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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세계 최장 근로시간, 노사담합의 산물?

기업은 덜 뽑아 인건비 줄이고, 근로자는 더 일해 수당받고

국가별 순위를 나타내는 여러 부문 가운데, 우리 국민들이 고정관념처럼 생각하는 부정적 측면의 세계 수위 분야가 몇 있습니다. 통계를 내는 기관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자살률, 저출산율, 사교육비 지출, 근로시간 등이 그런 것이죠. 그 가운데 OECD 최장이라던 근로시간은 멕시코에게 수위를 넘겨줬지만, 여전히 우리들 인식 속엔 세계 최장 수준으로 남아있고, 실제로 상당 부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근로시간은 어떤 면에선 복합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경제개발 초기, 천연자원도 자본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남들보다 오래 일하는 근면성은 가계를 일구고 기업 성장에 기여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예전 구로공단에서 가난한 집 딸들이 밤낮없이 일하고, 건설현장에서 청년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장시간 노동을 한 결과, 시골 부모님 집에 흑백TV가 들어가고 초가집이 기와집으로 바뀌면서 해가 다르게 우리 삶의 질이 나아졌죠.
 
기업들 역시 이런 근로자들의 저임금을 통한 희생덕분에 경쟁력을 가지면서 세계적 기업으로 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고요.
 
이렇듯 밤낮없이 일하는 게 미덕처럼 여겨졌고,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어지는 고도성장의 결과물들과 어우러지면서, 장시간 근로는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성실성으로 포장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어갔습니다.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서 삶의 질 문제가 부각됐고, 그에 따라 장시간 근무와 저임금은 노동착취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장시간 근로는 저성장국가의 특징이기도 한 동시에, 남성외벌이 중심의 가족경제 구조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가장의 외벌이 구조에서 맞벌이 구조로 전환되는 시기에 있는 만큼, 여성경제활동인구가 앞으로 더 늘어나면 근로시간에 대한 변화의 압박도 급속히 커질 걸로 보입니다.
 
주목할 부분은 장시간 근로에 관한 한 우리나라만의 특수성이 있다는 겁니다. 한국의 장시간 근로는 대기업의 경우 상당부분 노사담합에 의해 초래된 면이 있습니다. 쉽게 요약하면 회사 측은 인력의 추가고용 없이 기존 인력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킴으로써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기존의 정규직 근로자들은 초과근로를 통해 더 많은 임금소득을 얻을 수 있기에 양측의 이해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란 의미죠.
 
이를 입증하듯 일부 대형 제조업의 경우, 장시간 근로를 통한 초과수당이 연봉의 20-30% 에 육박합니다. 직군별로는 사무직보다는 생산직이, 생산직 중에서도 특히 고임금 노동조합원이 장시간 초과근로를 더 많이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노조가입 여부와 관련해선, 비노조원들보다는 노조원들이 더 많은 초과근로를 합니다.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노동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죠. 조금 오래된 자료이긴 하지만, 아래 두 가지 도표를 보면 이해가 쉬울 듯합니다. 
[취재파일] 사무직과 생산직
[취재파일] 노조 가입 여부
또 한 가지 관심을 끄는 건, 휴가를 적극적으로 쓰라고 도입한 연차휴가 제도도 오히려 장시간근로 개선에 관한 한 역작용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연차휴가 제도는 1년 이상 근속자에게 연 15일을 부여하는 건데, 소진율이 평균 60%선에 그칩니다. 기업규모가 클수록 소진율은 더 낮습니다. 근로자들이 휴가 대신 받는 수당을 더 선호한다는 거죠. 근로시간은 더 늘어나게 되고요.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앞서도 언급했지만, 주로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에 관한 것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원치 않게 법정근로시간을 훌쩍 넘기게 일을 하고도 제대로 수당을 받지 못하는 중소기업 근로자들과 비노조원들이 숱하게 많습니다.
 
논의의 요지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원들이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는 근로시간을 쪼개자는 겁니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다른 근로자에게 기회가 돌아가 일자리가 늘어납니다. 근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고, 가정에도 보다 충실해지는 계기가 될 겁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원들이 자신의 것은 하나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국가와 기업이 알아서 일자리를 만들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며, 중소기업 일자리의 수준을 높이라고 요구해선, 일자리 문제는 항상 제자리걸음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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