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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세월호는 왜 인양했나…함께 인양해야 할 것들

[취재파일] 세월호는 왜 인양했나…함께 인양해야 할 것들
● 3년 만에 돌아온 세월호

세월호가 돌아왔다. 2014년 그날 이후 1,091일 만이다. 3주기를 불과 엿새 남기고 인양이 완료됐다.

세월호 침몰 당시도 그랬으나 인양이 결정되기까지, 그로부터 실제로 인양이 성사되기까지 곡절이 많았다. 2014년 11월 미수습자 9명을 남겨둔 채 수색은 중단됐다. 이후 인양 결정까지도 지난했다. 미수습자 가족의 시위, 유가족의 3보 1배와 단체 삭발, 참사 1주기 대규모 집회까지 이어진 뒤에야 대통령은 인양을 지시했다. 인양업체 선정과 인양 시도, 실패, 인양방식 변경 등이 이어지면서 2016년 6월 쯤엔 가능할 것이라던 세월호 인양은 2017년 4월 11일에 완료됐다.

그 사이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당했다. 파면 결정이 난 이후 8일 만에 해양수산부는 인양 시도를 결정했다. 그러고도 한 번 취소했다가 3월 22일 인양에 본격 착수했고 스무 날이 지나 세월호는 뭍으로 안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인양에 성공하자 세월호에 대한 관심은 크게 줄었다. 온 나라의 시선은 5월 9일 대선으로 쏠려있다. 

● 왜 세월호를 인양했나

세월호를 왜 굳이 물 밖으로 꺼냈을까, 그것도 절단해서가 아니라 통째로.

세월호의 원래 무게는 6,800톤, 화물과 바닷물, 진흙 등이 더해져 1만 7000톤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게 큰 배를, 물살이 빠르고 거칠기로 이름난 맹골수도 해역에서 건져 육지로 가져올 필요가 있었을까. 115년 전 침몰한 타이타닉을 비롯해 많은 침몰 선박이 물에 가라앉아 있다. 이런 의문은 가질 수 있다. "미수습자 9명 찾겠다고 국민세금 1000억 원 들여서 침몰한 배를 인양하는 게 말이 되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대한 부분적인 답을 정리해보려 한다.

세월호 인양의 목적은 무엇인가. 법에 나와 있다. 2017년 3월 21일, 세월호 인양 시도 바로 전날부터 시행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을 보면 2조에서 '선체조사'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4·16 세월호 참사의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하여 실시하는 선체에 대한 각종 조사와 이와 관련한 과학적 추론"

5조에는 '위원회의 업무'가 정리돼 있다.

1. 인양되어 육상 거치된 세월호 선체조사 2. 세월호 선체 인양 과정에 대한 지도·점검 3. 미수습자 수습, 세월호 선체 내 유류품 및 유실물 수습과정에 대한 점검 4. 조사가 끝난 세월호 선체 처리(보존 검토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에 관한 의견표명 5. 위원회 운영에 관한 규칙의 제정·개정에 관한 사항 6. 그 밖에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 조사와 관련하여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항.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세월호 인양의 목적은 미수습자 수습과 유류품 수습,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 조사가 끝난 세월호 선체 보존 및 처리이다.
육상 거치 된 세월호
● 세월호는 왜 침몰했을까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인양하기 전까지는 온갖 추측과 음모론이 난무했다. 그럴만한 단서는 곳곳에 있었다. 2014년 당시에도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사고였기 때문에 그러했다.

잠수함 충돌을 비롯한 외부 충격설은 막상 선체가 드러나자 잦아드는 분위기다. 외부 충격으로 볼 만한 뚜렷한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대체로 침몰 과정은 이렇게 모아진다. 증개축으로 인한 선체 이상, 과적과 평형수 부족으로 인한 복원성 악화, 여기까지가 세월호의 출항 전 상태였고 출항 이후에는 맹골수도 해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급변침, 이후 급격한 침수, 그리고 전복.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갑자기 빠른 속도로 우회전하면서 좌현으로 기울어졌다. 기울어진 배가 빠르게 침수되면서 101분 만에 전복됐다. 세월호는 증개축으로 인해 무게 중심이 높아졌고 좌우 균형이 맞지 않았으며 화물 과적했고 그만큼 평형수는 빼면서 복원성이 크게 악화돼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태로 출항했다가 급하게 우회전했는데 복원성은 악화돼 있던 데다 과적과 부실 고박으로 인해 기울어진 배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여기에 어떤 이유에선지 침수는 빠르게 이뤄지면서 전복, 침몰했다. 검찰의 수사와 법원 판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로 과적과 부실 고박, 평형수 부족으로 인한 복원성 악화는 어느 정도 확인됐다. 그러나 급변침의 이유는 뭔지, 왜 급격히 침수가 이뤄졌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조사위의 활동은 정부의 유무형적인 방해 등 여러 제약 때문에 도중에 중단됐다. 
세월호 객실
● 급변침과 급격한 침수의 이유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진상규명 소위원회를 두고 참사 원인 규명과 구조구난 작업, 정부 대응의 적정성 등을 조사했다. 더 이상 위원회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면서 2016년 9월에 낸 중간점검보고서에 그간의 성과와 앞으로 세월호 인양 뒤 조사가 필요한 부분을 정리했다. 그중에 침몰 원인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만 보면 이렇다.

- 선미램프의 수밀 여부
세월호 최초침수지점으로 선미램프도 의심됨. 수밀과 관련해 1등 항해사 및 선장과 검사원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음. 선미램프 뿐 아니라 도선사 승하선 문, C데크에서 내부 화물 구역으로 들어가는 문도 최초 침수지점 가능성 있음.


- 세월호 침몰 시점과 기울기 관련
검경합동수사본부가 123정에서 촬영한 동영상 바탕으로 추정한 9시 34분부터 10시 17분까지 선체 기울기가 오류일 가능성이 조사됨. 세월호 생존자 및 희생자들의 휴대폰 사진과 동영상 이외에 8시 30분경으로 침몰시간 진술한 새로운 진술 확보.


급변침에 대해 검찰은 조타수의 조타 과실을 제시했으나 법원은 조타기나 프로펠러가 고장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해 3등 항해사와 조타수는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죄'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세월호를 건져올렸으니 기기 고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 선체 훼손은 불가피했나

조타기나 프로펠러 고장에 대해서는 앞으로 조사해봐야 한다. 러더 방향이 인양 과정에서 달라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급격한 침수에 대해서는 위에 언급한 특조위 보고서에서처럼 가로 11m, 세로 7.9m에 이르는 좌현 선미 램프(차량 출입구)가 의심된다. 이 램프를 통해 세월호 화물칸으로 차가 드나들었는데 1등 항해사는 검찰 조사에서 "빛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했다"고 진술했고 선장은 "균열된 부분이 있어서 (항해) 갔다와서 공장에 의뢰해야겠다"고 출항 전 회의에서 얘기했다고 말했다. 수밀이 제대로 안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진술이다. 

하지만 이 램프를 들어올리는 크레인이 고장 나 세월호를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램프가 열려버리면서 해수부는 램프를 잘라버리기로 결정했다. 세월호를 들어올린 상태에서 중단할 수도 없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에도 선미 램프를 통한 침수 가능성은 확인할 수 없게 돼 버렸다.

램프를 잘라낸 자리, 큰 구멍에는 굴착기와 경승용차 1대가 매달려 있었다. 이때는 이미 반잠수선에 선적된 상태였는데 해수부는 작업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며 이들을 떼어냈다. 이후에 옆으로 누운 세월호의 좌현, 바닥이 돼 버린 좌현도 철판이 찢겨져 운송장치인 모듈 트랜스포터 진입에 장애가 된다며 잘라버렸다. 

앞서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스태빌라이져와 배를 고정시키는 닻도 역시 인양 준비에 방해된다며 해수부는 절단했다. 잠수사 작업에 필요하다며 선체에 140여 개 구멍을 뚫었고 인양 중에는 세월호 무게를 줄여야 한다며 21개의 구멍을 새로 뚫었다. 정작 뚫었던 구멍으로는 물이나 진흙이 제대로 배출 안돼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중에서 굴착기와 차량 제거에 대해서는 선체조사위가 함부로 선체를 훼손하지 말라며 해수부에 경고하기도 했다.

인양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3월 28일엔 조타수의 편지가 공개됐다. 광주의 한 목사가 수감 중이던 이 조타수에게 받았던 편지에는 세월호 C데크 뒷부분이 철판이 아니라 천막으로 돼 있다는 고백이 담겨 있었다. 이 고백이 사실이라면 급격한 침수를 불렀던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앞으로 조사하면 밝혀질 수 있다.
세월호 조타수 편지
● 세월호를 지켜본 '눈'의 복원

세월호 안팎에는 64개의 CCTV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이미 3년 전 확인됐다. 침몰 이후 두 달이 지나 CCTV의 저장장치인 DVR을 건져 올렸고 디지털포렌식 전문업체가 한 달에 걸쳐 어느 정도 복원해냈다. 바닷물에 두 달이나 잠겨 있었지만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었는데 문제는 침몰 이전까지 영상만 저장돼 있었다는 점이다. 전원이 나가면서 CCTV 작동도 멈췄던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세월호 특조위는 배가 기운 뒤에도 CCTV가 작동했다는 목격자 진술을 확보했고 CCTV 표시 시간도 15분 정도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세월호의 쌍둥이 배라는 오하마나호에는 CCTV DVR이 두 개 있었기 때문에 세월호에도 또다른 DVR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눈'은 세월호에 실린 차량 블랙박스 영상이다. 세월호에는 승용차 124대, 화물차 61대가 실렸는데 이중 상당수에는 블랙박스가 장착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침몰 당시에도 어느 순간까지는 작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복원한다면 침몰 시간이나 상황 등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줄 수 있다.

특수 유류품일 탑승자의 휴대전화도 '눈' 중 하나이다. 탑승자의 휴대전화로 촬영된 영상을 통해 침몰 당시 내부 상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인양 과정에서 휴대전화 1대가 수습됐는데 앞으로 내부 수색 과정에서 더 나올 가능성이 있다.

물론 바닷물에 3년 가까이 잠겨 있었기 때문에 복원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런 전자기기 복원에 대한 준비가 안 돼 있어 이번에 수습된 휴대전화는 하루 넘게 방치되기도 했으나 유가족 협의회와 선체조사위에서 필요성을 인식하고 해수부에 요구하면서 현재는 전문업체가 참여해 보관과 복원에 참여하고 있다.


● 세월호와 함께 인양해야 할 것들

세월호는 그저 교통사고가 아니었다. 2014년이라고 해서 여객선 침몰 사고가 발생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재난은 항시라도 발생할 수 있다. 세월호 침몰이 참사가 된 건, 국가의 역할인 재난 구조에 국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과 규정이 정한 대로 작동한 건 아무것도 없었고 그 결과는 304명의 미귀환이었다. 세월호를 인양한 목적은, 일어나선 안되는 참사가 일어났는데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는 당위가 세월호를 끌어올렸다. "세월호 인양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것들이, 함께 인양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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