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하기

[칼럼] 가짜 뉴스는 언론의 거울이다.

김영환 기자 younghk@sbs.co.kr

작성 2017.04.13 12:03 수정 2017.04.13 13:24 조회 재생수775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칼럼] 가짜 뉴스는 언론의 거울이다.
한국 언론은 지금 가짜 뉴스(Fake News)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전쟁에는 두 개의 전선이 있다. 하나는  가짜 뉴스의 정체를 밝혀내 무장해제하기 위한 검증 전선, 다른 하나는 가짜 뉴스의 공격으로부터 언론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 전선이다.

● 가짜 뉴스와의 전쟁  

가짜 뉴스에 대한 검증 전선에서의 최근 전투는 이른 바 '4월 폭격설'이다. 미국이 오는 4월 27일쯤 북한을 폭격할 거라는 블로그 글이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급속히 퍼져나가자, 언론들이 검증에 나서서 근거 없는 가짜 뉴스임을 밝혀냈다. 최근 안보상황에 대한 위기감과 별도로, 4월 폭격설로 인한 사회적 동요는 이로써 일단 가라앉는 분위기다.

이런 사실 검증은 언론에 요구되는 전통적인 기능의 하나지만,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가짜 뉴스까지 등장함에 따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선거 판세를 흔들어보려는 가짜 뉴스들이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큰 만큼, 언론의 검증 전선은 한동안 분주할 전망이다.
광화문 촛불집회또 하나의 전선은 언론의 자기 방어 전선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짜 뉴스가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때 부터였는데, 이후 국정농단과 탄핵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해 조작, 음모, 오보라고 공격하는 가짜 뉴스가 줄이어 등장하면서 언론과 가짜 뉴스 세력 간에 정면충돌 양상이 빚어졌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내림으로써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탄핵반대 세력의 언론에 대한 증오와 불신은 여전한 상황이다.

탄핵에 이어 곧바로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면서 언론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가짜 뉴스에 대한 경계경보가 더 강화된 모습이다. 예전에 선거판을 뒤흔들던 흑색선전과 북풍 같은 수법들이 가짜 뉴스의 정교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4월 폭격설에 대해서도 가짜 뉴스 기법을 활용한 새로운 북풍 책략이라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 각 선거 캠프마다 가짜 뉴스 신고센터를 만들었고, 경찰과 선관위도 엄정한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언론의 검증과 정부의 단속, 선거 캠프의 자체 대응 등 가짜 뉴스에 맞서는 연합전선이 형성된 셈이다.

● 가짜 뉴스도 진화한다

언론학계에서는 가짜 뉴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먼저 개념을 명확히 정의해 범위를 좁히자는 제안을 내놨다. 한국언론학회 등의 주최로 지난 2월에 열린 '가짜 뉴스 개념과 대응방안' 세미나에서는 가짜 뉴스를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보도의 형식으로 유포되는 거짓 정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는 '언론보도의 형식'을 가짜 뉴스의 필수 요소로 규정함으로써 일반적인 거짓 정보, 흑색선전, 유언비어, 지라시 등과 가짜 뉴스를 구별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보도의 형식' 자체가 최근 들어 급속히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SNS 환경에 맞춰 주류 언론도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 다양한 매체에 맞는 기사 형식을 수용하고 있다. 4월 폭격설을 퍼뜨린 가짜 뉴스도 블로그 글이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만큼 가짜 뉴스도 형식과 내용이 진화하면서 검증이 한층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 문제의 본질은 사회와 언론에 있다

하지만 가짜 뉴스의 제작 기술이 아무리 진화한다고 해도, 사회와 언론이 건강하다면 큰 위협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공기에 먼지가 있고 몸에 세균이 동거하듯이, 사회에 어느 정도의 거짓 정보와 가짜 뉴스가 존재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가짜 뉴스는 사회와 언론의 빈틈을 노린다. 시스템이 건강하게 작동한다면, 가짜 뉴스는 존립의 근거를 상실한다. 문제의 본질은 가짜 뉴스가 아니라, 가짜 뉴스에게 틈을 주는 사회와 언론의 상황인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린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와 언론이 취약한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되어 대선을 치르게 된 상황이다. 4월 폭격설은 근거가 없다 해도, 한반도의 안보 상황은 여전히 위태롭다. 사회적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는데 사회통합을 이끌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과도기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가짜 뉴스라는 바이러스가 활동하면 피해가 치명적일 수 있다.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반대 태극기 집회가짜 뉴스의 발호를 막아야 할 언론 역시 상태가 안 좋은 것은 마찬가지다. 부패한 언론, 편향된 언론, 권력과 결탁한 언론의 이미지가 고착화되어 있다. 청와대 혹은 광고주의 눈치를 보며 편향된 기사를 썼다면, 또는 몇 가지 사실을 자기 입맛에 맞게 조합해 진실을 왜곡해왔다면, 가짜 뉴스와 본질적으로 다를 게 무엇인가. ‘정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보도의 형식으로 유포되는 거짓 정보’라는 가짜 뉴스의 정의에서 기성 언론은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가? 언론에 대한 불신이 큰 사회일수록 가짜 뉴스 바이러스는 언론의 방어막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다.


● 언론의 자기 성찰이 필요

이렇게 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가짜 뉴스보다도 언론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가짜 뉴스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떠들썩한 가짜 뉴스 소동에 언론의 문제가 묻혀서는 안 될 것이다. 가짜 뉴스와의 전쟁을 계기로 언론의 자기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짜 뉴스는 언론을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