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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냉파를 아십니까?…생활비 '초(超)절약 기술'의 귀환

실질소득↓, 물가↑…‘재테크 방법’ SNS타고 확산

[취재파일] '냉파를 아십니까?…생활비 '초(超)절약 기술'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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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보세" 참 잘 살기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보릿고개'가 실제 상황이었으니까요.

그 시절 유명한 노래. 아마 신세대는 잘 모를 겁니다. "새벽 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당시에는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부지런함을 '절대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잘 살아보려 그랬습니다.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던 시절의 '절대 미덕'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절약입니다. 참 아꼈습니다. 몽당연필 뒤에 볼펜자루 끼워서 쓰던 초등학생들이 스케치북에 계몽 포스터를 그릴 때마다 '절약'은 단골 주제였습니다.

오래된 옛날을 상징하는 '쌍팔년도'보다 더 오래된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40대 중반 이후의 세대들에게는, 얼마 지나지 않은, 혹은 이제 막 지나온 시절 같습니다. 물론 젊었던 어머니, 아버지 얼굴이 떠오르면서 제법 아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시간이 참 많이 흘렀죠.

그런데 그 세상이 다시 부활하고 있습니다.

● "변기 뒤 물탱크에 벽돌을 넣자"

40대 이상 세대들이라면 들어봤을 법한, 아주 오래된 전통적인 '물 절약법'입니다. 용변을 본 뒤 물을 내릴 때 사용되는 물의 양을 아끼기 위한 방법입니다. 변기 뒤 물탱크에 벽돌을 넣으면 물탱크에 들어가는 물의 절대량이 줄어드는 원리를 이용한 '물 절약법'입니다. 벽돌을 물탱크에 넣을 때 수세식 변기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건 덤입니다.

그런데 이 방법이 최근 한 베스트셀러에 다시 실렸습니다. '전통의 물 아끼기 비법'이 다시 부활한 겁니다.
이 책은 생활비를 아끼는 옛 기술, 최신 기술을 한가득 담아놨습니다. 뒤에서 설명드릴 냉장고 파먹기, 강제저축 같은 방법과 함께 물 아끼기 위해 변기 물탱크를 관리하는 방법도 적어놨습니다.

장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극한의 절약법' '초(超)절약법'이 새삼 유행입니다. 물론 절약 기술을 자세히 적어 놓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새삼스러울 것 없습니다.

그만큼 경제가 어렵습니다. 잘 살아보기 위해서 아끼는 게 아니라 아끼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린 가정이 많아진 겁니다. 절약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돼 버렸습니다.
 
'일부 주부'들만의 얘기라고요?

● 월급 제자리? 외려 줄었다!…물가상승 감안한 실질소득 감소

통계청이 내놓은 통계는 일부 주부들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지난 24일 2016년 가계동향을 살펴보겠습니다. 눈에 띄는 건, 지난해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온 국민의 실질 소득은 0.4% 줄었다는 겁니다.
 "물가는 오르는데, 월급은 그대로"라는 직장인들의 푸념이 푸념이 아니라 사실이었던 겁니다. 오히려 '그대로'가 아니라 줄어든 셈입니다. 통계청은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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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0%를 기록해 4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습니다. 정부가 "물가 상승 수준이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감 떨어지는 얘기를 반복해도 주부들은 금방 분위기를 알아챕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지갑을 닫습니다.

또 '일부 주부'들만의 얘기라고요?

통계청 통계가 온 국민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지난해 가계 지출이 0.5% 줄었는데, 2003년 이후 처음입니다. 지금 주부들의 마음은 한결 같습니다. 돈 쓸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정부가 금요일 일찍 퇴근해서 돈을 쓰라고 공식적으로 '불금'을 후원하려고 나서도 지갑은 열리지 않습니다. 미래가 불안한 상황에서 지갑을 열 주부는 없습니다.

아직도 '일부 주부'들만의 얘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번에는 한국은행의 소비자 심리지수를 보겠습니다. 2월 소비자 심리지수는 94.4입니다. 100 이하면 비관적, 100 이상이면 낙관적으로 평가합니다. 넉 달 때 비관적입니다. 1월 93.3보다 1.1 오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비관적입니다.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비자들은 임금 수준, 물가 수준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가계 수입은 점점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 경제는 지금이나 앞으로나 크게 좋아지지 않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현재경기판단은 55, 향후경기전망은 70입니다. 1.1포인트 올랐다고 소비 회복 조짐이 보인다고 착각할 일이 아닙니다. 몇 포인트씩 오르내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계속 기준선이 100에 한참 못미치는 비관적인 심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소비자들은 미래가 불안합니다. 마음속의 본능이 "지금은 쓸 때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는 겁니다.

금요일 4시 퇴근 ? 우리 국민은 돈 쓸 시간이 없는 게 아닙니다. 쓸 돈이 없습니다.  돈 쓸 마음의 여유도 없습니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경제지표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짠테크 전성시대…"생활비를 줄여라"

한 달 생활비를 100만원으로 제한해왔다는 한 주부를 만났습니다. 맞벌이입니다. 그런데 두 달 연속 100만원을 넘겼습니다. 물가가 올랐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의 엄마인데, 아이들 먹을 거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점심을 구내식당에서만 먹기로 했습니다. 한 끼에 4천원. 그리고 점심, 저녁. 하루 외식비 8천원입니다. 커피도 줄였습니다. 그래도 20만~30만원이 넘어갑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더 이상 줄일 것도 없어요" "둘째가 기저귀를 빨리 떼야 하는데. 그러면 20~30만원 아낄 수 있어요"

 "이거다" 싶은 해결책이 나올리 없습니다. 월급은 지난해 3만원 올랐다고 합니다. 그녀는 뭐든 더 아끼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유행입니다. 짠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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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어는 짜다와 기술의 합성어입니다. 생활비를 아끼는 기술이라는 뜻입니다. 이 짠테크가 SNS를 타고 빠르게 공유되고 있습니다. 생활비 아끼는 기술을 공유하고, 그 기술을 직접 체험해보고, 다시 그 체험담을 SNS에 올립니다. 기술은 점점 보완되고, 얼마나 아낄 수 있는지 구체화됩니다. 서로에게 댓글로 '확 줄어든 생활비'를 응원합니다.

소비를 끌어올려야 하는 국가 경제 측면에서는 이런 짠테크가 악재일 수 있지만, 수입과 지출을 맞춰야 하는 가계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가계부채가 지난해 4분기까지 1344조원입니다. 특히 지난해 제1금융권 대출이 9.5% 증가하는 동안 제2금융권 대출은 17.1% 증가했습니다. 1금융권 대출 심사 강화로 2금융권으로 밀려나는 ‘풍선효과’ 때문입니다. ‘평균’ 금리가 1금융권은 3~4%라면, 2금융권은 15% 수준입니다. 갚아야할 빚이 늘어나는 겁니다.

통계가 말합니다.  "소득은 줄고, 물가는 오르고, 빚은 늘었다" 소비에게는 참 미안하지만, 대한민국 소비자들은 '짠테크' 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 냉장고 파먹기, 일명 '냉파' …가계부 앱도 생활비 절약에 필수

짠테크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기술입니다. 누구나 냉동실 열어보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기술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냉동실은 꽉 차있습니다.

떡볶이 떡, 떡국 떡. 호일에 싼 찹쌀떡, 역시 호일에 싼 고구마, 왕만두와 물만두, 멸치 국물 얼린 것, 멸치, 삼겹살, 돼지 앞다리살, 쇠고기 다진 것, 진공 포장된 간고등어, 예전에 받은 굴비, 글라스락에 넣어놓은 대파와 쪽파, 그리고 또 만두(튀김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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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부라면, 외부와 격리되더라도 외부 지원 없이 제법 오랜 기간 버틸 수 있다고 농담을 할 정도로 음식이 쌓여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간혹 “전쟁 나도 한 달은 버티겠다”라는 과격한 표현을 쓰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냉장고 파먹기가 등장한 겁니다.

일명 '냉파'는 냉장고에 있는 음식재료를 다 먹을 때까지 장보기를 하지 않거나, 장보기를 최소화하는 방법입니다. 음식재료 구입에 들어가는 생활비를 줄이는 겁니다. 게다가 냉장고, 특히 냉동실에 그 재료가 있는데 깜빡하고 똑같은 식재료를 또 샀던 기억이 있다면 누구나 수긍할만한 생활비 아끼기 기술입니다.
가계부 어플
또 이런 생활비 관리를 가계부 앱으로 하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습니다. 가계부 앱으로 교통비, 식비, 외식비 등 한 달 생활비를 정해놓고 관리하는 겁니다. 가계부 앱은 굳이 볼펜을 꺼내 적지 않아도, 카드만 등록해놓으면 자동으로 가계부에 기록이 되고, 얼마나 썼는지 합산이 되기 때문에 '생활비 절약'의 필수 아이템이 됐습니다.

한 가계부는 사용한 돈이 예상액을 넘어서게 되면 자동으로 얼굴 모양의 아이콘이 엉엉 우는 모습으로 바뀝니다. 더 쓰면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같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 아낀 생활비로 소비?…바로 은행行 '강제저축'

시중은행의 한 적금 상품이 4%의 금리를 준다고 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리 때문만은 아닙니다. 돼지 저금통처럼 매일매일 쉽게 돈을 넣을 수 있는 방식 때문입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하루에 3만원 이하의 돈을 가상의 저금통(적금 계좌)에 저축할 수 있습니다. 생활비 통장에서 적금 계좌로 빠져나가는 겁니다. 한 달이 지나면 그 돈이 이자가 붙어서 돌아옵니다. '이자 붙는 모바일 돼지저금통' 정도로 요약이 됩니다.

예를 들어 첫날 담배를 끊은 분이 담배 한 갑에 들어갈 4,500원을 아낀 만큼 모바일로 저금을 합니다. 그 다음날. 신용카드 포인트가 1만원이 쌓여서 이를 통장으로 이체했을 경우, 예상치 못한 돈이 생겼으니 그 돈을 또 모바일로 저금을 합니다. 그렇게 가상의 저금통에 모인 돈은 이자가 붙어 매월 원하는 통장으로 돌아옵니다. 직접 은행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할 수 있으니까 편한 겁니다.

이 상품은 매달 4천명에서 5천명이 신규로 가입해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한 달만에 5,404계좌가 늘어나더니 급기야 강제저축 기술의 하나로 SNS에 이 상품이 소개가 된 뒤인 지난달, 가입 계좌가 16,086건까지 급증했습니다.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난 겁니다.

강제저축. 이른바 요즘 '강제저축'은 '선저축·후지출'의 전통적인 기법에 '공돈 생길 때마다', '생활비 아꼈을 때마다' 바로바로 돈을 저축해 묶어 놓는 개념이 포함됐습니다. 그리고 방금 전해드렸듯이 은행이 깜짝 놀랄 정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 풍차돌리기…"아낀다고요? 아예 못 쓰게 묶어놓으시죠"

아예 소비를 할 수 없게 돈을 강제적으로 금융기관에 묶어놓는 방법 가운데에는 풍차 돌리기도 있습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1월에 적금 하나, 2월에 적금 하나, 3월에 적금 하나. 12월까지 매달 적금을 듭니다. 12개의 적금이 돌아갑니다. 첫 달에 1만원이었다면, 12개월 뒤에는 12만원이 들어갑니다. 자신의 소득에 맞춰 액수를 결정하는데, 대부분 최소한의 소비만을 염두에 두고 저축액을 최대한까지 늘립니다.

시중은행이나 저축은행도 금리가 2~3%를 맴도는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도 나옵니다. 풍차돌리기의 의미는 이자에 있지 않습니다. 이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돈을 쓰지 않고 묶어 두는 겁니다. 아예 소비를 원천봉쇄하는 겁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적금 만기가 돌아오는 즐거움도 아주 큽니다. 원래는 20~30대의 목돈 만들기 방법으로 등장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절약의 대명사로 바뀌었습니다.

대한민국은 흑자입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국제수지를 보면 상품, 서비스 등을 포함한 경상수지 흑자가 986억8천만 달러입니다.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111조원 정도 됩니다. 그렇지만 지난해 우리 모두는 참 힘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흑자도, 저유가 덕이 크기는 했지만, 경제가 안 좋아서 생긴 불황형 흑자였습니다. 

나라 뿐 아니라 가계도 흑자였습니다. 흑자폭도 커졌습니다. 통계청이 내놓은 가계 동향을 보면, 월평균 흑자가 3.8% 늘었습니다. 모두 허리띠를 바짝 졸라맨 겁니다. 그것도 치솟는 물가에 씀씀이를 줄인 겁니다. 삶이 얼마나 팍팍해졌겠습니까. 두 개 먹을 거 하나만 먹고, 하나 먹을 거 안 먹은 겁니다. 가구당 식료품과 음료(비주류) 지출은 1.3% 줄었습니다.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이 줄었습니다.

상황이 이렇습니다. 현실적으로 1970년대, 1980년대에 유행하던 초(超)절약법을 다시 꺼내들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습니다. 심리적으로도 저축을 하지 않으면 불안한 미래를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급했습니다.

그렇지만 소비가 늘지 않으면 경제는 계속 어렵습니다. 절약과 소비, 두 가치가 충돌하는 겁니다.

경제학자들은, 각론은 다양해도, 결국 해법은 가계 소득 증가 뿐이라고 말합니다. 가계 소득을 증대시킬 특단의 대책을 정부가 내놓을 때라는 겁니다. 또 소비자들이, 앞으로 소득이 늘어날 거라고, 경제가 좋아질 거라고, 그렇게 믿고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는 '경제상황'과 그에 대한 '믿음'을 함께 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일본도 한다"며 '금요일 4시 퇴근' 같은 정책만 내놓으면 그 '실력 없음'에 실망한 소비자는 지갑을 더 꽉 닫을 수 밖에 없다고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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