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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北 열병식 탄도미사일의 구색…"한국은 상대 않겠다"

김태훈 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7.04.17 08:39 수정 2017.04.17 10:01 조회 재생수7,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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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北 열병식 탄도미사일의 구색…"한국은 상대 않겠다"
지난 15일 북한이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을 맞아 열병식을 하면서 신무기들을 두루 선보였습니다. 북한 열병식의 하이라이트인 탄도미사일들의 행렬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으로 추정되는 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SLBM, 또 SLBM을 개량해 만든 중거리 미사일 등 유례없이 새로운 미사일들로만 채워졌습니다.
북한 ICBM 추정 신형 미사일대신 과거 열병식의 몇몇 단골들은 이번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미가 KN-02로 부르는 단거리 지대지 미사일(북한명 독사)입니다. 다른 단거리 지대지 미사일인 스커드 B, C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남쪽을 사정거리에 두는 미사일로, 중장거리 미사일과 달리 우리에게는 현실적인 위협인데도 불참했습니다.

북한은 남쪽이 아니라 미국 대륙이나 일본과 괌의 미군 기지를 노리는 ICBM과 중거리 미사일들로만 탄도미사일 행렬을 꾸린 것입니다. 즉 북한의 이번 열병식은 대미 무력 시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미국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군더더기 미사일은 쏙 빼고 단지 미국을 위협하기 위한 열병을 했습니다. 이런 식의 북한 열병식은 처음 봅니다.

● 관행 깬 北 열병식

북한의 열병식은 각급 부대원들이 무릎을 굽히지 않고 걷는 이른바 구스 스텝(goose step) 행진으로 시작합니다. 병력의 열병이 끝나면 대형 무기들이 나타납니다. 재래식 전력인 전차와 자주포가 선두를 맡습니다. 무기 퍼레이드의 서막은 묵직한 굉음을 내는 무한궤도의 기갑부대가 제격입니다.

이어 휴전선에서 국지도발용으로 종종 쓰는 대공 무기인 고사포와 다연장로켓의 일종인 방사포 행렬이 뒤따릅니다. 가끔씩 트랙터에 포를 얹은 무기 같은 이색 무기도 나왔는데 이번 열병식에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재래식 무기의 열병이 끝나면 미사일이 등장합니다. 미사일 열병의 시작은 사드(THAAD)나 패트리엇 같은 지대공 미사일입니다. 이번 태양절 열병식에서도 KN-06, SA-2 같은 북한 지대공 요격 미사일들이 미사일 열병의 선두였습니다. 

방어용 요격 미사일의 열병이 끝나면 북한 열병식의 하이라이트, 공격용 탄도미사일들이 등장합니다. 이전에는 사거리 순으로 탄도미사일들을 내보냈습니다. 단거리인 KN-02, 그 뒤에 스커드, 다음은 노동, 무수단 순서입니다. 2012년 4월 태양절에는 탄도미사일 행렬의 끝에 ICBM급인 KN-08을, 2015년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는 KN-08의 개량형인 KN-14를 처음으로 내놔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순서와 구색이 파격이었습니다.

● SLBM 북극성 앞세운 공격 미사일 열병
북한 SLBM 북극성탄도미사일 행렬의 앞머리로는 단거리 KN-02가 아니라 SLBM 북극성이 치고 나왔습니다. 작년 8월 시험발사에서 사거리 500km를 찍어 한미일 세 나라를 경악하게 한,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미사일입니다.

다음에는 SLBM 북극성과 같은 고체 연료를 쓰는 신형 중거리 지대지 탄도미사일인 북극성 2형이 등장했습니다. 지난 2월 시험발사에 성공했고 사거리가 2,000km 이상으로 분석됐습니다. 사거리 1,000km 이상의 신형 스커드-ER과 중거리 무수단, KN-08도 새롭게 도색해서 열병에 나섰습니다.

압권은 중국의 둥펑-31, 러시아의 토폴-M을 닮은, ICBM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입니다. 원통형 발사대에서 콜드 론칭 방식으로 쏘는 고체 연료 기반의 ICBM으로 분석됐습니다. 발사 방식이 북극성 2형과 같아서 북극성 3형일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껍데기뿐인 가짜일 수도 있는데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이번에 열병한 북한의 SLBM 북극성, 신형 중거리 북극성 2형, 무수단, KN-08, 새로운 ICBM 등은 하나같이 괌의 미군 기지, 미국 대륙을 겨냥하는 미사일입니다. 남쪽을 향해 쏠 KN-02와 스커드 B, C는 빼고 미국을 타격할 탄도미사일들만의 출전. 게다가 이들 미사일들은 모두 시험 발사 단계 또는 시험 발사 직전 단계, 즉 개발 중인 미사일들입니다. 북한이 2~3년에 한 번씩 어김없이 열병식을 해왔지만 이번처럼 노골적으로 미국을 상대로 무력 시위를 한 적은 없습니다.

트럼프의 강경한 대북 정책에 대해 북한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했는데 이번 미국을 위해 차려 놓은 열병식이 첫 액션 같습니다. 다양한 신형 미사일로 미국을 공격할 수 있다고 트럼프에게 윽박지른 것입니다. 개발 중인, 덜 익은 미사일로나마 대미 무력시위를 해야 하는 북한의 조급한 마음이 읽히기도 합니다.

북한이 열병식에 만족하고 여기서 그칠지, 한발 더 나아갈 지가 주목됩니다. 북한이 열병식을 통해 대한민국은 안중에 없고 미국만 상대하겠다는 의중을 뚜렷이 드러냈는데 다음 달 새로 들어설 정부를 상대로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