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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왜 오늘 우리는 '법관의 독립'을 말하나

박하정 기자 parkhj@sbs.co.kr

작성 2017.04.19 11:10 수정 2017.04.19 15:03 조회 재생수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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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왜 오늘 우리는 법관의 독립을 말하나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왜 추락했다고 보시나요?"

한 판사가 물었다.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답을 곰곰이 생각하던 중 다른 질문이 또 뒤를 이었다. “그 추락한 신뢰는 어떻게 회복할 수 있나요?” 2~30여 명의 판사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나는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법조인이 아닌 사람이 판결 등 어떤 계기로 인해 ‘법조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집단이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느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소통을 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소위 ‘그들만의 리그’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이런 류의 이야기를 더듬더듬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매일 법원으로 출퇴근을 한 지 6~7개월 남짓 지났던 그때까지도 사법부에 대한 신뢰 혹은 불신을 두고 깊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일선 판사들이 직접 ‘사법부 신뢰 제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도 그날 처음 피부로 느꼈다.

● 법원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법원이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건 판결을 통해서다. 법정에 서게 된 사람에게 판결을 내려주는 곳, 법원에 대한 대표적인 인식이다. 하지만 단순히 유무죄를 판단하고, 손해배상 책임을 따져 배상액을 산정하고, 딱 거기서 법원의 역할이 끝나는 건 아니다. 언제든 새로운 법률 해석이 나오게 마련이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 지켜가야 할 원칙이 그에 따라 새롭게 제시된다. 사후적인 처벌과 판단이 아니라 사전적인, 삶의 방향도 법원이 제시하는 셈이다. 판사 개개인에게 그런 판단을 내리고 방향을 제시할 권한을 주고 또 그것에 따라야 한다는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 건, 판사 즉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서 재판에 임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믿음은 종종 흔들렸다. 사건 관계자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한 법관이 실형을 선고받은 게 바로 몇 달 전 일이다. 이래서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한 법관의 개인적 비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3주 동안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법원 내부에서 벌어진 이 사태들에 또다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 유례없는 3주 동안의 진상조사…왜?

법원에 유례없는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각종 의혹들이 터져 나오면서다. 발단은 지난 2월 13일, 법원 내부 전산망에 올라온 한 공지 글이었다. 법원 안에는 판사들이 가입해 관련 분야에 대한 학술활동을 하는 전문분야 연구회들이 있다. 관련 예규상 이 전문분야 연구회들에는 중복가입이 금지돼 있다. 이 예규에 따라, 중복가입한 곳들을 정리하고 정한 기한 뒤에도 중복 가입이 돼 있다면 뒤에 가입한 연구회는 탈퇴하는 것으로 조치를 하겠다는 내용의 공지 글이었다.

이틀 뒤, 가장 나중에 설립된 연구회였던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 김 모 부장판사는 이 조치가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을 견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글을 다시 내부 전산망에 올렸다.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2월 20일, 다시 글을 올려 해당 조치의 시행을 유보하겠다는 내용을 알렸다. 그리고 같은 날,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기획제2심의관으로 겸임발령을 받았던 이 모 판사가 원 소속 법원으로 돌아가는 겸임해제 인사명령을 받았다. 이 판사는 국제인권법연구회 기획팀장이었다. 

당시 국제인권법연구회는 한 달여 뒤 학술행사 개최를 앞두고 있었다. 연세대학교에서 지난 3월 25일 열린, ‘국제적 비교를 통한 법관인사제도의 모색’이라는 이름의 이 학술대회에서는 ‘법관 독립 확보를 위한 법관인사제도의 모색’이라는 주제를 다뤘다.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 문제를 다루면서, 법관들을 상대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하는 자리였다. 대법원 산하 기관으로 법원 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가 이 행사를 불편하게 생각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앞서 언급한, 사실상 사문화된 것으로 평가됐던 중복가입 금지 예규를 들고 나와 전문분야 연구회에 중복 가입한 법관을 탈퇴하는 조치를 하려 한 것이 이 학술행사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었다. 또 이 판사를 심의관으로 발령했다 다시 원 소속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인사명령 역시, 대법원 고위층이 이 판사에게 학술행사를 축소하라는 지시를 했다가 이 판사가 여기에 항의함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쏟아져 나오는 의혹들에 공정한 조사 기구를 만들어 달라는 판사들의 요구가 잇따랐다. 결국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을 조사하기 위해 중립적인 조사 기구를 만들기로 했다. 이인복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판사회의 등을 통해 추천된 6명의 판사들로 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난달 22일 꾸려졌고 조사를 시작했다. 사법연수원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진상조사위원회는 관련 인물 11명을 직접 청문 방식으로 대면 조사했고 20명을 서면 조사했으며 당사자나 법원행정처로부터 확보한 이메일이나 보관 문서 등을 조사했다. 그리고 각종 의혹들에 대한 조사 결과를 어제(18일) 발표했다.

● 학술대회 부당 축소 지시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감한 주제를 다룰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를 두고 이를 연기하거나 축소하려는 시도가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연기 및 축소 시도를 한 주체는 대법원 산하 연구기관인 양형위원회 소속 이 모 상임위원이었다. 이 상임위원은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회장을 역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해 말, 이 상임위원은 외부, 즉 연세대 측과 연계된 공동학술대회가 열린다는 걸 알게 된 뒤 다른 연구회 회원들을 통해 학술대회의 발제자와 논의 주제 등을 확인했다.

그리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학술대회 추진경과와 대응방안에 대해 메모를 작성해 보고했다. 법원행정처는 학술대회의 내용이 대법원장 권한 축소 등을 다루고 있는데, 당시 정치권에서 진행되고 있던 개헌특위의 논의사항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여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이 상임위원이 작성해 보고한 대응방안에는, ‘회장이 운영위원회 구성원들을 접촉해 공동학술대회 안을 부결시키도록 하는 방안’, ‘운영위원회를 설득해 국제인권법연구회 명칭 대신 소모임 명칭으로 개최하도록 하는 방안’, ‘학술대회를 연기하는 방안’ 등이 상세히 담겼다. 또 ‘연구회 자체 학술행사로 개최하되 주제를 각국의 법관 인사제도 연구와 같이 학술적으로 하고, 장소도 서울중앙지방법원 회의실에서 하며 교수들은 발표자로서만 참여시키는 안’도 제시했다. 이 상임위원은 연구회 구성원들에게 발표 수위를 낮춰달라고 전해달라는 말도 했고, 특히 연구회 기획팀장이었던 이 판사에게 심의관 추천을 거론하고 행정처에서 같이 일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학술대회가 법원 내부행사로 치러지게 하고 언론에 보도되지 않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까지 한 것으로 조사됐다.

진상조사위는 이 상임위원이 단순한 우려 전달을 넘어 학술대회의 주관과 행사 시기, 장소, 행사 방법, 언론 노출 금지 등 세세한 내용까지 간섭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상임위원이 행정처에 보고한 대응방안 중 일부가 실제로 시행된 것으로도 보인다는 점에서 법원행정처도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도 지적했다.

전문분야연구회에 중복 가입해서는 안 되고 그럴 경우 직권으로 탈퇴 조치하겠다는 ‘중복가입 해소조치’ 역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주된 대상으로 한 조치라고 보는 의혹에 충분한 근거가 있어 보인다는 게 진상조사위의 판단이다. 이 상임위원이 보고한 문건에 공동학술대회에 대한 대책으로 ‘커뮤니티 전체 차원으로 조치’라는 내용이 담겼는데, ‘중복가입 해소조치’가 그로부터 한 달 만에 전격적으로 시행됐기 때문이다.

또 심의관 발령이 났다가 다시 원 소속으로 돌아간 이 판사 역시 이 조치가 국제인권법연구회를 대상으로 한 조치라는 얘기를 주변에서 들은 뒤 임종헌 전 차장과 통화를 하면서 진위를 물었다. 이 판사에 따르면, 당시 통화에서 임 전 차장 역시 그 조치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진상조사위는 법원행정처가 현행 예규의 집행이라는 명목으로 특정 연구회 혹은 공동학술대회를 견제하기 위하여 부당한 압박을 가한 제재조치를 한 것이라며, 이는 사법행정권의 남용이라고 꼬집었다.

● 법원행정처에 反하면 요주의 대상?

법원행정처는 법원에 관한 인사, 예산, 회계 등 사법 분야 행정 사무 전반을 관할한다. 일선 판사들은 재판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행정 업무를 따로 떼어낸 셈이다.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 중에서 정해지는데, 대법원장 지휘를 받아 사무를 관장한다. 그런 법원행정처 산하의 고위 법관이 한 연구회 활동에 개입하고 나섰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대상은, 대법원장이 나서서 사활을 거는 역점 사업에 반대 의견이 존재한다는 걸 알리고, 법원행정처가 가지고 있는 권한을 각급 판사들이 나눠 가질 방안에 대해 고민거리를 제시했던 연구회였다. 이렇게 법원행정처가 국제인권법연구회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이번 학술대회가 처음이 아니었다.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인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이하 인사모)’은 지난 2015년 8월 즈음부터 법원행정처의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됐다. 인사모가 상고법원 도입에 대한 찬반토론을 벌였고 참석자 가운데 18명이 반대하고 1명만이 찬성한 결과를 내부 전산망에 게시한 것이다. 당시는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강력하게 추진하던 시기였다. 이후에도 인사모는 판사의 사법행정 참여방안, 사법행정 참여 판사의 대표성 확보 등을 위한 판사회의 실질화 방안, 바람직한 대법관(대법원장)상, 사법부 독립 확보를 위한 법관 인사제도의 모색 등 사법제도에 대한 논의를 계속했다. 사법행정권을 틀어쥐고 있는 법원행정처 입장에서는 달갑지 만은 않은 일선 논의일 터다.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에서는 인사모 회원들의 활동이 법관의 품위 유지, 공정성, 사법 신뢰, 단체의 폐쇄성 등 측면에서 법관윤리강령 제5조 ‘법관의 직무외 활동’ 등에 저촉되는 면이 없는지 검토하기에 이른다(법관 윤리에 위반되는 사항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상임위원 역시 상고법원이나 법관인사 관련 등 법원행정처에 ‘민감한’ 주제를 다룬 논의가 있을 때면 인사모 활동을 파악해 법원행정처 회의에 보고했다. 또 인사모 회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법원 예산으로 공식 사이트를 사용하는 연구회가 법원행정처에 반대하는 모임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결국, 법원행정처에 반(反)할 때마다 견제와 압박을 받은 셈이다.

진상조사 결과를 본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판사들이 법원행정처에 예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판사들에 대한 인사권을 쥐고 있는 법원행정처를 두고, 판사들이 자기 검열을 일상적으로 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법원행정처가 제시하는 사법 정책의 방향이나 각급 법원에서 결정되는 재판 관련 사항에 대해서도 판사들이 입을 굳게 닫게 되는 상황이라는 건데, 이는 곧 법관 독립의 침해로 이어진다. ‘법관 개개인이 곧 하나의 법원’으로서 재판을 하고 판결을 내리는 건데, 이런 관료화로 인해 소위 ‘윗선’의 눈밖에 나지 않는 결정만을 내리게 된다면, 법관이 과연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다.

진상조사위도 마지막 결론에서 이 부분을 지적했다. 사법제도와 사법행정의 문제는 법관 개개인은 물론 사법부의 독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그에 대한 논의는 대법원과 법원행정처가 독점해서는 안 되고, 법관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의견수렴이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오히려 권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받게 될 수 있는 법원의 판단이 법관의 양심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논의는 그저 ‘판사들만의 속사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다.
     
● '블랙리스트는 없다'…조사 제대로 됐나?

진상조사위는 그간의 조사결과를 모두 54페이지의 보고서로 정리했다. 보고서는 그간에 제기된 의혹들을 모두 5가지로 나눠 그 의혹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일선 판사들이 가장 공분했던 건 마지막 의혹, 소위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의혹이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판사들을 뒷조사한,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 파일이 있다는 것이다.

진상조사위는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한 그런 파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파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된, 이 상임위원이 작성한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대책문건을 가리킨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받았다 원 소속 법원으로 돌아간 이 판사가 이 상임위원으로부터 이런 파일의 존재를 들었다고 당초 진술했다.

이 판사가 진상조사위에 제출한 경위서에 따르면, 이 상임위원은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보면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 파일이 있다”면서 “거기에 판사들 뒷조사한 파일들이 나올 텐데, 그러더라도 놀라지 말고, 좋은 취지에서 한 거니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이 판사에게 말했다. 이 상임위원은 진상조사위 조사에서 이와는 다르게 비밀번호가 걸려있는 파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그런 얘기를 한 적도 없다고 진술했다.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두고 상반된 진술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진상조사위는 물적 증거가 되어 줄 해당 컴퓨터를 직접 확보해 조사를 하지는 못했다.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이 진상조사위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서다. 법원행정처는 그런 의혹의 문서를 생성하고 관리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작성자 동의가 없는 한 요청을 수락할 권한이 처장에게 없고, 또 행정처 문서 중 보안유지가 필요한 문서가 다수 있어 요청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따라 진상조사위는 컴퓨터를 강제로 확보할 근거나 방법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대한 근거로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이 상임위원의 업무는 기획조정실 업무와 관련이 없어 기획조정실 컴퓨터 파일의 존재와 내용을 알기 어려워 보이고, 기획조정실 업무는 판사들의 동향과 성향을 파악하는 업무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이 상임위원이 작성했던 연구회에 대한 대책문건과 이 판사가 들은 파일 내용이 일치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 역시 어디까지나 추정이며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엇갈리는 진술 속에서, 관련된 어떤 파일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명확하게 도출된 점을 두고 이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판사들 사이에서도 터져 나왔다.

 또 하나, 이 판사의 인사발령 경위다. 이 판사가 처음 인사발령을 받았던 법원행정처 심의관은 법원 내부에서 요직으로 꼽히는 자리다. 진상조사위도 보고서에서 언급했지만, 근무평정이 우수하고 평판이 좋은 판사들을 법원행정처 주요 보직자로 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사 관행이 법원 내부에 존재한다. 이 판사는 지난 2월 9일, 이 자리에 2월 20일부터 근무하라는 인사명령을 받았다. 다음 날 이 판사는 법원행정처를 방문해 차장 등과 인사를 나눴다.

며칠 뒤 이 상임위원을 찾아가서도 인사를 하게 되는데, 바로 이 자리에서 앞서 언급한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 뒷조사 파일’에 대해 들었고, 이 말에 충격을 받아 집에 돌아가서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 판사에 따르면 이 상임위원은 다음날 이 판사에게,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와 관련해서 연구회 간사가 이의를 제기한 부분에 대한 반박 논리를 연구회 측에 전달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또 이후 이 판사는 다른 심의관에게서 중복가입 해소조치가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타깃으로 한 것이고, 법원행정처로 인사가 나게 된 것도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어서라는 말을 들었다. 이 판사는 결국 이러한 업무를 맡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직을 결심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를 제출한 당일 이 판사는 임종헌 전 차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밝히고 있는데, 통화 중 중복가입 해소조치가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타깃으로 한 정책 결정이었다는 것에 대해 임 전 차장이 ‘자신의 책임이 50% 있다’고 했고, 이 상임위원이 한 학술행사 축소 지시에 대해선 ‘좀 조용하게 가면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으며, 자신을 심의관으로 인사 발령낸 것에 연구회 관련 목적이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도 인정하는 것처럼 답변했다고 했다. 이후 이 판사는 사직을 만류하는 임 전 차장의 전화에 사직 대신 원 소속 법원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 그리고 국제인권법연구회에 개입하지 말아달라고 직접 요구했다고도 진술했다. 

 진상조사위는 이 판사에 대한 심의관 인사발령과 원 소속 복귀 인사발령 자체에는 인사권 남용 정황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처음 이 판사를 심의관으로 발령 낸 것에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없고, 원 소속 복귀는 이 판사 본인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동시에 진상조사위는, 이 판사가 이 상임위원으로부터 학술대회나 중복가입 해소조치 관련 요구를 듣고 심의관으로 부임하게 되면, 앞으로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관련된 부당한 업무를 계속 지시받아 수행해야 할 것이 예상되고 또 법원행정처의 실상이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고 생각되자 견디기 어려워 사직 의사를 표시한 걸로 보인다고 밝히고 있다.

인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압박이 하나의 원인이 되었음은 인정한 것이다. 진상조사보고서는 이 상임위원에게 많은 책임을 묻고 있지만, 이 인사 조치 과정을 비롯한 일련의 사태에서 이 상임위원, 임 전 차장, 그리고 법원행정처 조직 자체가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역시 의문이다.

● 왜 지금, 법관의 '독립'인가

의혹을 둘러싸고 꾸려졌던 진상조사위의 활동은 우선 일단락됐다. 보고서도 말미에 강조하고 있지만 진상조사를 통해 해결된 과제보다 앞으로 남겨진 과제가 더 많은 듯하다. 사법제도에 관한 논의의 공론화 필요성, 법원행정처의 업무처리 시스템과 관행의 문제는 앞으로 사법부 스스로를 비롯한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법원행정처 해체론도 제기된다. 상근 판사 중심으로 사법행정 권한을 독점하고 대법원의 권위를 지켜내려는 기관으로서의 법원행정처를 존속하기보다는, 법관이 아닌 직원들이 업무를 담당하고 판사회의 등 법관 대표 회의체에 사무분담이나 사법정책 결정에 대한 권한을 넘겨줘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를 포함한 모든 사법행정과 법관 인사제도에 대한 논의는 법관의 독립 문제와 결부된다. 이는 일반 국민들이 받게 되는 판결이 법관의 양심에 따른 공정한 판결인지와도 직결될 수 있다. 이 논의가 사회 구성원 전체가 아닌 법관들, 법관들 가운데에서도 소수 누군가의 전유물로 남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가 한창 진행 중일 지난 3일 열린 신임법관 임명식에서 새롭게 판사 복을 입게 된 판사들에게 사명감을 갖고 재판의 독립을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이 승복하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도 당부했다. 재판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려는 우려스러운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법관은 이런 위협에 당당한 기개와 각별한 사명감으로 맞서달라는 강조도 뒤를 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등과 관련해 결정을 내린 판사 개개인에 대해서 사실과 다른 의혹을 제기하거나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자 이를 우려한 발언으로 풀이됐다. 당시 쏟아져 나온 의혹들에 임종헌 전 차장은 법관 재임용 신청을 철회하는 방식으로 사의를 표명했고 진상조사위가 조사에 착수했지만, 그 와중에도 양승태 대법원장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런 양승태 대법원장이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는 헌법에 명문화된 ‘법관의 독립’이 아니라 그와는 미묘하게 다른 ‘재판의 독립’을 언급했다.

법관의 독립이 이뤄지면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 바로 재판의 독립이다. 법관의 독립, 그에 따라 확보되는 양심에 의한 심판, 자연스레 이어질 법원 판단에 대한 존중과 권위. 이를 위해 일선 판사들이 치열하게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고민해 왔다. 그리고 고민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 법원행정처가 나서서 직접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길, 그래서 법관들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된 심판을 한다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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