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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사라진 누군가의 '눈'…무엇보다 황당했던 이유

[리포트+] 사라진 누군가의 '눈'…무엇보다 황당했던 이유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눈이 되어주는 도구가 몇 가지 있습니다. 도로에 깔린 노란색 점자블록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단순히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시각장애인들의 안전과 생명에 연결된 도구입니다. 그런데 최근 점자블록들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왜 사라지고 있는 걸까요? 취재 결과는 당황스러웠습니다.

■ 사라진 점자블록…사라진 누군가의 '눈'

시각장애인 홍서준 씨는 요즘, 자주 오가던 인도 위에서 길을 잃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지난해 말, 서울 지하철 사당역에서 이수역까지 연결된 인도 교체공사를 하면서 500m 길이의 점자블록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정말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팔이 없어진 것하고 똑같은 심정이에요. 정말 상실감이 크고 내가 오늘도 멀쩡하게 편하게 이곳까지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갑자기 끊어진 선형 블록이 있고…
비장애인의 눈을 갑자기 가리면 한 발자국도 내딛기 어려운 것처럼 홍 씨에게는 길을 알려주던 유일한 도구가 갑자기 사라진 느낌이었습니다. 홍 씨는 더는 지하철을 사용할 수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합니다.

[이진원/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팀장]
"이것은 흡사 일반인들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암전을 당하면 어디로 가야 할지 상당히 당황하시는데요 그런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비록 아무리 본인이 익숙한 길이라도 시각 장애인분들이 선형 블록이 있다가 없어지면 가고 싶은 곳을 못 가는 그런 부분이라…."

일부 구청이 이렇게 점자블록 시설을 없애는 이유는 뭘까요. 관계자의 답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점자블록이 미관을 해친다는 답이었습니다. 즉 보기 싫어서 남의 '눈'을 없앤 꼴입니다. '다른 보행자에게 불편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도 덧붙였습니다. 최근 서울 중구 회현역 인근에 설치돼 있던 10여 미터 길이의 점자블록도 비슷한 이유로 사라졌습니다.

[서울시 관계자]
"황색이기 때문에 미관 개선이나 도시 디자인 차원에서는 흉물이 될 수도 있어요. 가급적 안 깔고 싶어 하죠. 구청 공무원들 교육할 때도 그 얘기가 나왔었어요. (설치) 안 하면 안 되겠느냐…."

■ 필요한 곳엔 없고, 설치된 곳도 보행 불편

한국시각장애인엽합회는 최근 서울 시각장애인 이용 시설 44개소와 주변 지하철역, 버스정류장 등을 연결하는 보도의 편의시설 실태를 공개했습니다. 조사 결과 실제로 44개소 중 선형 점자블록이 적정하게 설치되지 않은 곳이 65.9%인 29곳에 달했습니다. 보행 장애물로 인해 보행이 불편한 곳도 43.2%인 19곳이나 됐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안전보행을 도와야 하는 점자블록이 벤치 아래에 깔려 있거나, 공사 때문에 갑작스레 끊겨 있는 경우도 있어서 사고의 가능성도 있었다고 연합회는 밝혔습니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일 2015년부터 2016년까지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장애인 이동' 관련 민원 932건의 분석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장애인 이동' 관련 민원
민원 유형 중 점자블록, 안내표지판, 음향신호기 등 이동 안내시설의 정비 요청이 231건(24.8%)로 가장 많았습니다. 또 '장애물이 있는 곳에 점자블록이 설치되어 시각 장애인의 이동에 불편을 주는 경우'의 내용을 담은 민원이 가장 많이 접수됐습니다.

■ '장애인 이동권'은 누가 보호해주나요?

전문가들은 다른 시설보다도 장애인의 이동권, 즉 사회로의 접근성 차원에서 선형 블록 설치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국토교통부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은 장애물을 피하도록 유도할 경우나 시각장애인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 주변의 도로 등에는 선형 점자블록을 연속으로 설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겁니다.
보도에서 선형블록은 시각 장애인의 눈입니다. 방향이나 똑바로 갈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시각적인 요소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바닥에 있는 돌출된  선형 블록 자체가 그분들한테는 눈이 되는 거고요. 그분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죠.
(취재: 이성훈 / 기획·구성: 김도균, 장현은 / 디자인: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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