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허심판원 개원당시 모습(사진출처:연합뉴스)
‘다윗’ 중소벤처기업 서오텔레콤이 ‘골리앗’ 대기업 LG유플러스를 상대로 14년째 이어가고 있는 특허침해소송에서 또 졌다. 이로써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응급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구조요청을 알릴 수 있는 비상호출 처리장치 특허는 또 어둠에 갇혀 빛을 보지 못하게 됐다.
특허심판원 제8부(심판장 : 고준호, 주심 : 여원현 신동국)는 지난 11일 서오텔레콤이 엘지유플러스를 상대로 제기한 ‘이동통신망을 이용한 비상호출 처리장치와 그 방법’의 권리범위 확인 청구소송에서 심판청구를 기각한다고 심결했다.
지난 2004년 LG유플러스(당시 LG텔레콤)가 기술도입계약은 하지 않고 서오텔레콤의 아이디어를 도용해 ‘알라딘 폰’을 출시했다며 시작돼 14년 째 이어지는 소송에서 1심 법원인 특허심판원이 다시 LG유플러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 LG 유플러스 알라딘폰 광고 (자료제공 : 광고정보센터)
서오텔레콤 김성수 사장은 특허심판원이 “ ‘발신’과 ‘수신’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국제통신규격이 된 CDMA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한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기술검토 보고서마저 묵살했다.”고 말하고 있다.
특허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서오텔레콤의 실시주장 발명은 위급상황에 처한 휴대전화 사용자가 측면에 있는 비상버튼만 누르면 입력해 놓은 여러 번호로 ‘구조요청 메시지’가 전송되고, 통화가 자동연결돼 현장상황이 중계되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도청모드가 작동하면 구조요청자의 휴대전화로 걸려오는 다른 전화는 모두 차단돼 현장상황만이 중계되고, 위치추적시스템도 가동된다.
서오의 특허가 ‘한 번 연결된 통화 채널로 구조요청 메시지를 전송하고 현장 상황을 중계하는 반면, 알라딘 폰은 긴급구조요청 버튼을 누르면 구조요청 메시지를 전송한 뒤 1차 채널을 끊고 다시 2차 채널을 연결해 도청 모드를 작동한다는 것’이다. 도청모드가 작동하도록 하는 비상발신의 주체도 LG 측이 위급상황에 처한 사람의 휴대전화기인 반면, 서오의 것은 긴급구조요청을 받은 전화번호 즉 ‘비상연락처’ 상의 휴대전화라는 주장이다.
특허심판원이 확인을 요청한 특허청구 범위에 적시되지도 않은 통화채널의 구성을 거론하며 특허범위 확인소송을 기각한 것은 통신기술에 대한 이해 없이 일방적으로 대기업의 손을 들어준 것일 뿐만 아니라 ‘특허발명의 보호범위는 청구범위에 기재된 사항에 의해 정해진다’고 규정한 특허법 97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ETRI는 지난 2013년 3월 19일 당시 지식경제부(현재 산업통상자원부)가 의뢰한 기술검토보고서에서 서오텔레콤의 ‘이동통신망을 이용한 비상호출 처리장치’를 검토한 결과 ‘국제통신규격상 단문메시지 전송을 하고 나서도 한번 형성된 통신채널은 끊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LG유플러스의 알라딘 폰처럼 구조요청 메시지를 전송하고 전송채널을 해제한 뒤, 다시 새로운 채널을 형성해 도청모드를 작동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위급상황에 처한 사람의 구조요청이 접수된 상황에서 한 번 형성된 통화채널을 끊고 다시 연결한다는 것은 국제통신규약에 맞지 않고 상식에도 반한다는 설명이다.
서오텔레콤의 김성수 사장은 LG유플러스측이 처음 출시한 모델에서는 한 번의 통화연결로 긴급구난 메시지 전송과 도청모드 작동을 하도록 해놓고, 분쟁이 발생하고 불리하게 소송이 진행되자 기술구현 방법을 다르게 조작하고 변경했다고도 밝혔다. 통신사업자로서 휴대전화 단말기도 생산하고 있는 LG측이 일부러 불필요한 신규 통신채널을 구성해 퇴보한 시스템을 구현했지만 원고인 서오텔레콤으로서는 이를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특허심판원은 더 나아가 ‘서오텔레콤의 특허발명은 비상연락처 주도로 단말기 소지자의 상황을 비밀리에 탐지할 수 있게 하려는 기술’이라고 임의로 해석하고, 위급한 상황에 빠진 사람이 긴급구난 요청를 하는 알라딘 폰과는 다르다고 심결했다.
서오텔레콤측은 특허심판원의 결정이 특허법과 국제이동통신 표준규약을 위반한 것으로 잘못된 것이라며 2심 법원인 특허법원에 항소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특허소송분야는 중소기업에 불리한 대표적인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알려져 있다. 김성수 서오텔레콤 사장은 "판사 앞에서 LG유플러스측의 증거조작과 거짓말이 적발됐는데도 소송결과는 언제나 패소였다.“고 말한다.
특허심판원에서 이뤄진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특허 소송에서 중소기업의 승소율은 지난 2013년까지만 해도 51%에 달했지만, 2014년 48.8%로 낮아진데 이어 2015년에는 18.2%로 떨어졌다. 창조경제를 외쳤던 박근혜 정부의 슬로건이 무색할 지경이다.
다음 달 9일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들마다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 해소를 이뤄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특허보호를 통해 중소기업 고유의 기술력과 창의력을 보장하고 육성하지 않는 한 달성할 수 없는 빈 공약이 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박진하 카이스트 지식재산전략최고위과정(AIP) 운영위원은 “우리나라의 대중소기업 특허소송에서 2심 법원까지 갔을 경우 중소기업이 승소한 경우는 없었다.“면서 ”지식재산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 한 창업이나 인수합병 활성화는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여러 분야의 기술이 융합해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지식재산은 침체된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탈출구로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대기업이 거래하는 중소기업의 기술을 버젓이 빼앗고 특허를 침해해도 중소기업은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성장 잠재력을 잃고 불모지가 되고 있는 한국 경제에 진정 필요한 것은 상생을 위해 중소기업을 배려하는 마음씨 좋은 대기업이 아니라 시장에서 공정한 심판 역할을 하는 정부와 법원, 그리고 정치권이다. 5월 9일 당선되는 차기 대통령은 불모지가 된 한국 경제를 다시 풍요로운 옥토로 가꿀 특허라는 지식자산을 소중히 여기고 대한민국을 특허 허브로 가꾸는 국가적 리더십을 발휘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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