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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김정남 아냐' 북한이 생떼 부리는 이유와 은폐의 흔적

[리포트+] '김정남 아냐' 북한이 생떼 부리는 이유와 은폐의 흔적
어제(20일) 오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북한 대사관 앞.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가 5장짜리 영문 성명서를 읽어 나갔습니다.

이날 오전, 말레이시아 외교부에서 비공개회의를 한 직후였습니다. 강 대사는 지난 13일 발생한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해 '한국과 결탁한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를 믿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암살 사건의 남성 용의자 5명이 모두 북한 국적으로 밝혀지면서, 사건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걸 시사하는 수사 결과를 전면 부인한 겁니다.

암살 사건의 수사 결과와 각종 정황이 북한을 가리키는 가운데, 북한 측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 김정남이 아니라 김철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 결과, 김정남 암살 사건의 배후로 북한이 지목되자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강철 /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
말레이시아 경찰은 사인을 확인하지 못하고 범죄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북한에 적대적인 세력이 주장하는 사망자의 다른 이름(김정남)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수사하고 있고, 유일하게 혜택을 보는 건 정치적 위기에 처한 한국 정부라는 음모설도 들고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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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대사는 용의자를 북한 사람으로 한정 짓는 것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사망자가 김정남이라는 사실도 부정했습니다. 암살 사건의 피해자는 여권에 명시된 김철이며, 자신은 김정남을 모른다고 주장했습니다.

[강철 /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
용의자라고 보는 근거가 어디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날, 같은 날에 떠난 사람들이 많은데 왜 우리 사람들만 문제시하는 거고, 왜 확인도 하지 않고 말레이시아 경찰이 그것을 언론에 공개하는가 하는 겁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유가족 DNA 대조를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DNA 대조로 시신 인도를 지연시키려는 것"이라며, 말레이시아 정부에 공동 조사를 제안했습니다.

■ 북한 생떼에 선 긋는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정부는 총리가 직접 나서 강철 북한 대사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나집 라작 말레이 총리는 경찰 수사 결과를 "절대적으로 확신한다"며 강 대사의 공동 조사 제안도 일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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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정부 입장에서는 자국 공항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그 배후에 북한이 있다고 강하게 의심을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북한 측이 사과하기는커녕 한국과 공모해서 사건을 조작하고 있다는 비난을 거듭하자, 더는 지켜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총리가 직접 반박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 북한 반발에 담긴 의도는?

말레이시아 정부는 강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기자회견 발언에 대해 항의하고, 평양 주재 대사도 말레이시아로 소환했습니다.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1973년 수교 이후 40년 넘게 우호적이었던 양국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북한과 말레이시아 외교 관계 악화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북한이 생떼(?)에 가까운 반발에 나선 이유는 김정남 암살 사건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연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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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대사가 사망자를 김정남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망자가 김정남이 아니면,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의 '대안 세력'으로 불리던 이복형 암살을 지시했다는 논리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북한이 남긴 은폐의 흔적들

이번 암살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수사 결과가 나온 가운데, 북한이 암살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어설프게 행동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방에 CCTV가 설치된 공항에서 암살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나오는 해석은 공항이 항상 인파가 몰리는 곳이다 보니 김정남이 방심하는 틈을 노렸다는 겁니다.

공개된 CCTV 영상을 살펴보면, 용의자들이 이 사건을 살인사건으로 보이지 않게 만들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SBS 안정식 기자]
"CCTV를 아까 보셨으면 알겠지만 피습당한 직후에 김정남이 걸어 다니고 있잖아요?
 
옆에서 여성들이 좀 이상한 행동을 했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볼 때 살인사건이라고 볼 수는 없었던 거죠.
 
또 공항 의료진이 보더라도 김정남이 제 발로 걸어와서 아프니까 도와달라 하고 좀 더 있다가 죽었단 말입니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이것을 살인사건으로 보기는 힘든 거죠.
 
이게 일반인의 케이스였다면 사실 이게 살인사건이 아니라 심장마비 같은 돌연사라고 처리됐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공항에서 범행해도 별 상관없겠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취재: 안정식, 임상범 / 기획·구성: 김도균,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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