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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손학규의 대모험'은 어떻게 될까?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한 남자

● "대통령이 되고 싶었습니다!"

안철수가 국민의당 대선 후보로 최종 선출된 지난 4일, 대전 한밭체육관. 무대에 올라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고 외치는 한 남자가 있었다. 국민의당 경선에서 최종 득표율 18.1%로 고배를 마신,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였다.

주인공은 안철수였지만 손 전 대표의 축하연설 만큼은 가히 이날 경선의 백미라 할만 했다. 축하 멘트를 마친 손 전 대표가 목소리 톤을 낮추고 “그런데 여러분 좀 너무 하셨어요라고 운을 떼자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아, 손학규한테도 표를 좀 주시지. 20%도 안 된다는 게 이게 무슨 말입니까” 진심 반 농담 반 섞인 ‘셀프디스’에 박수 갈채가 터져 나왔다.

“저 손학규, 사실 국민의당 후보가 되고 싶었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고 싶었습니다. 제가 하면 제일 잘할 것 같았습니다”

담백하고 솔직했다. 마음이 와 닿는 연설이었다. 축하 연설이 끝나자 장내는 ‘손학규’를 외치는 함성으로 가득했다. 열하루 동안 이어진 국민의당 경선에서 손학규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얄궂게도 말이다.
이 짤이 생각난 건 왜였을까... (출처: 슬램덩크, 이노우에 다케히코 저)
그는 정말 대통령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칩거를 반복하던 손학규였다. 철새 소리를 들으며 당적을 바꾸고 당 대표까지 역임한 그였다. 숱하게 패배의 쓴 잔을 맛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던, 그래서 때로는 화려하게 부활하던 손학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쉽지 않았다. 정계 복귀를 선언한 지 나흘 만에 ‘태블릿 PC' 사건이 터졌다. 급박하게 굴러가는 탄핵 정국에서 손학규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2번 탈당’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민주당을 나와 국민의당에서 대선 후보 ‘삼수’에 나섰지만 끝내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 '학규의 대모험', 이대로 끝나나

몇 년 전 ‘학규의 대모험’이라는 한 트위터 계정이 화제가 된 적 있다. (@HQadventure, 말 그대로 학규+모험이다;;) 손 전 대표가 2010년 정계 복귀 직전 100일 간 전국을 돌며 민심 대장정을 할 때  찍은 사진을 재미있는 설명과 함께 모아놓은 계정이었다.

얼굴이 시커멓게 된 채 탄광에서 광부들과 석탄을 캐는 사진이라던가,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과 자장면을 먹는 사진, 오만상을 찌푸린 채 속옷 바람으로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사진 등은 그냥 설정이라 하기에는 꽤 진정성과 노력이 묻어나오는 것들이었다. (특히 센스있는 설명이 백미였다) 적어도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정치인 손학규’를 확실하게 그것도 호감으로 인식시킨 계기였다. 당시 ‘정알못’(정치 알지도 못하는)이던 기자도 사진을 검색해 찾아보며 낄낄댔던 기억이 있다.
손학규 트위터
이런 식이다. (사진=손학규 트위터)
‘저녁이 있는 삶’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시대를 관통하는 문장이었다. 2011년 민주당 경선에서 손 전 대표가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이 문장은 지금도 한국 정치사 최고의 메타포로 회자된다. ‘저녁 없는 삶’에 지친 시민들의 공감대를 저격하면서 이제는 일반인들도 흔히 쓰는 관용어가 됐다. 모두 손학규의 작품이다.

당연히, 손학규는 모두가 주목하는 정치인이었다. 경기고-서울대를 나와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학계를 거쳐 정치에 입문했다. 대통령, 총리 빼고 어지간한 자리는 다 거쳤다. 대한민국에 손학규처럼 스펙과 스토리를 두루 갖춘 정치인도 흔치 않다. 두 번째 칩거에 들어간 뒤에도 ‘손학규의 복귀’는 상당히 큰 관심사였다. 손학규가 언제쯤 복귀할지, 다들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다 삐끗한 게 지난해 4.13 총선이었다. 당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러브콜을 보냈지만 손학규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른바 ‘손학규 보이’들이 대거 선거에 나섰지만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면에 나서 돕지 않았다. 예상을 깨고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자 “실기(失機)했다”는 말이 나왔다.

총선 이후에도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언제쯤, 언제쯤’ 했지만 손학규는 나서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쯤?’ 할 때쯤 새롭게 등장한 젊은 대선 주자들에게 여론의 관심이 쏠렸다. 자력으로 금배지를 단 ‘손학규 보이’들은 이찬열 의원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번 경선에서 대부분 다른 캠프에 들어갔다. 모두 손학규의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었던 이들이다.

탄핵 국면에 접어들자 손 전 대표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급기야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한 여론조사에선 1% 미만 지지율로 명단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국민주권개혁회의를 창립했지만 결국 국민의당에 합류해야 했다. 사실상 백기투항이었다. 손학규의 대모험은 그렇게 끝난 것처럼 보였다.
손학규
● 머피의 법칙? 손학규의 법칙!

세간에선 ‘손학규의 법칙’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손학규가 무언가 할 때마다 큰 일이 터져 묻힌다는 거였다. 정계 복귀를 선언한 지난해 10월 20일 당일에는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하려다 실패했고, 송민순 회고록 파문까지 불거졌다. 나흘 뒤에는 ‘태블릿 PC’가 터졌다.

국민주권개혁회의를 창립한 날에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국민의당에 입당하던 날에는 삼성 이재용 회장이 구속됐다. 앞서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한 날에는 한미 FTA가 타결됐고 2010년 민주당 대표로 첫 장외투쟁에 나선 날에는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했다. 이 정도면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정치적 감각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라는 얘기다. “너무 자기 앞만 생각하다보니 시야가 좁아진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과거 ‘손학규맨’으로 분류됐던 한 초선 의원은 사석에서 손학규 전 대표를 “총알이 하나밖에 없는 총잡이”로 비유했다. 나이도 많고 (만70세) 남은 수가 많지 않다 보니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기자에겐 그 지나친 신중함이 자기 발목을 잡는다는 말처럼 들렸다.

분명한 것은 손 전 대표가 국면을 주도하기보다는 끌려갔다는 점이다. 화려한 경력과 높은 인지도를 활용하지 못하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주요 국면에 내놓은 ‘대선 전 개헌’ 같은 주장은 선도가 떨어졌고 공감을 사지 못했다.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기회를 노리는 것처럼 보였고 소신보다는 계산에 방점이 찍힌 듯 했다. 그가 말하는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저녁이 있는 삶’ 같은 슬로건은 다시 없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손학규의 법칙’은, 과연 우연이었을까.
손학규 (사진=연합뉴스)
● 손학규의 '더 큰 꿈'

다시 국민의당 후보 선출대회로 돌아가서. 손 전 대표는 후보자 합동연설에서 “더 큰 꿈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더 큰 꿈’은 “7공화국을 열어 국민주권 시대를 열어갈 꿈, 국민 모두 함께 잘 사는 꿈, 그래서 국민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선사할 꿈, 한반도 평화 통일 이룩할 꿈”이라고 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치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다. ‘손학규의 대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선언이었다.

작년 4.13 총선을 몇 달 앞둔 2015년 말, 손학규 전 대표는 측근에게 ‘꿀벌의 생리’를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꿀벌이 이동할 때는 거미처럼 서서히 거미줄을 치는 게 아니라 마치 때를 기다렸듯이 순간 이동을 하는 걸 보며 자연의 섭리를 깨달았다"는 전언이었다. 전남 강진을 찾아간 SBS 기자에게도 돌연 꿀벌 얘기를 자주 하던 손 전 대표였다. (▶ 손학규 "꿀벌은 한순간에 이동한다"…복귀 시사? / 2015.11.09 8뉴스)

꿀벌이 손학규 자신이라면, 그가 생각한 ‘꽃’과 ‘꿀’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방향성을 가진 것들이었을까. 그리고 정치인 손학규의 대모험은 이제 어떻게 될까. 손학규의 ‘꿀’이 무엇이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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