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후보는 단일화에 대해 유 후보와는 가능하지만, 안 후보와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안 후보 역시 "정치인에 의한 인위적 연대는 거부한다"고 밝혔습니다. 19대 대통령 선거까지 2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바른정당 측이 단일화를 제안하면서, 후보들 간 막판 ‘합종연횡’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과거 대선에서도 단일화, 후보사퇴 등이 선거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 리포트+에서는 역대 대선 판도를 뒤흔든 '단일화'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 단일화 성사에 실패한 13대·17대 대선
보수 정당 중심으로 단일화가 논의되는 19대 대선과 달리,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는 야권의 전유물이었습니다. 1987년 대통령 선거가 직선제로 개헌된 이후, 6번의 대선 중 14대 대선을 제외한 5번의 선거에서 대선후보 단일화가 시도됐습니다.
첫 번째 단일화 시도는 13대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사이에서 있었습니다.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결정되면서, 당시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는 출마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통일민주당이라는 같은 당 소속이던 두 후보는 단일화를 시도했습니다.
■ 후보 단일화로 승리 거머쥔 15대·16대 대선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이른바 'DJP 연합'이 성사됐습니다. DJP 연합은 새정치국민회의를 이끌던 당시 김대중 총재와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가 대선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결과물입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간 단일화가 성사됐습니다. 두 후보의 단일화는 선거의 승부를 뒤집은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당시 두 후보의 단일화 방안으로는 노무현 후보가 제안한 '국민 경선'과 정몽준 후보가 제안한 '협상 담판'이 있었으나, 두 가지 방안을 두고 합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여론 조사'가 단일화 방안으로 채택됐고 노무현 후보가 단일화 후보로 선출됐습니다.
■ 야권 후보 단일화에도 패배한 18대 대선
단일화가 모든 대선에서 승리를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2012년 18대 대선은 야권이 후보 단일화에 성공했지만, 선거에서는 패배한 첫 사례입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후보 단일화 가능성이 자주 점쳐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은 상황입니다. 5월 9일 치러지는 '장미 대선'을 앞두고 막판 단일화로 실제로 성사될지, 성사된다면 선거 판세에 위력을 발휘할지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기획·구성: 김도균, 장아람 / 디자인: 김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