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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계란 판매는 허용했지만…닭의 운명은?

[취재파일] 계란 판매는 허용했지만…닭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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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병원체가 동물의 몸속으로 들어온 뒤 처음으로  증상이 나타날 때 까지 기간이 잠복기다. AI(조류 인플루엔자)바이러스의 잠복기는 21일이다. 야생조류나 닭,오리 같은 가금류가 AI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최대 21일 안에 증상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잠복기가 지나도록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거나 몸속 면역력이 바이러스를 이겨냈거나 둘 중 하나다.

AI바이러스 잠복기를 무사히 넘겨 계란의 출하까지 허용됐지만 닭의 살처분 명령은 취소되지 않은 농장이 있다. 전북 익산에서 산란계를 키우는 참사랑농장은 지난3월 6일 2.1km 가량 떨어진 근처 농장에서 AI가 발생해 AI 관리, 보호 지역으로 지정됐다. 4일 뒤인 10일에는 익산시가 예방적 살처분 명령을 내렸다.

밀식사육 대신 농장 안에 닭을 풀어놓고 키우는 이 농장은 친환경 사육방식으로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곳이다. 스트레스를 덜 주고, 면역력을 높이는 사료를 먹여 건강한 닭을 키워왔다고 농장주는 자신 있게 말한다.

농장주는 아무런 증상도 없이 잘 크고 있는 닭을 무조건 살처분할 수는 없다며 행정명령을 거부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자치단체 공무원들의 설득과 압박이 계속됐지만 농장주는 산란율이 떨어지거나 먹이를 잘 먹지 못하고, 폐사가 나타나지 않는 한 닭을 죽일 수 없다며 밤낮으로 농장을 지켰다. 농장주는 살처분 명령을 취소해달라며 법원에 소송까지 냈다.

익산시는 지난달 21일 농장주인 에게 AI관리보호지역에서 예찰지역으로 전환됐음을 알렸다. 계란 반출도 허용했다. 예찰지역으로 전환되면 가금류 이동제한 조치도 풀리기 때문이다.
달걀 판매 허용했지만 닭은 살처분?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농장은 이미 한 달가량 전인 지난3월 28일 예찰지역으로 전환됐다. AI잠복기 21일이 끝난 시점이 3월 27일 이어서 그 무렵 예찰지역 전환이 이루어졌지만 익산시가 농장주인 에게 이 같은 사실을 통보하지 않은 것이다.

자치단체는 당시 AI가 진정되지 않고 확산 중이었고 그 농장의 경우 예방적 설처분 명령도 내려진 상태였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익산시는 잠복기가 끝난 시점부터 다시 3주 뒤인 지난 4월 19일 참사랑 농장 닭에 대해 AI검사를 실시했다.

모두 음성으로 나오자 농장주인에게 검사 결과를 통보하면서 계란 반출도 허용한 것이다. 3월 28일 전에 생산된 계란은 모두 폐기처분하고 그 이후 낳은 알이 반출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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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살처분 명령에 대한 취소는 없었다. 익산시는 계란출하와 AI확산방지를 위해 실시하려는 살처분은 별개라며 참사랑 농장에 내려진 예방적 살처분 명령은 유효하다고 했다. AI 감염 및 전파 우려가 없어 반출을 허용한 계란이라면 그 계란을 생산한 닭 역시 건강한 닭으로 봐야하는 게 상식이다. 더욱이 닭에 대한 AI 검사결과도 음성으로 판정됐다.

그런데도 살처분 명령이 유효하다니 이를 어찌 이해해야 하나? 익산시의 한 직원은 “농장주가 살처분 명령을 거부해 고발을 해놓은 상태”라며“법적 절차에 따라 저희가 명령을 내린 건데 이제 와서 취소를 한다는 것은 저희들이 잘못을 인정하는 것” 이라고 주장했다.

법률적인 판단이 끝나기 전까지 취소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이해됐다. 농장주인이 살처분명령을 거부해 법률을 위반한 행위와 자치단체의 살처분 취소 결정과 무슨 인과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살처분 명령을 취소한다고 해서 농장주의 법률위반행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상식적 판단으로는 농장주의 살처분 명령 거부 처벌과 자치단체의 살처분 명령 취소야말로 별개 사안이라는 생각이다.

계란 판매가 금지된 지 50여일 만에 참사랑농장에서는 지난달 27일 이후 외부로 계란이 반출되고 있다.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5천여 마리 닭들은 하루 평균 4천 5백 개 가량 알을 낳고 있다. 먹이도 잘 먹고, 아무런 의심 증상 없이 잘 크고 있다고 농장 주인은 말한다.

매일같이 사료를 주고 원통형 둥지 안에서 알을 꺼내느라 바쁘지만 농장주인의 마음은 AI가 발생하기 전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혹시라도 자치단체에서 살처분하겠다고 들이닥치면 어떡하나? 근심과 걱정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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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랑농장은 그동안 농림축산식품부에도 문제해결을 위한 도움을 요청해왔다. 익산시가 살처분명령 취소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축전염병 방역과 관리에 총체적 책임이 있는 농림축산식품부의 태도는 미온적 이었다. 살처분 명령권의 발동과 집행이 자치단체장에게 있다는 형식논리만 내세우며 오히려 수수방관했다.

이에 대해 자치단체는 살처분 명령을 내리는 권한이 있지만 사실상 정부의 지침을 따르는 것에 불과하다며 역시 정부쪽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자치단체와 정부가 핑퐁 게임을 하는 사이 책임 행정은 보이지 않고 농가의 불안과 시름만 쌓였다.

지난해 11월16일 이후 AI로 인해 닭.오리 등 가금류 살처분 농가는 전국 10개 시.도 50개 시.군 9백 46농가에 이른다. 살처분 숫자는 무려 3천 7백 87만 마리나 된다. 양계업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AI는 최근 기온이 올라가면서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어 지난달 4일 이후 추가 발생 없이 잠잠한 상태다.

정부는 이 상태가 지속될 경우 다음주 중 전국 AI 가금류 이동제한 해제를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매해 되풀이되듯 이번에도 야생조류와 방역부실 외에 별다른 문제 의식이나 핵심적 개선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국내 가금농장들이 AI에 취약한 이유로 오래전부터 공장식 밀식사육방식을 이구동성으로 지적해왔다. 면역력이 떨어져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동물복지농장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참사랑농장의 경우는 AI예방과 방역을 위한 연구 모델로 활용할 가치가 높다. 살처분 명령을 끝까지 거부하고 AI 발생 없이 잠복기를 무사히 통과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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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적인 살처분에 의존했던 방역대책은 개선이 필요하다. 친환경 사육방식을 통한 면역력 개선 효과도 주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사랑농장에 내려진 살처분 명령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정부와 자치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AI 검사 결과 음성, 계란 반출 허용에 이미 답은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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