(말하곤 합니다.) 5년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항상 건물주 눈치봐야 되고...”

이런 상황에서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할까요. SBS가 9일 보도해드린 대로, 새 정부의 인수위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5년으로 규정된 ‘계약갱신 요구권’ 행사기간을 10년으로 늘리려는 겁니다.

또 현행법은 상가 임대 계약 후 5년 동안 건물주가 임대료를 연 9% 이상 올려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기간을 좀 더 늘리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5년이 지나면 인상제한 규정이 없다 보니, 건물주가 임대료를 큰 폭으로 올려 세입자를 사실상 쫓아내는 일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이 소식을 접한 홍씨는 크게 반색했습니다. 비록 법이 개정돼 실제 적용되기까지는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자신과 같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자영업자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라는, 고운 마음씨를 보였습니다. 자문위와 새 정부, 그리고 정치권이 힘을 합쳐 앞으로도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책을 계속 펼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