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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中 보복에 무대책…다시 보는 무지한 '사드 배치' 협의

[취재파일] 中 보복에 무대책…다시 보는 무지한 '사드 배치' 협의
1년 전 쯤 기자는 국방부의 한 당국자와 저녁 자리를 가졌습니다. 그는 사드(THAAD)의 주한미군 배치에 정통한 인물입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북한이 단거리 KN-02나 스커드가 아니라 장거리 로켓을 쐈는데 한미가 사드 배치 카드를 꺼낸 것은 넌센스 아닙니까?” 그 당국자는 담담히 “우리도 그 부분이 아쉽다”고 대답했습니다. 사드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 시험발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기 때문입니다.

사드는 장거리 미사일을 요격할 수 없는 무기체계입니다. 단거리나 준중거리 미사일을 종말 단계 즉 낙하하는 시점에 떨어뜨리는 미사일입니다. 그런데도 북한이 장거리 로켓 광명성 3호를 시험 발사한 작년 2월 7일, 한미 양국 군은 대북 군사 대응의 일환으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가능성을 검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은 미국을 겨냥하는데 엉뚱하게도 미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한 번 더 엉뚱하게도 단거리 및 준중거리 미사일 요격용 사드 배치를 추진한 것입니다.

사드 관련 국방부 핵심 당국자의 “아쉽다”는 언급에서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추진은 군의 주도적인 판단이 아니라 ‘윗선’의 결심을 군이 대행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청와대에도 김관진 안보실장을 비롯해 군 출신들이 몇 명 있지만 개별 무기체계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떨어집니다. 국방부조차 THAAD의 ‘T’자도 모르면서 사드 배치를 추진했습니다. 중국의 보복은 불 보듯 뻔했고, 일찍이 보복을 위한 준비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정황이 감지됐지만 덮었습니다. 정부 최고 책임자는 이제 와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 국방부도 사드를 몰랐다!
작년 1월 국방부 자료
한미 군 당국이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가능성 검토를 발표하기 한 달 전 국방부는 홈 페이지에 사드 설명자료를 올렸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미국은 미사일 방어체계 MD를 운영하고 있고, 사드는 MD의 핵심이다” “사드는 미국 본토를 향해 날아오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요격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MD의 핵심이라는 사드를 주한미군에 배치한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MD에 편입된다는 의미도 됩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요격할 목적으로 개발됐다면 사드는 한반도 전장 환경에 안 맞습니다. 남한에 대륙간탄도미사일 공격을 할 수 있는 곳은 북한이 아니라 중국 서쪽 사막 또는 러시아 정도입니다.
작년 2월 국방부 자료
한미 군 당국이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가능성 검토를 발표한 2월, 국방부는 또 사드 설명자료를 홈페이지에 내걸었습니다. 1월에는 “사드는 MD”라더니 2월에는 “사드는 MD와 무관하다”, 1월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 요격용”이라더니 2월에는 “북한의 사거리 3,000km 이하 단거리, 준중거리 미사일에 대응하는 무기체계”라며 스스로 1월의 자신을 부정했습니다.

작년 6월에는 북한이 실패를 거듭하던 무수단 시험발사에 처음으로 성공했습니다. 국방부는 또 사드에 대한 설명을 바꿨습니다.
작년 7월 국방부 자료
국방부는 2월 설명자료에서 “사드는 3,000km 이하 단거리, 준중거리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중거리 무수단 시험발사에 성공하자 국방부 핵심 당국자는 기자 설명회에서 “무수단의 사거리는 3,400km에 달할 것”이라고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사드는 무수단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국방부의 7월 설명자료를 보면 “사드는 중거리 무수단을 요격할 수 있다”고 해놨습니다. 2월과 7월 국방부 설명자료와 당국자의 말을 종합 정리하면 “사드는 사거리 3,000km 이하의 단거리, 준중거리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데 무수단은 사거리 3,400km인 중거리 미사일이다” “그럼에도 어쨌든 사드는 무수단을 쏴 떨어뜨릴 수 있다”입니다.

미 국방부와 제조사인 록히드 말로는 사드는 미 본토 방어를 위한 장거리 미사일 요격용으로 개발하려다가 뜻대로 안돼서 단거리, 준중거리 미사일 요격체계로 만들어 놨습니다. 그런데 우리 국방부는 사드가 단거리부터 장거리인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죄다 요격하는 만능으로 둔갑시켰습니다. 주한미군에 사드를 배치하기 위한 아무런 준비도 안 했는데 느닷없이 홍보는 하라고 하니 말이 자꾸 꼬였는가 봅니다.

● 국방부도 몰랐는데 하물며 타 부처야…

작년 상반기에 귀 밝은 기자들에게는 “중국 정부가 한국으로 가려는 중국인 관광객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외교부와 청와대도 이를 감지했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청와대와 외교부에 문의했더니 “유언비어일 뿐”이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질문한 기자만 무색해졌습니다.

유언비어는 청와대와 외교부가 퍼뜨린 셈입니다. 작년 상반기 중국 동향을 전해준 사람은 유력한 소식통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되짚어 보면 청와대와 외교부 실무자는 정확하게 상황을 짚어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위로는 제대로 전파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해당 부서인 국방부도 사드를 놓고 우왕좌왕이었는데 청와대, 외교부는 오죽했겠습니까. 사전에 예방해 볼 기회를 다 놓친 뒤 중국의 보복이 본격화하자 이제 와서 “대책을 찾으라”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말은 무책임의 전형으로 들립니다.

후회해도 늦었지만 사드는 용도에 맞게 스커드나 KN-02를 시험발사했을 때 배치 논의를 해보겠다고 발표했어야 했습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해 광명성 3호를 쏴 올리자 단거리, 준중거리 미사일 요격용 사드를 꺼내 드니 북한은 황당하고 중국은 불쾌했습니다. 게다가 미국이 주한미군 배치를 공식 요청하면 우리나라가 이를 받아 한미가 협의하기로 한 원래 계획에서 벗어나, 한미가 손잡고 배치 가능성 검토를 공동 발표해버렸습니다. 미국이 사드를 들여놓자고 극구 부탁을 하니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식이었다면 아무리 뿔난 중국이라도 노골적으로 우리나라에 시비를 걸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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