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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감동? 조롱? '베네수엘라 쿨러닝'의 험난한 미래

[취재파일] 감동? 조롱? '베네수엘라 쿨러닝'의 험난한 미래
▲ 핀란드 노르딕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아드리안 솔라노

스키를 타고 출발선으로 가면서부터 몸은 휘청댑니다. 평지에서는 뒤뚱뒤뚱 힘겹게 중심을 잡는 듯싶더니 내리막 코스에만 접어들면 여지없이 엉덩방아를 찧습니다. 오르막길에서는 오히려 뒤로 내려갑니다.

지난주 핀란드에서 열린 노르딕스키 세계선수권에서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베네수엘라의 스키 선수 아드리안 솔라노 이야기입니다. 솔라노는 첫 출전한 10km 예선에서는 절반도 못 가서 기권을 했고, 1.6km 스프린트 예선에서는 꼴찌인 153위로 힘겹게 완주했습니다. 기록은 13분 49초 33으로 꼴찌에서 두 번째인 152위보다도 5분 이상 느렸습니다.

솔라노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스키선수가 되고 싶어 바퀴 달린 스키를 만들어 아스팔트에서만 훈련을 해오다 처음으로 눈 위에서 스키를 타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선수가 눈 위에서 처음으로 스키를 탔다.'는 겁니다.

스키 전문가들은 “현존하는 최악의 스키어” “한 편의 코미디”라고 혹평하면서도 “무모하지만 용감한 도전이었다."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치·경제적으로 파산 상태로 치닫고 있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시선은 차갑습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국가적인 망신을 시켰다." "좌익정권의 지원을 받은 정치적인 쇼였다."며 조롱과 비난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솔라노는 "스키를 사랑한 순수한 의도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 '쿨러닝'에 반해서 시작한 스키…험난한 여정
[취재파일] 조롱거리가 된 '베네수엘라 쿨러닝'의 험난한 미래
22살 솔라노는 자메이카 봅슬레이팀의 실화를 다룬 영화 ‘쿨러닝’을 보고 감명을 받아 스키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또 지난해 영국의 스키점프 선수의 도전을 다룬 영화 ‘독수리 에디(Eddie The Eagle)'도 그에게 큰 영감을 줬습니다. 솔라노는 이번 핀란드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눈 위에서 스키를 타보기 위해 스웨덴 원정을 계획합니다. 3가지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경비를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경유지인 프랑스에서 발목이 잡혔습니다. 프랑스 경찰은 “눈도 내리지 않는 베네수엘라 사람이 스키 훈련을 하러 간다는 건 믿을 수 없다. 불법 체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솔라노를 추방했습니다. 이때 솔라노의 수중에는 단돈 28유로, 우리 돈 33,000원뿐이었습니다.

● 기적같이 만난 '은인'…감격적인 첫 도전

바로 그때 솔라노의 딱한 소식을 들은 핀란드의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가 알렉시 발라부오리가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그는 ‘기금 모금 사이트’를 통해 4,000유로, 우리 돈 480만 원 정도를 모아 솔라노의 경비를 마련했고, 세계선수권이 열린 기간 솔라노를 응원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솔라노는 대회 장소에 도착한 지 12시간 만에 연습 한 번 하지 못하고 경기에 나섰고, 결국 이런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국제무대에 첫선을 보이게 된 겁니다. 그래도 솔라노는 "꿈을 꾼 것 같다. 이제부터 시작이다"며 감격에 젖었습니다.

● 격려보다는 조롱과 비난…험난한 미래

▲ 솔라노 패러디 영상

솔라노의 코미디 같았던 도전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격려하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조롱과 비난의 목소리가 더 컸습니다. 솔라노의 실수 장면을 패러디한 영상은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국민으로부터 원망을 사고 있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솔라노의 도전‘을 옹호하면서 논란은 더 뜨거워졌습니다.
과거 군대 시절 솔라노의 SNS
베네수엘라 외교부는 “솔라노의 전지 훈련을 막은 건 프랑스의 오만”이라며 비난하고 나섰고, 베네수엘라 야당 지도자인 엔리케 카프릴레스는 “국민들은 굶고 있는데, 이름 없는 스키 선수를 지원하는 데 혈세를 낭비했다.”며 비난했습니다. SNS를 통해 솔라노의 과거 군대 시절 사진 돌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비난 여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군복을 입고 총을 든 사진과 차베스 전 대통령을 새긴 머리띠를 두른 모습이 국민들의 반감을 샀습니다. 트위터에는 “솔라노는 나라를 망친 차베스 정권의 군인이지 스키 선수도, 스케이트 선수도 아니다.”는 비난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솔라노는 “그 사진은 옛날 것이다. 정부의 지원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세계선수권에 나갔고, 올림픽을 꿈꾸는 스키 선수일 뿐이다.”라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솔라노의 도전은 앞으로도 험난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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