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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부동산 정책, '시그널이 없는 것 자체가 시그널이다'

최근 집값은 왜 오르나?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작성 2017.06.06 11:39 수정 2017.11.09 15:10 조회 재생수14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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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부동산 정책, 시그널이 없는 것 자체가 시그널이다
아파트 값은 참 희한하게 결정됩니다. 같은 단지에 있는 100곳의 가격이 모두 1억 원이었다가 1곳만 2억 원에 거래되면 나머지 집값도 자동으로 2억 원이 되어 버립니다. 시가 뿐만이 아닙니다. 직전 매매가를 참고해 결정되는 감정가도 함께 올라갑니다. 집값 상승이 공식화 된다는 의미입니다. 투기 세력, 아파트 부녀회 등이 인위적으로 집값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배경인데, 소수에 의해 집값이 왜곡될 수도 있다는 의미죠.

부동산 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입장은 독특합니다. 대부분의 사안에 같은 입장에 선 사람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 입장이 상반되는 사람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하는 게 부동산 정책입니다. 집을 소유했느냐, 어디에 집이 있느냐에 따라 목소리가 달라지는 겁니다. 욕망에 따라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는 셈이죠.

때문에 특정 정부 지지 세력이 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비판적일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부동산 정책에선 뚜렷한 색깔을 드러낼 수 없을 것이라는 시중의 예상은 이런 여론 지형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의 경제 상황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시중의 예상을 한쪽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기댈 곳은 부동산 뿐이다, 그러니 정부는 인위적인 집값 상승 정책을 펴거나 집값 상승에 눈 감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는 예상이죠. 빚 내서 집 사라던 박근혜 정부를 비롯해 역대 정부들이 건설업을 통한 인위적인 경기부양이라는 유혹에 빠져왔었다는 경험칙도 있습니다.

●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의 집값 상승…‘정치적 불확실성 제거’의 의미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집값이 가파르게 뛰고 있습니다. 한 주에 몇 천만 원씩 오르는 집 값 때문에 곳곳에서 “미쳤다”는 이야기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집값 상승의 이유로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게 ‘정치적 불확실성 제거’입니다. 안개가 자욱하던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으니 경제 주체들이 새롭게 시작해 보자, 뭐 그런 마음을 먹은 결과 집값이 오르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으니 외식 한 번 더 하자는 식으로 가계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집을 사고판다는 건 이치에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집값 상승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부동산 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이 작동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곳곳에서 개혁적인 모습을 보이는 문재인 정부지만, 부동산 문제 만큼은 박근혜 정부의 기조를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이 작동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예상은 새 정부 출범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거죠. 그런데 왜 새 정부 출범 이후에 눈에 띄게 집값이 뛰고 있을까요?아파트● "누구도 손 댈 수 없다"…경기 부양책으로 소비되며 만들어진 부동산 정책에 대한 기대

지난 대선은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이례적인 선거였습니다. 매 선거 때마다 부동산 분야는 후보들의 주요 논쟁 지점이었지만, 지난 대선에서는 단 한 번도 이슈가 된 적이 없습니다. 여러 차례 TV 토론이 진행됐지만, 부동산 문제는 단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죠. 심상정 후보를 제외하고는 후보들 간의 정책적 차별점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부동산 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 자체가 딱히 없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당시 후보) 측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캠프 핵심 관계자는 보유세 인상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현재로서는 추진 계획이 없다”고 했고, “현 정부(박근혜 정부) 주요 부동산 정책을 건드리지 않겠다”고도 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고 부동산 문제 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기대가 충분히 형성될 수 있었던 겁니다. 경제 성장의 절반 가까이를 부동산에 기대고 있는 현실, 집값에 손대면 가계부채라는 경제의 뇌관이 터질 수도 있다는 위협은 이런 기대를 강화시켰습니다.

하지만, 기대만으로 돈이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기대가 사실이다 혹은 사실이 되겠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는 한 동안 언급을 삼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부동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확신으로 바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시그널이 없는 것 자체를 시그널로 받아들인 시장

실제로 부동산 사무실 등에 가면 “정부가 부동산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기존 기조대로 이어가겠다는 의미다”는 식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습니다. 정부가 어떤 이유로 부동산 시장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시장은 시그널이 없는 것 자체를 시그널로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정부가 부동산 문제에 시그널을 주지 않고 있는 것은 결국 부동산 기조는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시그널이라고 말이죠.

이렇게 ‘정부의 시그널 없음’ 자체를 ‘시그널’로 인식한 이후 여러 가지 종류의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도시 재생 공약은 결국 개발 공약이니 집값은 오를 것이고, 대통령이 8월 중까지 가계부채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 7월로 끝나는 대출 규제를 한 차례 더 연장하려는 것이며, 참여정부에서 집값 잡는데 실패했으니 이번 정부는 집값에 손을 못 댈 것이라는 것까지 버전도 여러 가지입니다. 논리적 인과성이 떨어지고 아전인수식 이야기도 많은데,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방향성 만큼은 확고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웃어 넘길 수 만은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실제로 부동산 시장에 참여하고 있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희한하게 결정되는 집값 결정 구조로 인해 시장 전체가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걸 보고 이러다 집 사는 게 더 어려워질까 봐 불안해 진 사람들이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집값 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시장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가진 기대가 잘못된 것이라는 걸, 불안해 하며 이미 값이 오른 집을 추격 매수할 필요는 없다는 시그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아직 정부는 소극적입니다. 대통령이 집값 상승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하지만, 그 정도 시그널만으로는 시장의 방향을 바꾸기에는 이미 늦어버렸습니다. 더 강한 시그널이 필요한데, 정부는 주는데 주저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관련 대책도 종합 대책 마련되면 발표하겠다며 시간을 미루고 있죠. 정책 마련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취지일 겁니다.

문제는 그런 신중함이 시장에 또다시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대책이 나올 때 쯤 집값은 이미 저만치 올라버린 후 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때를 놓친 부동산 대책, 그 사이 올라버린 집값으로 인한 피해는 항상 서민들에게 집중됐습니다. 여유가 없는 서민들이 항상 마지막에 폭탄을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방향을 정했다면, 부동산 정책 시행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