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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복싱 팬들을 설레게 했던 역대 미들급 '세기의 대결'

'마블러스(marvelous)' 마빈 해글러의 명승부

최희진 기자 chnovel@sbs.co.kr

작성 2017.03.14 08:15 수정 2017.03.14 08:41 조회 재생수3,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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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최고의 복서로 꼽히는 카자흐스탄의 게나디 골로프킨이 오는 19일 미국의 다니엘 제이콥스와 격돌합니다. 골로프킨은 WBA, WBC, IBF 미들급 통합 챔피언으로 36전 36승 33KO의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91.7%의 경이적인 KO율을 자랑하며 ‘미들급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골로프킨이 이번에 제대로 된 호적수를 만났습니다. 상대는 골육종을 이겨낸 '기적의 사나이' 다니엘 제이콥스로 33전 32승 1패 29KO의 강력한 주먹을 자랑하는 선수입니다. 두 선수 모두 공격형 인파이터여서 불꽃 튀는 주먹 대결이 예상됩니다. 세계 복싱계에서는 이 대결을 ‘세기의 대결’로 부르며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계의 대결’로 잔뜩 기대를 모았다가 ‘세기의 졸전’이라는 비아냥을 받았던 2015년 5월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 매니 파퀴아오의 대결과는 사뭇 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들급 역사상 최고의 복서로 꼽히는 마빈 해글러골로프킨의 체급인 미들급에서는 과거 ‘세기의 대결’로 불렸던 경기가 두 차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미들급 역대 최고의 복서로 꼽히고 있는 미국의 마빈 해글러가 그 주인공입니다. 복싱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 이야기입니다. 마빈 해글러는 이름 앞에 '경이로운'이라는 뜻의 '마블러스(marvelous)'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복서로 지금까지도 올드 복싱 팬들의 추억에 남아 있습니다.

1980년 9월 27일 영국 런던 웸블리 경기장에서 열린 원정 경기에서 ‘영국의 복싱 영웅’ 알란 민터를 3라운드에 KO로 누르고 미들급 세계 챔피언에 등극한 해글러는 1987년 4월 6일 ‘천재복서’ 슈거 레이 레너드와 13차 방어전에서 판정패해 챔피언 벨트를 내줄 때까지 7년 동안 '미들급의 제왕'으로 군림했습니다. 레너드와 경기 전까지 12번의 방어전에서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모두 KO승을 거두는 무시무시한 펀치력을 선보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박종팔 선수를 2차례 꺾었던 베네수엘라의 풀헨시오 오벨메히아스, 26전 26승 26KO의 무쇠주먹을 자랑하던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온 '야수' 존 무가비도 해글러의 주먹에 힘없이 KO로 나가 떨어졌습니다. 당시 복싱 중량급 ‘빅4’ 가운데 토마스 헌즈와 로베르토 두란도 해글러에게 쓰라린 패배를 맛봤습니다. 두란은 1983년 11월 10일 해글러를 상대로 15라운드까지 버티며 선전했지만 심판 전원일치 판정패했습니다. 챔피언 해글러가 12차례 타이틀을 방어하며 판정까지 간 유일한 경기였습니다. 반면 토마스 헌즈는 해글러에게 3라운드 만에 무참하게 KO패했습니다.
당시 해글러 vs 헌즈 광고 포스터3라운드만에 헌즈를 KO시킨 해글러● 1985년 해글러 vs 헌즈 <창과 창의 대결>

1985년 4월 15일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바로 이 해글러와 헌즈의 대결이 첫 번째 미들급 세기의 대결로 꼽힙니다. 헌즈는 해글러와 대결이 있기 1년 전 두란을 2라운드 만에 실신 KO시키며 한껏 기세가 오른 상태였습니다. 당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신장과 리치, 그리고 연타 능력에서 앞선 헌즈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박빙의 승부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경기 양상은 예상 밖으로 흘렀습니다.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처럼 한 방에 상대를 제압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집요한 공격으로 상대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슬로우 스타터’인 해글러는 예상을 뒤엎고 1라운드부터 거세게 헌즈를 몰아붙였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왼손잡이(사우스포)지만 상황에 따라 오른손 자세를 취하는 '스위치 복서'로도 유명한 해글러는 이 경기에서도 자유자재로 스탠스를 바꿔가며 헌즈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당황한 헌즈도 인파이팅으로 맞불을 놓았는데 이것이 결국 패착이 됐습니다. 헌즈의 강타를 잇따라 안면에 허용한 해글러는 눈가가 찢어져 1라운드부터 얼굴에 선혈이 낭자했습니다.

하지만 승자는 맷집에서 앞선 해글러였습니다. 해글러는 맞으면서도 마치 들소처럼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결국 3라운드에 헌즈를 캔버스 위에 때려 눕혔습니다. 강력한 오른손 훅을 적중시킨데 이어 충격으로 뒷걸음칠치는 헌즈의 안면에 다시 한번 오른손 훅을 적중시켜 쓰러뜨렸습니다. 그것으로 승부는 끝이었습니다. 해글러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헌즈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기전을 예상했겠지만 초전박살 작전으로 허를 찌른 것이 적중했다고 말했습니다. 상대를 질리게 만드는 해글러의 스태미너와 저돌성, 그리고 강력한 맷집이 빛난 경기였습니다. 해글러는 헌즈와 이 경기를 자신의 복싱 인생 최고의 경기로 꼽았고, 권위 있는 복싱 전문지 ‘링’지도 이 경기를 ‘올해의 경기’에 선정했습니다.
당시 해글러 vs 레너드 광고 포스터가드를 내리고 해글러를 조롱하는 레너드● 1987년 해글러 vs 레너드 <창과 방패의 대결>

이 경기는 1987년 4월 6일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호텔에서 열렸습니다. 레너드는 체급을 올려 WBC 미들급 챔피언인 해글러에 도전했습니다. 레너드에게는 눈 부상 이후 3년 만의 링 복귀전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전문가들은 3년 동안이나 링을 떠나 있었던 레너드가 해글러의 강펀치를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라며 대다수가 해글러의 우세를 점쳤습니다. 하지만 레너드는 ‘천재복서’라는 별명에 걸맞게 너무나도 영리했습니다.

2년 전 헌즈가 무모하게 인파이팅으로 정면 대결을 펼치다 해글러에게 무참하게 KO로 지는 장면을 똑똑히 본 레너드는 이를 철저하게 '반면교사'로 삼았습니다. 해글러에 비해 주먹은 약했지만 훨씬 빠르고 기교가 뛰어났던 레너드는 철저한 아웃복싱, 즉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기가 막히게 주효했습니다. 해글러는 경기 내내 레너드의 빠른 발을 잡지 못하고 연신 헛손질을 했습니다. 5라운드에 강력한 어퍼컷을 적중시키며 잠시 레너드를 코너에 몰아넣었고, 9라운드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9라운드에서는 레너드를 코너에 가둬놓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레너드의 속사포 같은 연타에 반격을 허용해 오히려 점수를 잃었습니다. 판정까지 갈 경우 포인트에서 앞선다고 확신한 레너드는 11라운드부터 노골적으로 도망다녔고, 가드를 내리고 얼굴을 내밀면서 해글러를 마음껏 조롱하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서로 이렇다할 타격을 주지 못하고 12라운드 경기가 끝났습니다. 결과는 레너드의 2대 1 판정승. 해글러의 7년 천하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해글러는 레너드가 비겁하게 도망다니기만 했다면서 자신이 승자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판정 결과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레너드가 유효타 면에서 앞선 것은 분명했습니다.

이 경기 역시 ‘링’지가 선정한 ‘올해의 경기’이자 ‘올해의 이변’에 선정됐습니다. 해글러는 이 경기를 끝으로 미련없이 링을 떠나, 그의 화끈했던 복싱을 사랑했던 팬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반면 이날 승리로 ‘빅 4’ 가운데 최종 승자가 된 레너드는 이후 슈퍼 미들급과 라이트 헤비급까지 정복하며 당시로는 사상 최초로 5체급을 석권하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레너드는 '빅 4' 가운데 두란과 3차례, 헌즈와는 두 차례 맞붙었지만 유일하게 해글러와는 단 한 차례 대결로 끝났습니다.

사실 해글러가 선수 인생에서 가장 이기고 싶어 했던 선수는 다름아닌 레너드였습니다. 두란과 헌즈에 이어 레너드까지 꺾고 '빅 4' 가운데 최후의 승자로 영원히 남고 싶었던데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1979년 11월 30일 해글러가 이탈리아의 비토 안투오페르모를 상대로 처음으로 미들급 세계 타이틀에 도전했을 때 정작 메인 경기는 레너드와 윌프레도 베니테즈의 웰터급 세계 타이틀전이었습니다. 당시 웰터급에는 레너드, 헌즈, 두란, 베니테즈, 피피노 쿠에바스 등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즐비했고 라이벌 구도가 형성돼 미들급보다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픈 매치'로 밀리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해글러는 레너드와의 대결을 별렀습니다. 그리고 1987년 마침내 레너드를 꺾을 기회를 잡고 복싱 인생의 멋진 피날레를 꿈꿨지만 아쉽게 꿈을 이루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복싱의 인기가 그 시대만은 못하지만 골로프킨과 제이콥스가 오는 19일 세기의 대결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또하나의 명승부를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무엇보다 2년 전 메이웨더와 파퀴아오 경기에 실망했던 많은 복싱 팬들의 마음을 돌려놓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