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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문재인 "나도 친미(親美)"…뒷맛이 쓴 이유

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작성 2017.03.14 10:29 수정 2017.03.14 11:03 조회 재생수3,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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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근무를 하고 있는데 난데 없이 뉴욕타임스 기사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국제부도 아닌 정치부에서 말이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인터뷰 기사가 문제였습니다.
문재인 뉴욕타임즈 기사
Mr. Moon has called himself “America’s friend,” grateful that the United States protected South Korea from communism and supported its economic growth and democratization. The alliance with Washington is “a pillar of our diplomacy,” he said in an interview on the eve of Ms. Park’s court-ordered ouster.

But he also said South Korea should learn to “say ‘No’ to the Americans.”


요약하자면 “문재인 전 대표는 자신을 ‘미국의 친구’라고 부르면서 한미동맹은 한국 외교의 근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 전 대표는 또한 한국은 미국에 ‘노(No)’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 의역의 오류?

이와 함께 기사에서 문 전 대표가 사드 배치와 관련해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며 "기정사실로 만들어 선거에서 정치적 이슈로 만들려는 것 같다"고 말한 부분, 또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해 "북한의 무자비한 독재체제를 싫어한다"면서도 "우리는 북한 주민을 우리 민족의 일부로 포용해야 하며, 싫든 좋든 김정은을 그들의 지도자로 그리고 우리의 대화 상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 부분도 논란을 키우는 근거가 됐습니다.

한마디로 사드와 북한 등 안보 현안이 ‘미국에 노(No)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대목과 결합하면서 문재인 전 대표의 안보관에 대한 논란으로 번진 겁니다. 보수정당들은 일제히 발끈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대권 욕에 사로잡혀 親 중국·親 김정은·촛불세력에만 의지한 채, 최소한의 자위조치를 위한 방어무기 배치조차 뒤로 미루려 한다.”고 비판했고 바른정당도 "지금은 북한과 중국에 노(No)라고 해야 할 때"라고 가세했습니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각, 문재인 캠프로부터 참고해달라며 문자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한 한글 전문이었습니다. 문제가 된 걸로 추정되는 대목은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나라죠.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의 근간이자 우리 안보의 토대이기도 하고요….(중략) 그러나 그 관계가 지나치게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뉴욕타임스에서 썼던 “‘노(No)’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대목은 없었습니다. 캠프 측에서는 한국어로 진행된 인터뷰를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뉴욕타임스가 미국인들이 알기 쉽게 의역을 하다 발생한 일로 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한 국내 언론에 ‘노(No)’라는 부분은 문 전 대표의 대담집에서 인용한 것으로 해당 기사는 인터뷰뿐 아니라 문 전 대표의 생각과 프로필을 모두 소개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인터뷰 기사가 실제 발언과 다르다는 논란이 일었고 정정보도를 요청하겠느냐는 질문이 나왔지만 문재인 전 대표의 대답은 ‘노(No)’였습니다. 자신이 기자 인터뷰에서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대한민국이 묻는다’ 라는 책에서 그렇게 쓴 적이 있으니 문제 될 거 없지 않겠냐는 설명이었습니다.
간담회 하는 문재인 전 대표● 문재인, "나도 친미(親美)"

문 전 대표는 "말하자면 저도 '친미'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미국에게 '예스'(Yes)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도 국익상 필요하면 '노(No)'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 드린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보수진영의 안보관 공격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온 말이긴 하지만 이 발언의 이면에서 ‘한국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친미(親美)’임을 고백해야 하는가.’라는 의문과 마주치게 됩니다.

문재인 전 대표뿐 아니라 한국의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인정합니다. 일제로부터의 독립과 6.25전쟁,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우리나라의 발전에서 한미 관계가 차지하는 특수성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할 말까지 못한다면 이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미국이 우리에게 혈맹인 건 분명하지만 미국이나 한국, 아니 그 어떤 나라도 자국 이익이 최우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미동맹 이전의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실제로 지난 1905년, 미국은 필리핀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한반도에서의 일본의 지배적 지위를 인정하는 ‘카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은 바 있습니다. 국가 간 외교에서 ‘공짜’란 없는 법입니다.

● '친미 vs 반미'? 외교는 '목표 아닌 수단'

어느 나라에나 안보는 최우선 과제입니다. 특히나 남북 분단의 대치 상황을 겪고 있는 우리 나라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지도자의 안보관을 따지고 또 그 대책을 묻는 것은 선거 과정에서 당연한 것을 넘어 필수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논의가 우리 안보라는 본질과 무관하게 ‘친미’ 대 ‘반미’ 대립 구도로 흐른다면 그 자체가 오히려 우리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구한말 ‘친중파’, ‘친일파’, ‘친러파’ 모두 구국을 외치며 활개쳤지만 그 가운데 누구도 나라를 구하지 못했던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외교는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순 없습니다.

북핵 위협이 현실화된 시점인 만큼 안보 문제는 이번 대선에서도 쟁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대세론’의 문재인 전 대표 역시 거센 검증 공세를 피할 수 없을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검증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그 기준은 국익 그 자체가 돼야 합니다. 적어도 “(국익에 필요하다면) 미국에 ‘노(No)’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 자체가 표적이 되어선 발전적 검증이나 토론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나도 친미’라는 대답보다는 상대 진영까지 수긍하고 납득시킬 수 있는 방안과 정책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