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2월에 본 전시 - '호랑이의 탈을 쓴 양'과 '양의 탈을 쓴 호랑이'가 만난다면?

안규철 개인전 '당신만을 위한 말'

[취재파일] 2월에 본 전시 - '호랑이의 탈을 쓴 양'과 '양의 탈을 쓴 호랑이'가 만난다면?
의자는 항상 꿈을 꾼다.

 "나는 의자가 되고 싶지 않았어. 배가 되고 싶었는데..."

그래서 의자는 다리를 '노' 모양으로 가꾸어 달았다. 노를 저어 움직이는 배처럼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의자는 의자일 뿐. 노를 네 개가 가지고 있었지만, 의자는 놓여진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호랑이의 탈을 쓴 양'과 '양의 탈을 쓴 호랑이'가 만난다면?
양은 순하고 약한 자신이 싫었다. '동물의 왕' 호랑이처럼 강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썼다.

 "나는 강해!"

'호랑이의 탈을 쓴 양'은 의기양양하게 길을 걸었다. 그때 맞은 편에서 누군가가 다가온다. 그는 바로 '양의 탈을 쓴 호랑이'! 둘 사이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호랑이의 탈을 쓴 양'과 '양의 탈을 쓴 호랑이'가 만난다면?
전시장에는 온통 이렇게 '어긋나고', '뒤틀려 있고', '아이러니'한 작품이 한가득이다. 의자와 양 말고도, 두 쌍의 바퀴가 달려있기는 한데 안에 들어가 있어 이동은 불가능한 상자, 자전거이긴 한데 앞뒤로 손잡이만 있거나 앞뒤로 안장만 달려있어 그 어느 방향으로도 갈 수 없는 자전거, 안락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할 집인데 내부에는 교차로가 있어 지나쳐야만 하는 집...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 안규철 작가의 작품은 참 안타깝다. 

이런 상황은 작가의 처지와 닮아있다. 머물러 있으면 떠나고 싶고, 떠나면 어디엔가 머물고 싶은 '청개구리' 같은 심리. 하지만, 작가는 그 자리에 안주하고 머무는 순간, 끝이다. 작가는 "그 순간이 작가로서 문을 닫아야 하는 순간"이라 표현한다. 작가는 자신의 그런 심리를 작품 속에 담은 것이다.

뿐만 아니다. 작품들은 자신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습도 반영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사는 어느 누가 안 그러겠냐마는, 작가에게 '세월호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무너져 버렸다. 우리 사회 시스템은 온통 뒤틀려 있고 어긋나 있었다. 분노가 치밀고, 울분이 터졌다. 하지만, 환갑이 넘은 작가는 그런 감정을 즉각적으로 표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찰하는 기회로 삼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오롯이 담은 게 바로 이 작품들이다. 

안 작가는 동시에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들은 과연 불가능할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당신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없었나요?"
'호랑이의 탈을 쓴 양'과 '양의 탈을 쓴 호랑이'가 만난다면?
전시장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 더 많다. 우선 가장 넓은 벽에 달린 나무 레일. 작가는 직접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더니, 레일 위에 있는 나무 공을 레일을 따라 굴린다. 또르르르 또르르르 똑... 고요하던 전시장이 순간 나무공 소리로 가득 찬다.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의 확대판 같기도 한 작품이다. 위에서 굴리면 당연히 아래 끝 지점에서 멈추겠지, 너무나 당연한 결과가 나올 테지만, 공이 굴러내려오는 동안 관객은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작품 제목은 '머무는 시간'. 지난해 여름, 폭우가 쏟아지던 날 빗물이 콸콸 흘러가는 소리를 듣고 떠올린 작품이다. 비가 내리고, 땅을 흘러,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기까지,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게 아니라, 그 사이 지상에 머무는 시간이 있기에, 자연이 존재하고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한다. 공이 시작해서 멈추기까지 3분 남짓한 시간, 작품은 인간사와 자연의 원리를 다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옆에는 시커먼 먹구름 같은 작품이 걸려있다. 시각적으로도 포실포실한 촉감이 느껴져, 폭 빠져들 것만 같다. 이 작품의 제목은 전시의 제목과 같은 '당신만을 위한 말'이다. 로맨틱한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형상인데, 실제로 작가는 '블랙홀'을 생각하며 작업을 했다 한다. 온갖 소음이 가득한 세상, 하고 싶은 말은 꾹꾹 눌러두고 듣지 않아도 되는 말을 듣고 사는 세상, 이 작품에 그 말들을 다 쏟아놓으라는 것이다. 마음속에 담고 있는 말, 미처 하지 못한 말, 내뱉으면 이 작품이 다 받아줄 것이다. 그리고나서는 가만히 귀를 대보라. 내가 고백했던 것처럼, 누군가 했던 고백이 그대로 내 귀에 전달될 것이다.(원래는 관람객이 마음대로 말하고 귀를 댈 수 있게 하려고 했지만, 작품의 보존상 '접근'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만을 위한 말'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여유를 가져보라는 것이다. 

안규철 작가의 작업은 '미술'이라기 보다는 '시' 같다. 작가의 감정과 느낌을 잘 살린 시어를 읽는 느낌이 든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시를 읽을 때 터져 나오는 짧은 한숨(?), 탄식(?) 같은 것이 연신 터져 나오게 한다. 작가로 데뷔 전 7년 동안 미술잡지 기자로 활동할 정도로 필력도 대단한 작가이기에 너무 당연하게 나오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런 감상을 작가에게 조심히 전했더니, 작가는 바로 수긍한다.

 "나의 작업에는 문학적인 텍스트(text)가 깔려 있기 때문일 겁니다. 나는 실제로 '언어'와 '사물' 사이를 어떻게 연결할까 고민합니다. '이야기'와 '이미지'를 연결하는 '중개자'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미술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호랑이의 탈을 쓴 양'과 '양의 탈을 쓴 호랑이'가 만난다면?
'개념적'인 그의 작품을 보고 누군가는 "역시 현대미술은 어려워"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 비평(?)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인지, 안규철 작가는 'LIFE+ART(삶+예술)', 'LIFE-ART(삶-예술)'이라는 선문답 같은 작품을 전시장에 떡하니 걸어두었다. 삶에 예술을 더하면, 삶에서 예술을 빼면 어떤 답이 나올까. 작가가 내놓은 답은 다름 아닌 'LIFE(삶)'. 예술이 있으나 없으나 삶은 삶이라는 것인데, 아... 그렇다면 과연 예술은 무엇이란 말인가.

* 안규철 개인전 '당신만을 위한 말'
국제갤러리 1관, ~3월 31일까지. 무료.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