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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엘시티 수사…"판도라의 상자는 결국 열리지 않았다." (16)

연속 취재 '해운대 엘시티' 수사
검찰이 엘시티 비리 사건에 대해 수사를 착수한 사실만으로도 지역사회에 던진 충격파는 엄청났습니다.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았던 이 영복 회장과 엘시티 사업에 검찰 수사가 이뤄졌고 토착 비리의 환부를 일정 부분 도려 낸 것은 일정한 성과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검찰의 칼날은 날카롭지도 철저하지도 못했습니다.
 
● 검찰 수사 초점, 비자금 조성에서 인허가 비리로 전환…축소 수사의 신호탄
부산지검 전경
지난해 엘시티 수사 초기 동부지청은 이 영복 회장의 비자금 조성 규모와 성격 사용처 등에 대한 수사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 회장의 로비 대상이 단순히 지역 토호 세력뿐만 아니라 정 관계 정권 실세, 검찰, 국세청 등 권력 기관 고위 인사 등이 포함돼 있다는 세간의 의혹이 끊임없이 흘러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사팀이 동부지청에서 부산지검으로 이관된 뒤 수사 초점은 인허가 과정에서 불거졌던 비리나 특혜의혹을 규명하는 쪽으로 전환됐습니다.

● 이러한 수사 초점의 전환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엘시티 조감도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엘시티 사업은 1단계 ‘지역 토착형 인허가 비리’와 2단계 ‘권력 실세형 특혜 비리’로 성격 규정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수사가 이 회장의 비자금 조성과 사용처 등에 초점이 맞춰지면 1,2 단계를 막론하고 중앙과 지방의 로비 실체를 규명하는데 주력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엘시티 사업 인허가 비리에 초점을 맞추면 2단계 권력 실세형 비리 수사는 애당초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축소 수사의 태생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 단적인 예가 이 영복 회장의 비자금 규모에 대한 검찰의 축소 의혹입니다.
 
● 검찰의 축소 수사 의혹 1: "비자금 규모 705억" VS "실제론 훨씬 더 된다"
 
검찰은 이 회장이 엘시티 사업 원래 시행사인 청안건설을 비롯해 관련사 자금 705억 원을 편취 횡령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동부지청에서 파악한 575억 원보다 130억 원을 더 찾아냈다는 설명과 함께요. 하지만 동부지청 초기 수사팀은 이미 이 회장의 비자금 규모가 최소한 천억 원대 이상일 것이라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이영복 회장 거래 관계 장부
SBS가 단독 입수한 청안건설과 이 영복 회장의 거래 관계 장부입니다. 이 장부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2004년 부터 2016년 3월까지 청안건설로부터 장기 대여금 3백88억여 원을 빌린 걸로 나옵니다. 이 장기대여금은 사실상 돌려받을 수 없는 회사 자금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특히 엘시티 사업 이전에는 단기 대여금 밖에 없던 것이 엘시티 사업 민간 사업자로 지정된 뒤인 2008년 12월부터 갑자기 대여금이 폭증하기 시작해 9년 동안 마치 사금고인양 회사 자금을 마음대로 끌어다 썼습니다.
 
게다가 청안건설 대표이사 박 모 씨 명의로 단기 대여금 3백83억여 원을 사용했습니다. 박 씨는 검찰 조사에서 “이 돈은 이 회장이 사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즉 이 회장은 청안건설에서만 7백 70여억 원을 빼내 사용하고 갚지 않고 있습니다.
범죄 일람표
검찰 조사에서 밝혀졌듯이 이 회장은 이와 별도로 허위 건설사업관리 용역비 165억 원, 허위 설계 용역비 125억 원, 허위 분양대행 수수료 92억 원, 허위 급여 지급비 75억 원 등 457억 원이 넘는 돈을 횡령했습니다. 모두 합치면 1200억 원이 넘는 규몹니다.
 
이 회장은 또 청안건설의 관련회사 10여 곳으로부터도 회사 자금을 횡령했습니다. 취재팀의 의뢰로 청안건설과 관계사 회계자료를 분석한 김경률 회계사는 “이 회장이 청안건설과 10여 곳의 관련 회사로부터 빼돌린 공금 규모는 적어도 2천억 원 이상 된다”며 “어떻게 이러한 부실 투성이 회계 자료에도 불구하고 세무 조사를 피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이 회장의 공금 횡령과 배임 규모는 검찰에서 밝힌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부산지검은 4개월여 동안의 수사에서 동부지청에서 당초 추정했던 천억 원대 이상 규모보다도 훨씬 적은 금액을 밝혀내 축소 수사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 검찰의 축소 수사 의혹 2: "검찰 두려워 않는 이 회장, 로비 수첩 없었나?"
수사 결과 발표하는 검찰
검찰은 엘시티 비리 수사 과정에서 "이 회장의 진술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과학적 수사 기법을 동원했다" 고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이 회장과 관련 인물에 대한 계좌 추적과 상품권 추적, 골프장 출입 리스트 및 장부 분석 등 을 통해 최대한 객관적 자료 확보에 충실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계좌 추적이나 상품권 추적 등을 통한 성과는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계좌 추적을 통해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나 배덕광 자유 한국당 의원 등 일부 인사들의 비리 혐의를 밝혀내긴 했지만 엘시티 비리의 핵심 인물들에 대한 수사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수십억 원대 상품권의 사용처도 불과 1~2% 정도 밖에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 영복 회장은 로비 흔적을 남기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계좌 추적이 용이한 수표 등을 잘 이용하지 않고 항상 현금으로 직거래하기로 유명하다 보니 애당초 계좌 추적의 한계는 명백했습니다. 또 로비에 폭넓게 사용된 상품권 또한 사용처 규명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이 회장의 진술이나 로비 장부 또는 수첩의 확보가 결정적으로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수사 받는 내내 검찰을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진술 태도는 모르쇠로 일관했고 “로비를 한 적이 없다” “평소 잘 아는 사이에 술 접대한 것일 뿐”이라며 모든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검찰은 “이 회장이 객관적 사실을 들이 대면 마지못해 시인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밝혔습니다.
이영복 회장
그런데 이 회장이 검찰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요? 믿는 구석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검찰이 무능한 걸까요? 우리나라 검찰 특수부는 피의자가 제대로 진술을 하지 않으면 진술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몇 가지 압력 수단을 동원하는 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수단이 피의자의 여자관계를 들이대는 겁니다. 사회적 지위에 금이 가는 망신을 주겠다는 거죠.

둘째로 자식 관계입니다. 자식의 재산 형성과정이나 병역 관계 학력 관계 등 개인적 비리나 가족 비리를 들춰내 압력을 주는 행위입니다. 셋째는 회사를 둘러싼 경영 비리 등에 대한 압력입니다. 이러한 압력을 통해 웬만한 피의자들은 진술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네요. 고 노무현 대통령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박연차 회장도 진술을 거부하다 자식 문제로 손을 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지요.
 
이영복 회장은 어떠했을까요? 먼저 여자문제는 더 이상 압력수단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니까요.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 회장의 자식 문제나 회사를 둘러싼 경영 비리는 분명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일례로 취재진이 위에서 공개한 이 회장의 거래처 원장만 하더라도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경률 회계사는 “이 거래처 원장을 국세청에 가지고 가서 고발하면 제보 사례금이 수억 원이 나올 정도로 문제 있는 기업”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김 회계사는 “대한민국 어느 기업도 결산 자료에 장기대여금을 수백억 씩 기록해 놓은 기업이 없다”며 “한마디로 세무조사가 어떻게 나올까 걱정하는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이 회장은 세무조사도 겁내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배후 지원세력이 있었던 걸까요? 검찰은 이와 관련해 이 회장과 청안건설에 대해 수사상 어떤 활용을 했는지 의문입니다.
 
● 검찰 끝내 로비 수첩 실체에 대한 언급 안 해…의문 증폭
청안건설 압수수색
또 한 가지. 로비 수첩의 실체 문젭니다. 검찰은 로비 장부나 수첩은 없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사실 로비 장부의 실체는 엘시티 수사 초기 단계에서부터 끊임없이 흘러 나왔던 문젭니다. 이 회장이 잠적하기 전 로비를 한 검찰, 법조계 일부 인사들에 대한 메모를 남겨 놓고 갔다는 겁니다.
 
SBS 취재팀은 이 문제와 관련해 엘시티 사업과 관련이 있는 내외부자들을 취재해 왔습니다. 이 회장의 한 측근은 “로비 장부는 분명히 있다” “이 회장은 로비장부를 자신의 구명줄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로비 장부에는 아주 구체적인 로비 내역이 적혀 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수많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로비 장부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어쩌면 이 회장은 이 로비 장부를 검찰 수사에 대비해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을지 모릅니다. 일종의 거래라고 할까요? 또 취재팀이 검찰 수사팀 취재 과정에서 로비 장부는 아니지만 상품권 등을 선물한 명단이 적힌 수첩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 수첩에는 상품권 로비 대상자를 A, B, C, D 등급으로 나누고 그 등급에 따라 상품권 액수에 차등을 둬 줬다는 겁니다.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검찰은 상품권 로비 수첩의 실체를 밝혔어야 합니다. 그런데 검찰은 어떠한 로비 수첩이나 장부의 실체를 부인해 왔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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