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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세월호 참사',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닌…

세월호 참사가 '현재 진행형'인 이유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7.04.17 09:09 수정 2017.04.17 09:21 조회 재생수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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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라듣는 뉴스룸'-북적북적 세월호 침몰304, 295, 9
4.16
3년
세 번째 봄
금요일
노란 리본
세월호

 
‘304’명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295’명이 숨졌고 ‘9’명은 아직 수습되지 못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3년’이 흘렀습니다. ‘세 번째 봄’이 왔습니다. ‘금요일’엔 돌아오라는 바람을 담아 ‘노란 리본’을 답니다. 작은 리본 하나만으로도 힘이 난다고 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야깁니다.
 
세월호 3주기를 맞아 전 사회적인 추모 분위기가 있습니다. 대선 후보들 여럿도 추모 메시지를 내놨습니다. 3주기를 앞두고 3년 만에 세월호가 인양됐습니다.

왜 세월호 참사만 특별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참사 대한민국'이라고 할 만큼 그동안 인명 피해가 많았던 참사들이 숱하게 있었는데 3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하냐는 의문입니다.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을 드리기 위해 책 3권을 소개합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 학생, 형제자매의 이야기, 그리고 ‘그날’에 대한 기록에 충실한 기록 모음까지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세월호 그날의 기록]입니다. (SBS 팟캐스트 ‘골라듣는 뉴스룸- 북적북적’에서 3월 26일부터 4월 16일까지 4회에 걸쳐 이 책들을 읽었습니다.)
 
세월호에 타고 있던 아이들은 3박 4일 일정으로 4월 15일 화요일에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4월 18일 금요일이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돌아오지 못한 그날, 304개의 금요일, 책의 제목은 여기서 따왔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금요일엔 돌아오렴'[금요일엔 돌아오렴]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이 없는 시간, 그 동안 익혀온 어떤 삶의 기술도 무력해지는 시간, 살면서 쌓아온 세상과 인간에 대한 감각을 처음부터 다시 써 내려가야 하는 시간을 가족들은 먼저 살아내고 있다. 그것은 절망적이지만,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외쳤던 우리는 다시금 가족들로부터 배운다."  
 

"준혁이는 먼저 앞으로 나가 있었는데 구명조끼가 부족해서 입지 못했나 봐요. 그걸 건우가 걱정하는 장면이었어요. 아이들이 이렇게 무섭고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 챙겼구나 싶었어요. 우리 아들도 자기만 생각하지 않고 이미 밖으로 나가서 안 보이는 아이까지 챙기고 있었구나 싶어서 ‘우리 아들 너무 장해’라고 이야기해줬어요. 피하고 안 보려던 영상이 오히려 내게 겁에 질려 있는 아들 모습을 잊게 해주었어요…. 마지막 순간에 아이들이 저렇게 했구나 그것만 생각하려 해요."
 
“다른 실종자 가족들한테 우리 아들 나와서 간다고 하는데... 미안한 거예요. 우리 아들이 이렇게 나와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기도 하고. 그러다 내가 미쳤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아들이 이렇게 나온 것이 감사할 일인가요. 실은 거기서 우리가 마지막이 될까 봐 너무 힘들었어요.... 결국 못 봤어요. 그런데 그게 또 한이 맺혀요. 한데 본 사람들은 또 그게 자꾸 떠올라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건우가 살아있는 모습만 기억하고 싶었어요. 웃는 모습으로 그냥 기억하고 싶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고 그래야 내 아들이 죽었다 생각이 안 들고 내 마음속에서 같이 살아가지."  
 
“미지 엄마, 아빠에게 16일은 삶과 죽음이 한 묶음으로 날아든 날이다. 미지의 생일은 3월 16일, 사고가 난 날은 4월 16일, 물에서 올라온 날이 5월 16일이다. 미지가 세상을 처음 본 날, 미지가 떠난 날, 미지의 마지막 모습을 본 날이 16일로 일치했다.
 
"미지가 나하고 농담을 잘해. 생전에 나랑 팔짱 끼고 드러누워서 '아빠, 이다음에 내가 아빠 비행기 태워줄게' 했어. 그 말 많이 하잖아. 딸 낳으면 비행기 탄다고... 미지가 나왔는데 그 생각이 딱 나는 거야. 헬리콥터를 딱 탔는데. 먼저 나왔으면 앰뷸런스 타고 올라왔을 건데 늦게 올라와 갖고 헬리콥터 탄 거, 그것도 비행기잖아. 그죠? 그때 울음이 나더라고. 헬리콥터로 올라오는 동안 내내 관 옆에서 울었어. 와, 이 자식이 죽으면서까지도 약속을 지키려고 그랬을까."
 
"아빠는 미지를 위해 아직 할 일이 많다. 할 일을 해야 먼 훗날 미지를 만나서도 한 달 동안 바닷속에서 외롭게 했던 시간들을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다…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미지가 바라던 세상, 그 길을 가느라 아빠는 바쁘다."
 
‘하나의 시간은 균질한 시간이 아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시간들에 하나의 수식어를 붙인다면, 슬품이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이 더 맞다. 집 밖을 나갈 수도, 집 안에만 있을 수도 없는 시간, 아이의 물건을 태울 수도 그대로 둘 수도 없는 시간, 밥을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없는 시간.... 위로하며 같이 울고 싶지만 섣부른 위로가 가슴을 후벼팔까 봐 다가서기 어려운 시간, 진실을 밝히려고 앞장서는 가족들에게 경의를 표하다가도 뒤돌아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경의조차 잔인하다 여겨지는 시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시간으로 바꾸며 사람의 시간을 여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어야 한다. 8 개월 여의 시간을 정리한 연대기가, 슬플 수 만은 없는 연대의 기록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책에는 유가족의 육성 기록 13편이 실려있습니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의 작가기록단, 인권활동가와 작가, 대학원생 등이 모인 작가기록단에서 기록했습니다. 글로써 참사의 증거를 남기고 흩어지는 고통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한편 한편 읽기 쉽지 않으나 한번 읽기 시작하면 읽지 않을 수 없는 글들입니다. 
 
세월호가 다시 육지로 돌아온 3월 31일도 금요일이었습니다. 목포엔 봄꽃이 피었습니다. 그날 이후 세 번째 봄입니다. 희생자와 미수습자, 생존자와 가족들에게도 봄이 온 걸까요. 진정한 '봄'을 기다리는 목소리가 담긴 생존 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가 [다시 봄이 올 거예요]입니다.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다시 봄이 올 거예요'[다시 봄이 올 거예요]

"갈수록 실감 같은 걸 더 못 느끼는 거 같아요. 졸업식이라든지 그런 것도 실감이 안 나고, 여름 되고 다 초록색이 됐는데 그걸 몇 십 년 만에 보는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고. 그래도 주위 사람들한테 더 잘해주려고 하고. 언제 이런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해주려고 해요.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고맙다거나 감사하다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그날 이후, 두 번째 봄이 찾아왔다. 누군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있을지 모를 시간, 친구들과 재잘대고 있을지 모를 시간, 겨우내 세워둔 자전거에 몸을 실어 강변 산책을 나갔을지 모를 시간, 봄이 깊어지는 흔적조차 아플지도 모를 시간, 문득 소용돌이치는 울분을 꺼이꺼이 토해내고 있을지도 모를 2016년 봄날의 시간... 세월호에만 빠져 있을 수도 세월호를 등질 수도 없는 시간들 속에서 이들은 주저앉기도 하고 기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지점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면서도 결코 하나로 수렴될 수 없는 각각의 세계와 빛깔을 품고 있었다."
 
"우리도 어른이 될 거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저는 그 사실 자체가 너무 두려워요. 자기가 한 일도 책임 못 지면서 자기들만 생각하고 반성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 그런 어른이 될까 봐... 그런 어른들을 싫어하면서 그런 사람이 될까 봐..."
 
"사람들은 그건 다 모르고 절망 속에 핀 꽃으로만 봐요. 힘든 상황에서도 예쁘게 피었네. 하지만 절망 속에 피어봤자 절망이에요. 뿌리내린 곳이 절망이라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 절망을 좀 줄이자고요. 그냥 꽃밭에서 꽃 피우게 하자고요....나는 주저앉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발버둥 치고, 발버둥 칠 거예요."

 
희생자 가족과 생존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규명하고 책임을 묻는 겁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또 기록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진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세월호가 3년 만에 물 밖으로 나온 건 그런 노력들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 역시 그런 노력의 산물 중 하나입니다. 

1부 ‘그날 101분의 기록’, 2부 ‘왜 못 구했나’ 3부 ‘왜 침몰했나’ 4부 ‘대한민국에서 제일 위험한 배 어떻게 태어났나’ 5부 ‘구할 수 있었다’로 구성됐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든 유병언이든 누구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사고가 아니기에, '참사'가 되었다는 것을 특히 이 4부에서 여실히 보여줍니다. 담담하게 기록을 읽으며 따라가다 “구할 수 있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면 책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진실의 힘, 기록의 힘…'세월호 그날의 기록'[세월호 그날의 기록]

"'과연 승객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476명이 탄 여객선이 갑자기 침몰하는 상황에서 해경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모든 의문은 결국 이 질문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제가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이것을 다 챙깁니까?' 목포해양경찰서장의 항변은 현장의 해경들은 물론 해경 지휘부의 생각을 대변합니다. 기록팀은 객관적인 자세로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구할 수 있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도 그랬다. 청해진해운이 2013년 3월 인천~제주 항로에 세월호를 투입한 뒤 심상치 않은 징후가 반복해 나타났다. 비록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아찔한 순간이 되풀이됐다. 선원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배"라고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누구도 '경고음'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시험운항을 제대로 했다면 세월호의 문제점을 조기에 발견했을 수도 있었다. 한국선급이 승인한 도면과 객실 출입문 위치가 서로 다를 만큼 엉터리로 세월호 증개축이 진행됐기 때문에 설계도를 들고 한 번 둘러보기만 해도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청해진해운은 증선 인가부터 증개축, 운항관리규정 승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절차마다 불법을 저질렀다. 취항 뒤에는 상습 과적과 불량 고박을 거듭했다. 여러 차례 안전사고도 겪었다. 2014년 4월 16일까지 위험 신호가 계속 울렸다. 국가기관의 관리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부실하게 하기도 했고 청해진해운의 불법행위에 가담하기도 했다."  
 
"기록팀은 한 사람을 생각하며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견뎌냈습니다. 10년 쯤 지난 후에 이 책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배 안으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자 학생들과 승객들이 손을 모아 난간 밖으로 애기를 밀어 올려 보낸 것입니다. 권 양은 그렇게 살아남았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적이었습니다. 10년 후 별이 된 아이들만큼 자란 권 양이 이 책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작은 손전등 하나로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배를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최선을 다했지만, 이 책만으로는 새로운 손전등을 하나 더 보태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희미한 불빛에 어렴풋이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수십 개, 수백 개의 손전등으로 배 전체를 환하게, 또렷하게 비출 수 있다면, 그때는 우리가 본 것을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나름의 답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세월호에 탑승한 304명이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아직 뚜렷한 원인도 모르고 더군다나 9명은 수습도 못 했습니다. 이를 밝히기 위해 세월호를 인양한 것이니까요. 세월호 참사가 과거형이 되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진상 규명이 끝날 때까지는 끝이 아닙니다.
 
또 하나의 답은,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이번 참사에서는 특히 제 역할을 못했다는 점입니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 내린 결론, “구할 수 있었는데" 구하지 못했던 게 핵심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배’라고 선원들 스스로 불렀듯 세월호는 허가를 내주는 것도, 운항을 하는 것도 안 될 정도로 위험한 배였습니다. 그런 배를 문제 없다 허가해주고 시험 운항을 해보고도 괜찮다며 통과시켜준 당국, 무리한 화물 과적에 배 균형을 잡아줄 평형수까지 빼내면서 계속 배를 돌렸던 청해진 해운과 선장, 선원들… 무엇보다도 안전보다는 편의와 비용을 중시해왔던 한국 사회의 관행들이 세월호 참사의 주범과 공범이었습니다.
 
만들어 놓은 법과 규정은 있으나 그대로 작동한 건 아무것도 없어 발생한 참사였기에 특별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한국 사회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인 ‘세월호 참사’를 이해하기 위해 이 책들을 읽어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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