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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략 난감' 민주당, 수사 의뢰 '안 하나, 못 하나'

[취재파일] '대략 난감' 민주당, 수사 의뢰 '안 하나, 못 하나'
집안 잔치를 앞둔 더불어민주당이 복병을 만났습니다. ‘경선이 본선’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한껏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예상치 못했던 사전 현장 투표 결과 유출 논란으로 어수선해졌습니다. 특히 문재인, 안희정 두 후보의 '네거티브 책임공방'으로 위태위태한 때 불거진 악재였던 터라 당 선거관리위원회도 여간 당혹스러워하는 게 아닙니다.

진보정당이 갖는 특성상 민주당의 경선 방식은 늘 역동적이었습니다. 그만큼 흥행도 했지만 잡음도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이번에도 완전국민경선으로 214만 명이라는 기록적인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전체 선거인단의 13%밖에 안 되는 현장 투표, 즉 투표소 투표 과정이 삐끗하면서 본 행사인 순회 투표는 시작도 하기 전에 찬물을 뒤집어쓰게 됐습니다.
다음달 14일 첫 TV 토론하는 더불어민주당
● '호남 대전' 앞두고 터진 악재에 '당혹'

지난 22일 투표소 투표가 끝난 지 얼마 안돼 수도권과 부산 일부 지역의 결과로 추정되는 집계표가 SNS를 통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현장 투표 결과는 봉인한 뒤 각 권역별 순회 투표 때 해당 지역 결과를 전화 ARS 투표, 대의원 현장 투표와 합산해 발표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떠도는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혼선은 가중됐습니다.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집계표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전체 득표의 절반을 훌쩍 넘긴 게 단연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특히 다른 후보 진영의 항의가 거셌습니다. 설사 사실이라고 해도 일부에 불과한 집계결과에 각 후보 진영이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상 경선의 승패를 가늠할 호남권 순회 투표가 바로 코앞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유출된 걸로 보이는 집계표상의 표수는 전체 선거인단 규모를 감안할 때 극히 미미합니다. 문제는 이 일부의, 그나마 사실인지도 불분명한 이 집계표가 마치 전체 표심을 대표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칫 순회 투표에 참여할 사람들에게 일종의 바로미터로 작용하게 되면 전체 표심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는 겁니다.

가뜩이나 문재인 후보의 대세론이 우세한 상황에서 이 집계표가 공개되자 안희정, 이재명 후보 측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문 후보 측이 고의로 흘린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됐습니다. 물론 문 후보 측에선 ‘우리가 왜 굳이 그런 일을 하겠느냐’는 반박이 나왔습니다. 사실 누가 악의적으로 조작한 게 아니라면 유출 경위를 추정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전국 250개 투표소에 각 캠프에서 참관인들이 들어왔고 그들이 각자 지켜본 개표결과를 캠프에 보고한 걸 취합하는 과정에서 유출됐다…얼마든지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 칼 빼든 당 선관위…이러지도 저러지도

당 선관위는 즉각 다음 날 긴급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각 캠프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민하게 대처했습니다.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 한 듯 먼저 고개부터 숙였습니다. 양승조 부위원장은 “먼저 물의를 빚게 돼 홍재형 위원장 비롯한 선대위원들은 경선 후보자와 선거인단,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를 드린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또 “확실한 것은 어제 (22일) 인터넷에 떠돈 내용은 중앙 선관위나 중앙 당 선관위에서 확인할 수 없는 내용임을 분명히 말씀 드린다.”며 “(유포된) 개표 결과는 전혀 신뢰할 수 없는, 근거 없는 자료로 인식해주셨으면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후 조치도 단호한 어조로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좀 묘했습니다. 양 부위원장은 "중앙당 선관위는 진상조사위를 구성해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면서 "진상조사에 즉각 착수해 진상조사 결과, 선거 방해 등 범죄혐의가 드러나면 가차없이 형사 사법조치, 즉 형사 고발할 수 있다는 점도 말씀 드린다"고 밝혔습니다. 어느 부분인지 찾으셨습니까?

진상조사 결과 선거 방해 등 범죄혐의가 드러나면 가차없이 ‘형사고발 하겠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고 말한 겁니다. 범죄혐의가 드러났는데 ‘가차없이’ 형사고발 “하겠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합니다. 물론 괜한 말꼬리 잡기처럼 들리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 입장에서 형사고발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일부러 그런 표현을 썼다 해도 크게 이상할 게 없습니다.

● '가차없이 사법조치' 말은 쉽지만…

사실 이번 사태를 가장 깨끗하게 처리하는 방법은 즉각 사법당국에 수사를 의뢰하는 겁니다. 하지만 당 선관위는 자체 진상조사를 선택했습니다. 자체 진상조사를 벌인 뒤 ‘범죄혐의가 드러나면’ 그때 형사고발을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액면 그대로라면 형사고발까지 3단계의 의사결정을 거쳐야 합니다.

유출 경로를 찾는 가장 빠른 방법은 SNS 서버 압수수색입니다. 자체 진상조사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참관인을 통해 유출됐을 가능성이 큰데 이 역시 수사권이 없는 당 선관위가 정확한 경로를 역추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관련 회사들은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SNS 대화 내용의 보관 기간을 대체로 짧게 잡고 있습니다. 자체 진상조사 기간 동안 증거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체 진상조사를 택했다는 건 이런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물론 당이 진상조사 의지가 없는 건 아닙니다. 성과도 있습니다. 당 선관위는 불과 하루 만에 자체 조사를 통해 지역위원장 대화방에 각 후보의 득표수 집계 결과를 올린 지역위원장 6명을 확인해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발 빠른 조치입니다. 하지만 진상 규명, 범죄 혐의까지 밝히는 데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수사 의뢰는 빠르고 명확한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수사당국으로 공이 넘어가면 상황 통제가 불가능해집니다. 반면 당의 자체 조사는 여러 모로 수위 조절이 가능합니다. 솔직히 야당이었던 민주당 입장에서 현재의 사법기관을 전적으로 믿기 어렵다는 점도 있습니다. 또 유출자가 밝혀지고 그 사람이 어느 쪽이든 당의 후보 캠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거센 후폭풍이 불가피합니다. 자칫 경선판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경선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당 선관위로서는 이런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우려 때문일까요? 각 캠프들도 이번 문제를 비판하면서도 경선을 보이콧할 정도는 아니라는 반응입니다. 사실 이번 유출 논란 파동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견해입니다. 각 캠프가 눈에 불을 켜고 개표 결과를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참관인이 1,000명 가량이나 들어갔으니 유출을 막기가 쉬웠겠느냐는 겁니다.

"할 수 있다."…당 선관위가 의도적으로 그런 표현을 쓴 건지, 우연히 그런 표현이 나온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당 선관위가 이래저래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안희정 후보 캠프에서 당 선관위에 수사의뢰를 요청했다니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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