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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변화 절실한 대형마트…그들의 ‘제 4해답’은?

● 도서관·공원의 얼굴로 찾아온 유혹

연인과의 데이트를 위해 당신은 그곳을 찾은 적이 있다. 한때 그곳은 세련되고 매력이 넘쳤다. 당시 당신 곁에 있던 연인처럼. 하지만 이제 당신은 추억만 남았고, 언젠가부터 발길을 뜸하게 주더니 아예 가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당신은 30~40대다. 그곳의 새 주인이 그토록 잡고 싶어하는 연령층이다.

당신은 그곳에 가지 않게 된 이유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실은 그곳을 다녀온 당신의 경험이 나빠서였다. 세련된 상품들이 주는 자극과 흥분을 감당하기엔, 지쳐가는 몸을 달랠 공간이 없었다. 최근에 누군가는 거길 다시 찾았다 길을 잃었다. 심지어, 길 잃은 연인과 어디서 만날 지를 두고 다투기까지 했다. 그리고 SNS에 고자질했다.
코엑스몰 도서관, 롯데마트 양평점
이런 현상을 누구보다 유심히 관찰한 건, 코엑스몰의 새 주인이었다. 신세계그룹(이마트는 코엑스몰을 운영하는 신세계프라퍼티의 지분 90%를 갖고 있다) 그들은, 획기적인 대책으로 거기에 도서관을 짓는 방법을 택했다. 무려 2천 800제곱미터니까, 축구장 약 40% 면적이다. 잡지 600종, 전자책까지 장서 5만 권을 볼 수 있게 해 놨다.

천장까지 시원하게 뻗은 13미터짜리 대형 서고가 3개. 그 앞에서 방문객들은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사진은 인스타그램 같은 SNS로 올라간다. 함께 달린 반응은 나쁘지 않다. 매장 대신 도서관, 상품 자리엔 책을 놨으니, ‘신선’, ‘파격’이란 반응이 우세다. 당신은 이제 여기로 나올 것인가. 그리고 누군가를 불러내 줄 것인가.
코엑스몰 도서관
코엑스몰 도서관
이마트는 국내 대형마트 업계 선두이자, 키플레이어다. 작년 말 2위 롯데마트와의 점유율 격차가 약 15% 수준이다. 시장지배력 ‘갑’. 그럼, 이런 시도는 승자의 여유이거나 사회공헌 프로젝트의 하나인 걸까. 그렇지 않다. 그들에겐 1위라는 사실보다, 대형마트 업종 전체가 성장이 멈췄다는 사실이 훨씬 절박한 문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대형마트 3사의 연매출 신장률은 2012년부터 줄곧 마이너스. 재작년이 -2.1%, 지난해는 -1.4%를 기록했다. 구매 단가 역시 자꾸 떨어진다. 2013년과 작년을 비교하면 -4.4%. 3년 새 줄곧 하락이다.

정체가 ‘세월’이 됐다. 세월을 이기려고, 대형마트는 2~3번 큰 변화를 꾀했다. 그 덕분에 약 39조원 대 전체 연매출을 가까스로 사수하고 있는 거다. 2000년대 그들은 무조건 싼 가격의 제품을 무한정 갖다 놓았다. 2010년대 초반까지 경쟁은 출혈 과다, 최저가 전쟁이었다. (하청업체에 자행한 수많은 갑질과 가족 기업 간 일감 몰아주기 등 온갖 불공정 경쟁 행태가 이때 태동했다. 그 뒤 4~5년 간 상품차별화 즉, PB상품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 작년까지 수년은 매장을 손질했다. 경험하고 즐기는 공간을 늘렸다. 저성장 시대가 닥치자 ‘모객’이 중요해진 거다. 어떻게든 매장에 나와야 돈을 쓸 것이 아닌가. 지난해 문을 연 ‘스타필드 하남’은 이런 사고에 공간적 최대치가 적용된 결과물이다.

한 정치인은 대선에 도전하며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한 미래학자의 통찰이라는데, 이 말은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어서 쓰임이 크다. 마트도 사정이 똑같기 때문이다. ‘즐거움’ 다음은 무엇이 와 있나. 이미 소비자가 원하는데 널리 퍼지지 않은 건 뭘까.

잠시 강남 코엑스몰의 도서관을 떠나, 영등포로 가자. 한 달 전 양평동 코스트코 옆에 롯데마트가 양평점 문을 열었다. 기자 눈에 이곳은 1층이 ‘미니 공원’처럼 보였다.(자기네가 붙인 이름은 ‘어반포레스트’다) 우선 식품 매장과 계산대가 없다. 2천 300제곱미터 면적에 소파와 테이블, 조경 공간이 40%다. 나머지는 먹거리 매장이다. 사야할 물건은 지하 1,2층과 2층 위로 올렸다. 아무것도 안 사먹고 언제까지든 앉아있어도 된다. 쉬는 데 기본료는 없다는 얘기다.
롯데마트 양평점
롯데마트 양평점
여기를 공원이라고 부르는데 별 망설임이 없는 건, 조명이 다르기 때문이다. 1층 좌,우 정면까지 3면이 천장까지 유리로 된 창문으로 뚫려있다. 바깥 날씨가 보인다. 천장 조명은 간접 조명식이라 자연광에 조도를 맞춰 놨다. 나무를 생화처럼 말린 고급 조경도 한 몫 한다. 보통 소비에만 집중하도록 4면을 막고, 형광등 불빛을 쪼여 소비를 독려하는 보통 마트와는 첫인상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 대형마트가 꾸는 꿈은 당신의 욕망

‘꿍꿍이’는 뭘까. 단순하다. 일단 나오라는 것이다. 나와서 당신들의 시간을 제발 여기서 보내 달라는 것이다. 서현선 롯데마트 매장부문혁신장은 "누가 고객들의 시간을 점유하느냐'가 가장 큰 경쟁력인 시대가 됐다.  그래서 일단 관심을 가지고 오게 만들고, 여기서 먹고 즐기고 쇼핑까지 하도록 기획했다.”고 말했다. 코엑스몰 별마당 도서관 책임자, 신세계프라퍼티 임영록 사장의 메시지는 더욱 단순명료하다. “아무 것도 안 사도 좋다. 일단 여기로 나오시라는 거다. 그리고 여기서 만나시라는 거다. 여기를 약속 장소, 만남의 장소로 활용해 주시라. 책 읽으시면서 기다리시라.” 

돈을 적게 벌든 많이 벌든, 우리는 대체로 돈을 버느라 돈 쓸 시간이 없다. 유통업계가 서로 풀고 싶어 안달이 난 영원한 숙제다. 게다가 요즘 사람들은 대형마트에 와서도 모바일 쇼핑으로 가격을 비교한다. 급할 땐 코앞에 있는 편의점에 간다. 물류 경쟁 덕분에 소비자는 스마트폰을 들고, 배송일자가 아니라 오늘 몇 시에 받을지를 정한다. 편의점은 생필품 가격 격차마저 줄이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에서 보듯, 손님이 와야 할 이유까지 용케 잘 만들어 낸다. 지난해 매출 신장률 19%(대한상공회의소 통계)인 편의점과 굳이 견주지 않아도, 대형마트는 지금 당장 해법이 절실하다.

최저가와 PB, 즐거움. 앞선 해법만으론 부족하다. ‘돈 쓸 시간’을 얻는 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형마트가 발명한 네 번째 자구책은 이렇다. '제 4해법', 그것은 '휴식'의 유혹이다. 롯데마트 양평점의 지난 한 달 성적에 본사는 기대감이 부푼다. 이렇게 휴식 공간을 1층에 배치해도 ‘돈 쓴 사람’ 숫자가 타매장의 1.5배였다는 거다. 이 매장 2층엔 키즈 카페가 있다. 2시간 기본료가 1만 5천 원이다. 생각해보라. 당신과 함께 나온 자녀는 당신처럼 계속 쉬고만 싶을까. 코엑스몰 도서관에 앉아, 당신은 정말 책만 보다 들어갈 것인가. 무한히 뻗은 그 유혹의 공간에서 말이다. 소비를 하려고 마음 먹는 순간, 우리는 제각각 돈 쓰는 데는 ‘프로근성’이 요동친다. 

앞으로 수년 간 대형마트 곳곳이 개조 공사 소음에 시끄러울 것이다. ‘소통과 라이프스타일 업그레이드’ 그들이 소비에 가치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받아들이기 나름이기에 왜곡이라고 비판할 순 없다. 중요한 변화는 따로 있다. 2010년대 백화점도 아닌 대형마트마저도 욕구의 문제만 공략해선 답이 없단 걸 알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제 당신의 욕망을 거의 정확히 읽었다. 언제 어디서든 좀 더 잘 쉴 수 있는 곳을 원하는 게, 바로 당신이다. 그들은 이 격언의 힘을 믿는다. “비우면 얻을 것이다”

당신은 쉴 때에도 지갑을 지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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