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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공항공사, 17억 들인 대테러 장비 '전파 인증' 대상인지도 몰랐나

'기사 확산 막자'식 거짓 해명 드러나

공식 자료에 '거짓 해명' 버젓이…
한국공항공사가 3주 만에 해명을 내놨습니다. 21일자 기사 <▶ 한국공항공사, 17억 들인 대테러장비 '사용 중지'…왜? >와 관련해서입니다. 3주 전 질문은 대테러장비인 '휴대용 X-레이 시스템'이 전파 인증을 받았는지, 안 받았다면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 두 가지였습니다. 공항공사가 오랫동안 침묵으로 일관한 터라 뭔가 대단한 내용이 있겠구나, 했습니다. 찬찬히 읽어보니 이것도 저것도 다 사실이 아니라는 반박이었습니다. 취재 요청을 한 지 3주째, 기사가 나간 지 2시간 만에 내놓은 이 해명은 그러나 거짓으로 확인됐습니다.

● 국립전파연구원, "소출력 생활기기라도 인증 받아야"

21일 공항공사가 언론에 배포한 해명 자료에 따르면 '휴대용 X-레이 시스템'은 별도의 신고나 허가 절차 없이 사용 가능한 장비라고 밝혔습니다. 그 근거로 이 장비가 생활주파수인 2.4GHz 대역을 사용하는 '소출력 무선기기'임을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전파 인증을 받을 필요 없으니 전파법을 위반한 장비를 사용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순간 눈을 의심했습니다. 해외에서 들여온 모든 무선기기들은 우리 전파 대역과 혼선을 없애기 위해 '전파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내용(물론 예외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이 장비는 아닙니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주파수 대역은 '휴대용 X-레이 시스템'과 같은 2.4GHz입니다. 휴대전화의 무선 공유 기능을 통해 노트북에서 인터넷에 접속한다고 가정해보죠. 갑자기 전화가 와 노트북을 놔두고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통화를 마치고 오면 인터넷 접속이 끊겨 있을 때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소출력'이라서 그렇습니다. 이런 게 생활기기입니다. 그럼에도 아이폰 같은 휴대전화도 국내로 들여오려면 전파 인증을 받아야 합니다. 법이 그렇기 때문이죠.

그런데 공항공사가 2015년과 2016년 구매한 '휴대용 X-레이 시스템'의 입찰 규격서를 보니 각각 300m와 150m까지 무선 기능을 갖춰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공항공사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A(무기 전문가)씨는 "이 정도 거리까지 무선으로 작동하려면 상당한 고출력 장비여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려봐야 합니다. 국립전파연구원을 상대로 취재를 해보니 결과는 같았습니다. 전파 인증을 담당하는 관계자와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적어보겠습니다.

기자: 2.4GHz 대역을 쓰는 무선기기가 있습니다. 휴대전화 출력과 비슷한 소출력 생활기기는 전파 인증을 받지 않아도 되나요?

담당자: 아이고,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세요. 소출력 생활기기는 인증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 자체가 없고요. 모두 다 전파 인증 대상입니다.


● 감사실에선 "사용 못하게 했다."는데…'정상 운영'중?

공항공사의 해명에는 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허가 절차 없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전국 공항에서 공히 유무선으로 정상 운영 중'이라고 말이죠. 만약에 '휴대용 X-레이 시스템'이 전파 인증 대상이라는 걸 정말 몰랐다면 '공공기관의 무지' 정도로 치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취재진은 3주 전 이미 관련 내용에 대해 공식 취재 요청을 했습니다. 심지어 A 씨가 그보다 두 달 전 공항공사에 이 내용을 지적해 내부 감사까지 벌였던 사안이었죠. 불법 여부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던 셈입니다. '휴대용 X-레이 시스템'이 전파 인증을 받지 않은 장비라는 걸 알고도 사용했다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공항공사는 왜 굳이 '정상 운영 중'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을까요? 그리고 정말 '정상 운영'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전자의 질문에 대해 A씨는 "17억 원 들인 장비가 사용 중지됐다고 할 때 공사 내에서 누가 가장 비난을 받게 될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고 지적합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A 씨와 공항공사 감사실 관계자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휴대용 X-레이 시스템'을 정상 운영 중이라는 공항공사의 해명 또한 거짓말임이 드러납니다.

A 씨: '휴대용 X-레이 시스템' 어떻게 됐어요? 지금 장비를 운영 안 하고 있는 건가요?

감사실 관계자: 네, 현재 운영 못하게 했죠. 못하고 있죠.


'정상 운영 중'이라는 공항공사와 '사용을 못하고 있다'는 공항공사 감사실은 다른 기관일까요? 전파 인증을 받지 않은 장비를 정상 운영하고 있다면 명백한 불법 운영입니다. 그럼에도 공항공사는 '전파 인증은 판매자가 받아야 하는 사안이라 공사와 관련이 없다'고 남의 일 얘기하듯 밝혔습니다. 공공기관이 국민의 세금으로 장비를 구입할 때는 해당 장비가 적법한지 따져보는 게 당연한 의무입니다. 법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영세한 소상공인들조차 전파 인증을 받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판매자에게 책임을 떠넘길 일은 아니라는 거죠.

공항공사의 지연 해명, 거짓 해명을 보고 있자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생각납니다. 공공의 인물로 언론의 당연 취재 대상이었지만 '국정 농단' 의혹을 '국기 문란'으로 치받았죠. '권력의 사적 배분'을 지적하자 '완전히 엮은 것'이라고 국민을 모욕했습니다. 거짓 해명이 당장은 기사의 확대 재생산을 막을 순 있지만 결과적으론 고질적 병폐를 양산할 수 있습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감독 기관인 국토교통부가 사태 파악에 나서겠다는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공항공사의 해명대로 ‘정상 운영’을 했다면 불법 장비를 사용한 게 문제가 없는지, 해명과 달리 실제 사용을 중지했다면 그 사이 대테러 임무에 공백은 없었는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취재진은 공항공사에 '거짓 해명'의 근거를 제시한 뒤 여러 차례 다시 해명을 요구했지만 아무 근거를 내놓지 않고 "해명 자료가 공사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만 문자로 답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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