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반다이사에서 제조한 장난감 스카우터
'스카우터 Scouter'라는 말 아시나요? 정찰자, 감시하는 사람, 보이 또는 걸 스카우트단 지도자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만화 드래곤볼의 오랜 독자라면 전투력 측정기를 먼저 떠올리시겠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이 기계를 차고(한때 반짝 각광받았던 '구글글래스'가 반쪽만 있는 것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누군가를 보면 전투력이 얼마인지 수치로 나타나는 기기입니다.
변신 전의 프리저라면 53만이지요. 멀리 있는 사람도 전투력 수치만으로 표시할 수 있고 통신 기능도 있었습니다. 물론 기를 느끼는 기술이 있고 기 조절을 할 줄 아는 지구인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지만 그렇지 못한 외계인들에겐 필수 장비였습니다. 영화 '터미네이터'나 그전의 '로보캅'에서도 T-800 등은 사물이나 인간을 수치화시켜 파악하는데 그의 시야엔, 실제 현실에 증강된, 수치화된 정보가 뜨곤 했습니다.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은 눈으로 보는 현실에 가상의 물체를 더해 보여주는 기술을 말합니다. 내 눈앞에 있는 책상에 원래는 없던 숫자나 사물, 사람이 떠오르는 식이죠. 환상을 보는 것처럼 실제론 없는데 눈으로 보면 있습니다. '구글 글래스'가 구현했던 것도, 거슬러 올라가 '스카우터'도 현실에 무언가를 증강 시켜주는 식이었습니다.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 또 희귀한 몬스터를 찾기 위해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야 합니다. 많이 걷게 되니까 "방 구석이나 피씨방에 앉아서 게임만 하고 있다"던 게이머에 대한 비난에서는 조금 비껴납니다. 지역의 랜드마크나, 알려진 기념물 등에는 포켓스톱이 설치돼 있으니 이런 걸 알게 되는 홍보 효과도 있습니다.
지도 문제로 출시 7개월 만에 뒤늦게 상륙한 포켓몬고의 인기는 어디까지 갈까요. 한달 정도 지났는데 사용자 수가 소폭 감소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만, 포켓몬고로 인해 AR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는 데 의의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국내 기업들도 AR 마케팅을 본격화하는 분위기입니다.
'조커'들은 교환권이나 할인권을 받을 업체들 주변에 나타납니다. 카드사에서는 "오후 1시-2시 사이에 홍대 000 근처에 가면 조커들을 많이 잡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메시지도 보냅니다. 자신의 위치정보를 공개해야 가능한데 특정장소 특정시간대 고객들에게 맞춤형으로 마케팅할 수 있는 수단으로 AR이 활용된 사례입니다. 포켓몬고와 비교할 순 없지만 한 달 만에 10만 명 넘게 다운로드받았습니다. 일주일 한도인 쿠폰을 50% 이상 사용한다고 합니다.
한 화장품 업체는 화장품을 써보지 않아도 화장한 것 같은 효과를 내볼 수 있는 '뷰티 미러'를 선보였습니다. 거울을 보고 이 화장품업체의 립스틱이나 아이새도를 클릭하면 마치 그 화장품을 사용한 것처럼 자기 얼굴 위에 색이 더해지는 식으로, 거울 위에 가상의 화장을 한 모습을 증강시킨 것이죠. 가구를 사기 전에 미리 자기 집에 배치해보는 식으로 AR을 활용한 업체도 나왔습니다. 포켓몬고로 AR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이런 업체들의 AR 마케팅도 다시 주목받거나 더 새로운 방식이 나올 것 같습니다.
포켓몬고를 활용하는 방식도 나오고 있습니다. 포켓몬고 게임의 수익은 몬스터볼이나 가방, 유저 아바타 꾸미기 같은 데 사용해야 하는 돈입니다. 돈을 쓰고 싶지 않다면 포켓스톱에 자주 가서 몬스터볼 같은 소모품을 획득해야 합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스타벅스나 여러 쇼핑몰들이, 일본에서는 맥도날드가 포켓몬고와 제휴해 자사 지점을 포켓스톱으로 만들었습니다. 유저들이 포켓스톱에 몰린다는 데서 착안한 것입니다. 일단 사람이 모이면 뭐라도 하나 더 사게 된다는 거죠.
국내 편의점 업체 한 곳도 비슷하게 포켓몬고와 제휴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른 방식으로는, 포켓몬고 속 거리에 광고판을 설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 화면이 나타나기 전 게임 속 거리에 돈을 받고 광고판을 넣는 겁니다. 마치 요즘 야구 중계를 보다보면 비어있는 구장 내에 광고가 떠오르듯이 말이죠. 포켓몬고는 아직 그러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시내 중심 같은 데면 해볼만 할 것 같습니다. 포켓몬고의 인기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겠습니다만.
'스카우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스카우터는 전투력을 간편하게 측정해주는 장점이 있었죠. 하지만 그런 도구 없이도 스스로 기를 측정할 줄 아는 손오공 등에겐 필요 없는 도구였습니다. 자가 측정 기술을 배웠던 베지터는 스카우터를 버리고 살아남았고 더 강해졌습니다. 반면 우주 최강인 듯했지만 스카우터 없이는 누구를 찾을 수도 없던 프리더는 패배했고 사망했습니다.
증강현실 AR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구글글래스에 이어 '카카오 글래스'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도 있죠. 진짜 '스카우터'도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증강현실은 심심했던 현실에 청량제? 가뜩이나 번잡한 현실을 더 짜증나게? 기업들에겐 어떤 기회로 찾아올까요. 흥미진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