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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래서 상추쌈은 몇 개를 먹으라는 겁니까

[취재파일] 그래서 상추쌈은 몇 개를 먹으라는 겁니까
취재하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확성이 떨어지고 내용이 부실해도, 사람들의 관심이 많고 방향성이 맞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순간 말이다. 지난주 그런 류의 기사가 여러 매체에 동시에 실렸다. <상추쌈이 암 발생 억제>, <채소와 함께 먹으면 발암 가능성 ‘뚝’>, <고기엔 ‘상추’…발암 가능성 ‘뚝’> 이런 제목이 달린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손문기) 발 기사다.

삼겹살이나 갈비 같은 고기류나 생선을 구울 때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벤조피렌은 국제암연구소(IARC)가 1군 발암 물질로 분류한 독성물질이다. 이 독성 물질을 줄이기 위해 식약처가 ‘저감화 사업’을 하고 있는데, 연구를 해보니 셀러리와 미나리, 양파, 상추, 계피, 홍차, 딸기까지 모두 7개 식품이 벤조피렌의 체내 독성을 줄여주는 효과를 보였다는 것이 식약처 발표 자료의 핵심이다. 상추, 홍차, 양파, 셀러리는 발암성 억제 효과도 뛰어났다고 한다. 식약처의 결론은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채소와 함께 먹는 우리의 식습관이 벤조피렌의 체내 독성을 낮추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더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상추, 양파, 셀러리 많이 먹으라는 내용만 있지, 어느 정도의 양을 먹어야 벤조피렌 독성을 줄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기사를 뒤져봐도 고기 한 점에 각각의 채소를 얼마나 먹으라는 것인지 가이드라인은 제시되어 있지 않았다.

적정 섭취량도 궁금했지만, 보도자료에 제시된 인간 간암 세포로 실험한 것이 전부인지, 동물 실험은 하지 않은 것인지 확인하고자 식약처 대변인실에 연구 보고서 원문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식약처는 이 연구는 4년 짜리 프로젝트로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에, 내년 3월에 최종 보고서가 나온 뒤에나 공개할 수 있다고 답했다. 추가로 내줄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논문 발표 여부도 추후에나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선류 섭취 가이드라인
지난달 미국 FDA(식품의약국)가 EPA(환경보호청)와 함께 내놓은 생선류 섭취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다시 찾아봤다. 2004년에 처음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기 위해 2014년에 초안을 만든 뒤, 각 주 관계자와 관련 학계, 산업계로부터 200개가 넘는 의견을 받아들인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고, 가이드라인과 관련된 주요 참고 자료를 하나하나 각주 처리해 달아놨다. 같은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이른바 ‘피어 리뷰(peer review)’ 과정에서 수은 중독에 대한 우려가 생선 섭취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 평균 수은 함유량에 따라 생선을 세 그룹으로 분류했다고 설명한다. ( https://www.federalregister.gov/documents/2017/01/19/2017-01073/advice-about-eating-fish-from-the-environmental-protection-agency-and-food-and-drug-administration ) 미 FDA는 이 모든 과정을 문서로 상세하게 전달하고, 1주일에 특정 생선을 몇 차례 먹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지 공개했다. 자료를 보면 같은 tuna(참치)인데도 종류나 가공한 방식에 따라 적정 섭취량이 다르다.

식약처가 국민의 건강을 촉진하기 위해 먹을거리 관련 연구 자료를 내는 것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식품과 의약품, 의료기기의 안전관리를 담당하고 안전성을 검증하는 기관인 만큼, 보다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실제 국민의 식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정확한 내용을 담아주길 기대한다. 아울러 그 내용이 어떤 자료에 근거한 것인지, 누구나 쉽게 찾아보고 검증할 수 있도록 근거 자료를 함께 제시하길 바란다. 그래야 국민들이 지금보다 더 식약처 자료를 믿고 상추쌈도 삼겹살도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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