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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81 :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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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을 잡을 때, 팔을 뻗어 그녀의 손 가까이로 다가가서 손을 잡기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세상을 한 바퀴 돌아 그 손에 마침내 닿기까지의 시간이 다시 한번 되풀이되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앞으로 어지간하면 다시는, 팔을 뻗어 이 손을 잡을 수 없는 거리 이상으로 그녀와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드십니까. 결혼을 하겠다고 청첩장도 돌리고 대부분의 준비를 마치고 나서 며칠 남지 않았는데 우연히 저를 만나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진지하게 권했던 어느 선배가 떠오릅니다. 당황 그 자체였습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니까, 해 보라는, 오래된 농담 같은 조언도 있지요. 요즘엔 미혼이 아니라 비혼이라고도 하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견해가 오가는 상황인데 "결혼이란, 막연히 상상하는 것보다는 훨씬 힘들고 어렵고 지난한 일"이라는 어떤 정의가 맞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니 무조건 해야 할 것도, 아무와라도 하기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니죠. 아이도 그렇습니다. "출산율이 갈수록 줄고 있어 아이를 꼭 낳아야 하고 그게 애국"이라는 식의 말씀을 늘어놓는 이들이 아직도 있죠. 어쨌거나 쉽지 않은 문제임은 분명합니다. 
 
오늘(19일) 읽는 책은, 표제작도 그렇지만 결혼과 아이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고 있어 이런 얘기를 해봤습니다. 곽재식 작가의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작품집이 오늘의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한국 소설이 좋아서]라는 전자책으로 무료 배포된 한국 소설 추천글 모음집에서 알게 됐습니다. '북적북적'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장강명 작가가 어느 상의 상금을 털어 이 책을 만드는 데 썼다고 하죠. 제가 잘 모르는 여러 한국 소설에 대한 추천글이, 저도 어느 정도는 알 만한 추천자들이 쓴 것들로 실려 있어서 도움을 받아야겠다 싶었는데 그중에서 이 책이 끌렸습니다. 
 
곽재식 작가는 화학을 전공한 연구원인데 소설을 취미로 쓰고 있습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며 언뜻 떠올랐던 건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마션', 멧 데이먼 주연의 영화로도 탄생했던 그 책이었습니다. SF 소설은 아닙니다만, 작가의 상상력이 조금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이 작품집에 실린 소설은 5편인데 표제작인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는 결혼을 하기 위해 예기치 않은 모험에 나선 이야기입니다. 소설에도 언급됩니다만,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혹시 그녀가 좋아할 만한 주제의 책이나, 비행기 타고 오가는 와중에 할 일 없을 때 읽을 잡지는 없을까 싶어 한번 둘러보고 나오려니, 할인 행사로 나온 고전 중에서는 '80일간의 세계 일주'가 눈에 들어왔다. 영국 런던에서 출발해서 세계를 80일 만에 돈다는 이야기인데, 나는 지금 8일 만에 도는 이야기 속에 있지. 결말에서는 80일간의 세계 일주이건, 8일간의 세계 일주이건 두 사람 다 결혼하는 행복한 결말이 되어야겠지."
 
"따지고 보자면, 문제가 생기고 고난이 생기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 그것 때문에 기운 없이 그녀와 마주하고 그녀와 자꾸 다투고 어긋나고 나쁜 모습을 보고 보이고 하다 보니, 서서히 그녀가 성격이 이런 사람인가, 그녀와 함께 살면 계속 이렇게 서로 갈등을 빚으면서 싸우고 살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녀와 함께 살면 행복할 거라는 생각에 조금씩 그 벌레 같은 잡고민들이 들러붙어, 말 그대로 벌레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힘든가 싶었다. 내가 무슨 크게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저 저 산을 뒤덮고 있는 수많은 집들에 살고 있을 저 많은 가족들, 저 작은 불빛 하나하나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평범한 보통 가족들, 그냥 적당히 큰 문제없이 사는 가족들, 저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왜 그게 이렇게 골치 아픈가."
 
"어쩌면 결혼이란 계속해서 고난과 역경이 찾아오기만 하는 그런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래도 한번 저질러보려고 한다. 아직 어린 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설레는 마음만으로 혼자서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에 그대로 밤을 지새울 수도 있었던, 그런 그녀와 결혼을 한다는 것은, 뭐 하여간 대단한 행운이니까. 그리고 그 정도 행운이 주어져 있다면, 너와 함께 겪는 고난은 언제나 해볼 만한 도전이고, 너의 손을 잡고 같이 가는 역경은 항상 새로운 모험이지 않겠냐고."

 
그저 '결혼'도 보통 일이 아닌데, 이 결혼은 특히 더 보통이 아닙니다. 한국인 남성이 방글라데시 출신의 부모를 둔 여성, 그것도 이슬람교도와 결혼하기로 한 것도 이채로운데 백두산이 폭발했고 화산재 때문에 한국에 바로 올 수가 없어 유럽과 터키, 몽골과 중국과 북한을 거쳐 한국으로, 비행기와 택시, 배, 기차, 버스, 말, 마지막엔 뛰어서까지 찾아오는 과정이 흥미진진합니다. 중간중간 건너뛰면서 몽골에서 말 타고 기차를 따라잡는 데까지만 읽었습니다만, 이후에 중국과 북한을 거쳐 가는 여정도 만만치 않습니다.
 
결혼이란 이렇게 힘들고 어렵고 돌발상황도 많고 때로는 맹목적으로 돌진하거나 대안이나 타개책을 찾아야 하고 그래야만 가능한 것일까요, 그래야 유지할 수 있는 걸까요. 숱한 동화처럼 그래서 두 사람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가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일 텐요. 
 
이 작품집에는 '달과 6백만 달러' '최악의 레이싱' '달팽이와 다슬기' '왕'까지 5편이 실려 있는데 취향을 좀 탈 수도 있겠습니다만 알콩달콩한 재미라고 할까요. 일독을 권합니다.
 
(곽재식 작가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작성자: 심영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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