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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장봉도를 걷다

이른 3월의 어느 아침, 창문을 넘어온 한 줌의 봄 햇살이 어딘가를 걸어도 좋을 것 같다고 유혹을 한다. 또 어쩌면 봄이 왔다고 속살대는 내 안의 누군가가 회유내지 겁박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하나?
 
스마트폰을 뒤적이다, 장봉도라는 이름을 발견한다. 어딘가에서 듣고 적은 놓은 것이리라. 그래, 장봉도로 가자!
 
장봉도는 영종도의 삼목 선착장에서 카페리로 30분 거리에 있는 섬이다. 3,000원의 뱃삯을 치르고 배에 올랐다. 꽃샘추위가 시샘하는 평일 낮의 한계였을까? 배에는 10여 명의 승객만이 오도카니 있었다.
삼목 선착장에서 배는 장봉도로 떠난다
그런데 뱃전에 오르자마자, 나에게 떠나라고 유혹했던 봄 햇살이 사실은 기망이었음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도둑고양이처럼 창을 넘어선 여린 봄 햇살의 월창(越窓)이 추위와의 전쟁이라는 참화의 서막이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하였다.
 
배에 오르고 나서는 새우깡에 꼬여든 갈매기들의 소란에 정신을 팔린 터라 다만 꽃샘추위이겠거니 했다. 그렇게 추위보다는 새우깡을 들고 희롱하는 사람들의 그 치사한(?) 손짓을 향해 날아드는 갈매기를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 줌의 새우깡을 보고 연대 병력의 갈매기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양은 신기하면서도, 안타까웠던 것이다.
갈매기들의 날개짓이 분주하다
배가 기적도 없이 뱃머리를 돌리고 나서도, 갈매기들은 새우깡에의 미련인지, 아니면 사람들과 어우러져 노는 맛에 길들여진 것인지, 여하튼 다음 섬(신도)에 다 가도록 배와 동행하고 있었다. 갈매기가 지쳐 서서히 멀어질 즈음, 저 멀리 또 하나의 섬이 보인다. 장봉도다.
배가 장봉 선착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장봉도에 입도했다는 처녀지 정복의 환희를 느낄 새도 없이 바닷바람의 강력한 스파이크가 내 뺨과 몸뚱이를 강타한다. 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바닷바람 무서운 줄 몰랐더니, 신고식이 예사롭지가 않다. 강풍 속에 바늘이라도 숨겨져 있는 듯 따갑고, 또 아프다.
 
잠시, 이대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추위 속에서 산행이 가능할까? 올겨울 들어 최고의 추위와 맞선 느낌이라, 괜한 고집부리지 말자는 유혹에 잠시 흔들린 것이다.
파도 저 멀리 멀곶이 보인다.
산행은 나중에 생각하자 하고, 선착장에서 멀리 보였던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작은 섬이나마 보고 가자는 생각을 했다. 그 작은 섬의 이름은 ‘멀곶’이다. 멀곶이라는 이름은 바다 가운데에 있는지라 가까워도 먼 곳과 같다 해서 멀곶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멀곶이 관광의 목적으로 장봉도와 잔교로 연결되어 있으니 더 이상 멀곶은 ‘먼 곳’이 아니었다.
 
그 멀곶을 가기 위해 잔교에 올라서는 순간, 어라~ 몸이 바람에 흔들린다. 그리고 추위는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다. 얼굴이 따가울 지경이다. 바람을 막아 줄 벽 하나 없는 바다 한 가운데서 맞는 추위는 꽃을 시샘하기는커녕, 그냥 한겨울이었던 것이다.
 
고민이 깊어진다. 산으로 가야하나...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야 없지 않은가.
 
도망치듯 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장봉도 관광 안내도
바다에 비하면 산은 부드러웠고, 또 너그러웠다. 그렇다고 바람이 비껴갔다는 건 아니다. 그 바람이 산을 오르는 동안에는 조금은 순해졌다는 말이다.
 
장봉도의 산은 국사봉(151m)를 정점으로 크고 작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150여m의 산도 산이냐고 되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나름 아기자기하면서도 적잖은 체력과 끈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주요 코스는 장봉 선착장에서 시작해서 가막머리 전망대에 이르는 완주코스로, 길이는 13km 남짓. 오늘 걸어야 할 길이다.
 
등산로 초입의 오르막은 우려와 달리 오히려 가뿐하다. 아마도 그 길이 칼바람을 피하는 도피처였고, 아직도 뒤쫓아 오는 바람이 등을 떠미는 덕에 힘이 반나마 덜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 보면 그 곳이 곧 길이 된다.
얼마나 걸었을까. 산이 너무나 한적하다. 오가는 이가 하나 없는 그야말로 고즈넉하기 그지없다.
 
길 위의 양지바른 언덕에는 언제 칼바람이 불었던가 싶을 정도로 따사로운 햇살이며, 바다가 눈앞 가득인 탁 트인 조망이 그야말로 딴 세상이다. 숨어있던 기운과 의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장봉도의 산등성이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들이 모여 만들어진 길들이 굽이굽이 이어지고 있었다. 새삼 루쉰(魯迅)의 “본시 땅 위에 길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 보면 그곳이 곧 길이 된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냥 걷기만 하면 길은 저절로 열린다.
장봉도의 길은 섬을 가로지르는 등성이를 따라 이어져 있으므로 단순하다. 그냥 걷기만 하면 길은 저절로 열린다.
 
산등성이에 오르자, 정자가 낯선 이를 맞는다. 새삼 고요한 천지간에 좌우로 바다를 거느리고 나 홀로 걷고 있음을 깨닫는다. 흔치않은 경험이고, 작은 섬인 장봉도만의 특별한 풍경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홀로 걸으며, 내 몸과 길이 만나는 그 접점의 감각이 오롯이 살아나 몸속으로 퍼져나가는, 지금 이 순간의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어쩌면 걷는다는 것은 사색의 여정이기 보다는, 몸을 자각하는 과정일 것이다. 흐르는 땀과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길의 변덕스러움과 다양성, 스치는 바람의 싱그러움, 들풀과 같은 자연의 변화를 깨달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걷는다는 것은 “인간은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살아있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장봉도의 길은 주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어 좌우로 바다를 아우르며 걷는 즐거움이 있다. 그런 이유로 능선을 걸을 때, 산을 따라가는 제 딴에는 반가워서 그러는지 모르지만 무턱대고 안겨드는 칼바람은 반가우면서도 성가시다. 차라리 무섭다. 아직은 겨울의 긴 터널을 벗어나지 못한 탓이리라.
 
어느새 길은 바닷가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름이 재미있다. ‘뒷장술’ 해안가이다.
뒷장술 해안가
장술의 의미는 해변의 물을 막아준다는 뜻으로, 해변의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이 파도를 막아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뒷장술은 독바위 뒤에 있다하여 뒷장술이라는 설명이다. 마찬가지로 ‘앞장술’도 있고, ‘긴장술’도 있다.
 
이정표가 백사장을 걸으라 하니 가고는 있지만 제대로 가는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다행인 것은 얼마 전 대부도의 해솔길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지라 가다 보면 길이 나올 거라는 믿음은 있다.
 
동행이 없는 호젓한 백사장에서의 걷기는 뒤따라오는 내 움직임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발자국은 걷는 이의 여정을 알려준다.
무심히 모래 위에 박혀있는 발자국들이 가없이 이어지고 그 위를 걷는 사람은 생각한다. 내 삶의 여정도 어딘가에 수많은 흔적을 남겨두었으리라는 짐작이 그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지자 새삼 걷는 걸음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과거와의 절연이야 가능하겠느냐마는 새롭게 걷는 걸음만큼은 부드럽고 단정해야 한다는 부담이 뒤따른다.
 
오래지 않아 이정표는 다시 산을 오르라 하고, 길은 장봉도의 지붕인 국사봉(151m)으로 향한다.
 
어느 길이야 걷는 행위는 다를 게 없다. 두 발을 뚜벅뚜벅 번갈아 내딛으면 될 일이다. 다만 길에는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고 부드러움과 거침이 있어, 걷는 이가 가려 걸으면 될 일이다. 그렇게 걸음을 떼어놓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른다.
섬도 결국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국사봉이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장봉도의 마을은 북풍을 피해 산을 등진 채로 섬의 남쪽 해안을 둘러 퍼져 있다. 장봉1리부터 장봉4리까지가 장봉도의 마을이다.
 
길은 다시 내리막으로 접어들어 가막머리 전망대를 향해 뻗어 있다. 가막머리는 장봉도 서쪽 끝, 그야말로 장봉도의 땅끝이다. 가막머리 전망대가 장봉도 종주의 대미(大尾)인 것이다.
 
산을 내려온 길은 마을 옆을 지나고, 나무를 베어 실어 나르던 임도를 만나기도 하고, 또 그렇게 희미해지기도 하다가 기어이 산으로 다시 이어진다. 때로는 길은 길속에 다른 길을 숨겨놓아 선택을 강요하고, 걷는 이는 제 원하는 방향의 길을 선택하여 부지런히 발을 옮겨 놓는다. 그렇게 길은 길 위에서 또 다른 길을 만나고 또 헤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끊어진 길은 사람들이 출렁다리로, 잔교로 이어놓았다.
아마도 오르막이 있어 산길은 산길이 된 것이리라.
또다시 오르막이 저 멀리 계단의 모습으로 이어져 있다. 인간의 삶은 올라갈 때가 행복하다고 하더니 산길은 오르막이 힘겹다. 그것도 계단은 더 힘들다. 하지만 가야 하는 길이니 달리 다른 방도가 없기에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게 오르고 내리기를 여러 번, 아뿔싸! 가막머리를 2km를 남겨둔 지점에서 애지중지하던 스마트폰 밧데리가 종언을 고하고 말았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사진 촬영과 같은 기록이 불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마트폰이 아웃되니 아쉬운 건 검색이나 카메라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간과의 이별이라는 막막함이었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걷는데, 시간을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암담할 줄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삶의 강박은 그나마 여유를 누려보자며 떠난 장봉도에까지 따라나선 것이다.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만의 특수성이 강박을 더욱 키우고 있었다. 왜냐하면 마지막 배 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간이 오후 3시 무렵, 남은 길은 가먹머리를 갔다가 버스정류장이 있는 마을까지 돌아오는 거리는 5~6km 남짓. 6시의 마지막 배(그때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나중에 선착장에 도착해 알아보니 오후 9시 20분이 막배였다.)를 타기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다.
이정표
하지만 걸음은 바빠지고 분주해졌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혹시나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시간이 더 지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부에서부터는 길은 오직 외길이다. 봉화대를 지나고, 바위 능선에 오르니 탁 트인 조망이 나타났다. 따로 카메라를 챙기지 못한 준비부족이 두고두고 못내 아쉽다. 저만치 아래 남쪽 해변에는 긴 모래톱이 이어진다.
가막머리는 바다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사진제공=옹진군청 홈페이지)
얼마를 더 갔을까. 오래지 않아 가막머리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널찍한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전망대는 덩그러니 외롭게 바다와 외롭게 대면하고 있었다. 가막머리 전망대에서는 낙조가 일품이라는데,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다만 가막머리 낙조의 아름다움은 나중에 옹진군청 사진갤러리에서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가막머리 낙조 (사진제공=옹진군청 홈페이지)
가막머리는 긴 세월 동안 파도와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해식절벽이다. 바다를 뚫고 강화도 저 너머까지 나아가고자 했지만 섬은 더 이상 바다를 뚫지 못하고, 파도에 가로막히고 맞아 머리가 뭉개진 채로 그렇게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을 돌아가는 방법이 있고, 썰물일 때는 해안길을 따라 이어진 해안 둘레길을 따라가도 된다. 해안 둘레길은 가막머리에서 장봉4리 건어장 해안까지 이어져 있다.
 
나의 목적지도 건어장 해안이다. 거기에 버스 종점이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걷기에는 저질 체력이 받쳐주질 않고, 그보다도 막배 시간을 맞추려면 걷는 만용은 지극히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안둘레길은 나무 목책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갯바위를 타고 넘고, 개펄이 드러나 보이는 모래톱을 지나는 길은 산길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 거기에도 오르막 내리막은 번갈아 행인의 발을 성가시게도 하고, 또 재촉하기도 한다.
 
다만 바다를 에둘러 가는 해안 둘레길은 산과 바다가 주는 조화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산을 걷는 이의 투쟁심에, 바다가 드넓게 펼쳐지는 전망대에서의 여유로움이 더해져 걷는 이는 마음을 한결 여유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시간을 모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다. 걷다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해의 기울기로 시간을 가늠해 보지만,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수준일 뿐이다. 그저 발을 서둘러 움직이는 것 말고는 달리 다른 방도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간간이 저 혼자 섬 전체를 세 얻어 노니는 착각에 빠지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삶이 고독하면 걸으라.
하지만, 길 위로 오가는 사람들, 또 길 위에서 만나는 풀 한 포기, 들꽃 하나, 바람 한 점, 햇살 한 줄기, 하물며 돌멩이 하나와도 인연을 맺고, 또 그들과의 동행을 인식하는 것이 걷는 일의 본질일진데, 여유 없는 바쁜 마음이 이를 허락하지 않음이 아쉽다.
 
해안 둘레길이 끝나갈 즈음, 마을이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화살표로 방향을 일러준다.
 
포장길이 나타난다. 마침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시는 마을 어르신께 시간을 물었더니, ‘아까 4시가 넘었던 것 같던데......’ 하신다. 그 분에게는 시간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모름지기 섬에서는 시간에 쫓기지 말아야 했던 것이다.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가면서 스스로 자문해 본다. 왜 여기까지 와서 걸었느냐고? 사실 무작정 나선 길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으랴 마는, 굳이 대답한다면 길 하나는 수집하였다는 생각에 위안을 한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 하나를 얻었다고......
 
사색이니 자아발견이니 하는 거창한 구호야 내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닌지라, 단지 다시 찾아와 걸을 수 있는 길을 얻었으며, 덤으로는 몇 방울의 땀과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공기와 왠지 반 평(坪) 정도는 넓어진 것 같은 마음 정도가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누군가 말했다. “삶이 고독하면 걸으라.”고...... 아마도 걷기에는 나름의 치유력이 있다는 말일게다. 장봉도의 일주 코스를 걸으며 무언가가 치유되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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