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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구의역 사고 1주기…19살 김 군이 남기고 간 것

[리포트+] 구의역 사고 1주기…19살 김 군이 남기고 간 것
컵라면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하다 죽음을 맞이했던 19살 청년노동자 김 모 군. '구의역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새 1년입니다. 김 군은 구의역에서 홀로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전동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청년노동자의 안타까운 사고는, '위험의 외주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갑과 을'이라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추모행렬이 이어졌고, 열악한 근무환경과 안전관리 실태가 속속 드러났습니다. 사고 원인 조사와 함께 재발 방지책, 외주화 방지 법안이 쏟아졌습니다.

참사 1년이 지난 지금, 김 군의 일터는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 누가 19살 청년노동자를 죽게 만들었나

김 군은 사고 당일 스크린도어 오작동 신고를 받고 혼자 점검에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스크린도어 점검은 2인 1조가 원칙으로 혼자 일하는 게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1시간 내 정비가 안 되면 하청 업체가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입니다. 김 군은 그렇게 컵라면 먹을 시간도 없이 홀로 일하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의 평가
구의역 사고 이전에도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있었고, 그때마다 재발방지책이 발표됐지만 역시 그때뿐이었습니다. 김 군이 속했던 하청 업체는 물론 원청업체인 서울메트로 역시 안전교육 강화를 비롯한 기본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안전이 배제된 위험천만한 환경에서 목숨 걸고 일했던 김 군의 월급은 140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은 '안전을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 삼은 공공부문 경영 효율화 정책과 부실한 스크린도어 공사 등이 종합적으로 빚어낸 참사'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 또 다른 김 군들의 일터에 찾아온 변화

김 군의 안타까운 죽음은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을 개선하는 밀알이 됐습니다. 안전관리 업무만큼은 외주 업체가 아닌 서울메트로가 직접 책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메트로 측은 스크린도어 유지관리업무를 작년 9월부터 직영 전환하면서 김 군과 같은 안전업무직 직원 142명을 채용했습니다. 2인 1조 근무 원칙을 지키고 안전 교육을 강화했으며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보호구 지급 기준도 개선됐습니다. 사고 방지를 위한 기술적인 조치도 마련됐습니다.

스크린도어가 열린 상태에서 전동차가 출발할 수 없도록 하는 무선주파수(RF) 제어 시스템이 지난 4월 1호선에 모두 구축됐고 3호선 34개 역에도 올해 안에 구축됩니다. 지난달 10일에는 메트로 121개 전 역의 스크린도어 운영 상황을 실시간 감시하는 관제 시스템이 갖춰졌습니다.
'구의역 사고' 이후 달라진 점
낮은 임금으로 신음하던 또 다른 김 군들의 월급 수준도 크게 개선됐습니다. 숨진 김 군의 입사 동기였던 박 모 군의 경우 2015년 10월 입사 직후 1천946만 원의 연봉을 받았지만, 지난해 2천861만 원으로 뛰었습니다. 인상계획에 따라 올해 3천42만 원까지 연봉이 오르면 최근 2년 사이에 연봉이 56.3% 상승하게 되는 셈입니다.

■ '위험의 외주화' 여전…갈 길이 멀다

김 군이 숨졌을 당시와 비교해보면 처우는 많이 개선됐지만,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위험의 외주화'는 여전한 실정입니다. 김 군 사고 이후 생명·안전 업무는 외주화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 법안이 쏟아졌지만, 여론의 관심이 식어가자 결국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조상수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구의역 사고 이후 서울시에서 안전업무직의 제한적 직영화만 이뤄졌고, 외주화 금지법안이 발의됐을 뿐 통과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정규직은 4조 2교대, 안전업무직은 3조 2교대
김 군과 같은 안전관리직 직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고용하면서 또 다른 차별도 생겼습니다. 정규직은 4조 2교대지만 안전업무직은 3조 2교대를 기본으로 운영되고 있는 등 노동 강도, 처우 등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겁니다. 이런 탓에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중규직'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19살 앳된 청년노동자가 일깨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해결되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입니다.

(기획·구성: 정윤식, 장현은 / 디자인: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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