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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민배우' 호칭은 공짜가 아니다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展’ 기자회견 이야기

곽상은 기자 2bwithu@sbs.co.kr

작성 2017.04.19 13:46 수정 2017.04.19 14:18 조회 재생수16,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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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국민배우 호칭은 공짜가 아니다
여러분은 ‘국민배우’ 하면 누가 떠오르세요? ‘영화나 연극, 드라마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연기력과 모범적 활동을 하여 전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배우를 이르는 말’(네이버 국어사전)이란 뜻풀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인기가 많은 걸 넘어서 뛰어난 연기력과 모범적 활동이 전제가 되는 것이어서, 사실 이런 호칭으로 불리는 건 당사자에게 약간은 부담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민배우’란 호칭 뒤에 세대에 따라 사람들은 서로 다른 몇몇의 이름을 떠올리겠지만, 나이 드신 분이나 젊은 분이나 공통적으로 고개를 끄덕일만한 인물을 찾자면 아마 ‘안성기’란 이름을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긴 시간 ‘국민배우’란 호칭과 함께 살아온 배우, 안성기 씨가 지난주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데뷔 60주년을 기념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는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展’의 개막식 현장에서였습니다.
영화 '하녀' 속 아역배우 안성기도대체 안성기 씨의 나이가 몇이길래 벌써 데뷔 60주년을 맞은 걸까요? 의아함은 오래된 흑백필름을 보며 해소됐습니다. 안성기 씨는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해 당시 활발하게 활동을 벌이던 아역배우였습니다. 그 유명한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품 ‘하녀’에서도 모습을 찾을 수 있더군요.

하지만 10대 중반을 넘어서며 안성기 씨는 10년 정도의 연기공백을 가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가 빈 공간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시간 동안 아역배우 출신의 청년은 학업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오며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던 모양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 혹은 예능을 업으로 삼는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먹고 살 수 있겠냐?”란 걱정을 흔히 하죠. 그런 걱정 외에 안성기 씨에겐 또 다른 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시대상황에서 비롯된 고민이었는데, ‘평생 영화를 하겠다’라는 결심과 함께 영화계로 돌아온 청년의 복잡한 마음은 기자회견장에서 나온 다음과 같은 말에 담겨 있었습니다.

“제가 영화를 다시 시작할 때 즈음에는 우리 영화를 생각하는 대중의 인식이 너무나 안 좋았어요. 내가 이 일을 평생 하려고 하는데 이 상태로 계속 한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영화 하는 사람도 조금 더 존중 받고 동경의 대상이 됐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배우 안성기’의 이미지는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한국 영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개선하고 싶다는 생각은 자연스레 신중한 작품선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럼 배우로서 내가 한번 열심히 해보겠다라는 다짐을 했었고, 그래서 작품 하나하나 선택하는데 상당히 신중했습니다. 영화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작품을 주로 선택을 해서 참여를 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작품을 주로 선택했다'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랬습니다. “제가 성인이 돼서 열심히 영화를 할 때가 80년대가 되겠는데, 80년대라는 시대가 녹록하지 않은 시대였죠. 검열도 아직 많았던 그런 시기였지만, 그 전 70년대에는 못했던 이야기들을 주로 선택을 많이 했죠.…그 전 시기에 많은 사랑 영화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런 시대가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영화는 내가 하지 말아야겠다 의도적으로 마음먹은 것도 있었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1970년대는 한국영화의 침체기로 통합니다. 1972년 들어선 유신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고 극단적인 검열 탓에 동시대 사회를 반영하는 영화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신파물과 호스티스물이 범람했던 그 시기에 20살 안팎의 청년기를 보내며 안성기 씨는 자신만의 작품 선택 기준을 세운 겁니다.

덕분에 시간이 흐른 지금 1980~90년대 한국 영화는 안성기 씨의 필모그래피 속 작품들을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거나 당대 상업영화의 장르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았던 거죠. 130편 넘는 출연작 중 본인이 가장 소중한 작품으로 꼽은 ‘바람불어 좋은 날’(이장호 감독, 1980년), ‘만다라’(임권택 감독, 1981년), ‘고래사냥’(배창호 감독, 1984년), ‘하얀 전쟁’(정지영 감독, 1992년), ‘투캅스’(강우석 감독, 1993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명세 감독, 1999년) 등이 그런 예가 될 겁니다.
데뷔 60주년 기념 기자회견'배우 안성기'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안성기 씨는 자신의 이미지를 잘 관리해온 배우로도 유명한데,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런 이미지 관리가 의도된, 노력에 의한 것임을 고백했습니다.

“워낙 영화를 다시 시작하면서 영화 하는 사람들이나 영화 자체나 조금 더 좋은 인식, 존중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데에서 출발을 했기 때문에 저 자신을 굉장히 다그치고 많은 자제를 하면서 살았다고 할 수가 있겠어요.…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면서 산 거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배우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갖고 있었던 기존의 이미지를 좀 벗어나려고 했어요. 생각도 많이 하고 학구적인 면도 보여주고 좋은 이미지를 가지려고 또 그렇게 인식하게 하려고 알게 모르게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물론 이런 의도와 노력은 안성기 씨의 천성에 의해 뒷받침됐습니다. “거기에는 의도적인 것도 있었고 제 스스로의 성격이라든가 삶도 (그런 면이) 같이 있어서 그렇게 됐을 거에요. 그렇지 않았으면 중간에 피곤해서 관뒀겠죠. 그런데 아마 쭉 계속되는 거 보면 저의 심성 역시 그런 쪽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그런 삶이 부담스럽고 힘들지 않았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안성기 씨는 “마치 바르게 살면 이상하다는 듯이 말씀하시네요.”라고 농을 하며 크게 웃었지만, 흔치 않은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건 많이 이들이 공감하는 바일 겁니다.

기자회견에서 안성기 씨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연기하고 싶다는 바람을 말했습니다. “일단 오래하는 게 꿈입니다. 얼마 동안 할지, 저의 노력으로 가능할지 안 가능할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나이가 더 들어서도 사람들이 영화 속에서 보고 싶어할까, 배우로서의 매력을 계속 줄 수 있을까 그런 것도 의문이지만, 답은 있는 것 같아요. 나이는 들었지만 어떤 에너지가 굉장히 느껴진다 그러면 오랫동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국민배우’라는 호칭에 대해선 열렬한 팬은 없지만 대신 많은 분들이 호감을 가져주시니 틀린 호칭은 아닌 것 같다며 쑥스러운 듯 인정을 했습니다. “(‘국민배우’라고) 계속 불리니까 그러려니 하고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국민배우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의 애정의 표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거기에 굳이 벗어날 필요가 없고 착실하게 배우로서 작품으로서 잘 보여주는 그런 모습으로 살아야 되겠다 그런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안성기 씨의 기자회견 내용은 그의 오늘이 단순한 재능이나 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오랜 시간 한결같이 자신을 다그치고 만들어온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안타깝게도 이런 노력을 한다고 해서 모든 배우가 안성기 씨처럼 대중의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되는 건 아니겠죠. 때문에 그런 노력의 결실을 얻은 건 ‘안성기'란 배우의 행운입니다. 그리고 그런 배우를 가진 건 동시대를 사는 영화 팬들의 행운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